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토요일에는 학회가 있어 광주(광역시)에 다녀왔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냈다고, 광주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동창 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시간되면 얼굴이나 보자고 말입니다.

한 친구는 졸업 후 줄곧 연락이 닿질 않았었는데, 지난 달 '밴드'를 통해서 20여 년 만에 다시 연결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전화를 잠깐 소식을 나누었지요. 그 친구는 의과대학에 진학했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병원을 네 개나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광주, 전북, 경남 등 여러 도시에 병원이 있더군요. 전북 병원에 오게 되면 나에게 연락하겠노라고 했는데, 바빴는지 아직 대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답니다. 아주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날 생각을 하니 약간 긴장되더군요. 제가 너무 초라해 보이지나 않을까 내심 초조하기까지 했습니다. 옷차림에도 신경이 쓰이고요.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를 떠난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해 왔습니다. 자립심이 강한 친구였지요. 대학도 과감히 야간 학과에 진학했고, 낮에는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알바로 일했던 주유소의 소장이 되어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개인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그게 잘 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주유소로 돌아갔답니다. 최근에는 미니 버스를 구해 운전을 합니다. 아마 주중에는 학생들 운송 차량으로, 주말에는 관광차로 활용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 토요일에는 목포까지 뛰어야 한다면서 7시쯤이면 광주에 돌아올거라 하대요.

시간이 애매하더라고요. 친구를 만나서 소주라도 한 잔 하면, 그날 운전하고 전주로 돌아오는 것은 어렵게 되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기도 그렇고. 이 친구는 커피와는 잘 안울리거든요. 설령 커피를 마신다 해도 어디에서 만날 것이며, 또 그가 정확히 7시에 돌아올지도 확실치 않고요. 일단 학회 일이 끝나면 통화를 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나름 계획을 세웠지요. 점심은 병원 친구와 하고, 오후는 학회에서 볼 일을 보고, 저녁은 버스 친구를 만나기로 말입니다.

병원 친구와 만나기로 한 음식점은 약간 고급스런 한식 전문점이었지요. 주차장은 좁은데 차들이 많아 하마터면 주차를 하면서 다른 차를 받을 뻔했답니다. 내가 친구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내 맥박이 평소보다 빠른 걸 느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친구는 많이 풍성해졌대요. 예전처럼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태도는 변함이 없고요. 불고기 정식을 시켜 사이에 두고 그의 성공담을 들었습니다. 네 개의 병원에서 보살피는 환자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하루 세 끼니까, 삼천 끼, 한 달이면 구만 끼니 정도 되지. 그걸 내가 관리하는 거지."

친구가 자랑스럽게 말을 합니다.

"야, 엄청나구나. 거의 마을 하나네. 사업하는 사람이라 너는 계산도 빠르구나. 야, 정말 대단하다."
"참, 오늘 아로마 치료실 개업식인데, 밥 먹고 가보자."
"누구 꺼?"
"아, 내가 또 하나 하는 거지. 내 사무실과 회의실도 만들었거든."
"어딘데?"
"가까워. 내 차만 따라오면 돼. 요 앞에 큰 길 있잖아. 그거 쭉 따라 가기만 하면 돼."
 

친구의 차는 광택으로 번쩍이는 BMW 7 시리즈 남색 세단이더군요. 자동차가 꽤 크더라고요. 그의 차를 따라가다 보니 잡생각이 들대요.

"아마, 저 정도 차라면 우리 집 값 정도 하지 않을까? 집 한 채가 도로를 달리는구나."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만약 내가 실수로 친구의 자동차 뒤꽁무를 받으면, 친구가 그냥 용서해 줄까? 친구니까 괜찮어, 라고 하지 않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줄줄이 세워진 화분들이 입구를 가로 막고 있더군요. 병원장이 보낸 것, 검사가 보낸 것, 의료회사에서 보낸 것 등등. 화분도 모두 대형입니다. 내 친구는 정말 성공한 사람이대요. 입구 앞에 놓인 게스트북에 축복하고 축복 받는 곳이 되라고 덕담을 썼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학회는 그럭저럭 별 탈 없이 진행되었지요. 학회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버스 친구가 전화를 했대요. 

"일을 끝났냐? 어디서 보까나?"

친구의 투박한 음성이 핸드폰을 타고 전해 옵니다.

"글쎄. 니는 진월동 산다고 했제. 나는 광산군디. 으디가 좋냐?"

참, 이상하죠. 평소에는 사투리를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사투리 친구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를 합니다.

"애매허네."
"야, 내가 식사 중이니까, 밥 먹고 다시 전화하께. 그때 얘기하자."


고민되대요. 친구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까우면 잠깐 얼굴이라도 본다지만, 장소마저도 잡기가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볼 일은 다 마쳤냐? 소주라도 한 잔 해야제. 오랜만인디."
"엉. 으디냐?"
"아직, 함평인디."
"오메, 그럼 힘들것다이. 광주까지 올라믄 한 시간은 더 걸리겄고만."
"긍께. 힘들것지?"


친구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습니다.

"그려. 담에 보자.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와라."

나는 아쉬운 듯이 말은 했지만, 친구가 아직 멀리 있다고 하니 한편 마음이 가벼워지대요. 어려운 숙제를 푼 것처럼 말입니다. 집에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친구들이 생각나대요. 20여 년 전 우리는 한 교실에서 함께 떠들며 수업을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대요. 한 친구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매달 수십억 원의 용도를 결정하며 살고, 다른 친구는 이삼십만 원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운전을 합니다. 만약 우리 셋이 만나면 얘기가 잘 통할까요? 10년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때는 좀 더 가깝게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무척 아련하게만 느껴집니다. 

친구야, 잘 살아라. 니가 잘 살아야 나도 좋다!

덧붙이는 글 | http://cafe.naver.com/drjaipark/1962



#친구#우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