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 청소 노동자를 통해 우리 사회 안녕을 묻는 소설, <양춘단 대학 탐방기>
 대학 청소 노동자를 통해 우리 사회 안녕을 묻는 소설, <양춘단 대학 탐방기>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대학이 늘고 학생은 넘쳐나지만 아직도 어르신들에게 '대학생'이란 이름은 각별하다. 힘든 시대, 자식·오빠·동생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이들에게 상아탑에 다니는 이들은 무언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이들로 여겨진다.

삶에 쫓기고 환경에 억눌리며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어른들이 여전한 것이 현실. 그들의 눈에 진리의 빛이자 지성의 전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떻게 다가올까. 대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먹물'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발칙하면서도 진중한 상상이 소설로 꾸며졌다.

<양춘단 대학 탐방기>란 알듯 말 듯한 제목, 양춘단은 세상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주인공이름이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호적도 간신히 올린 춘단은 가난한 시대 오빠들에 밀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난한 삶을 살아왔다.

어머니, 제가 드디어 대학에 다녀요

말 많지만 정도 그만큼 풍부한, 양춘단이 대학에 가게 된 건 남편의 병 치료차 서울에 올라오게 된 것이 인연이 됐다. 65세의 나이에 한때 우리사회의 이슈가 됐던 청소노동자로 그렇게 그리던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 것.

엄메 아베여, 춘단이 오늘 대학교 댕겨왔습니다. 무슨 대학교냐고요. 아 엄메 아베 둘 다 지 초등학교도 중간에 그만두게 하셨지 않허요. 그래서 지 혼자 힘으로 보란 듯이 대학교 갔어라. 엄메는 지 책가방도 안 사주셨지라. 그래서 지는 책 보재기를 어깨에 싸매고 학교에 갔었지요. 그랴도 하나 챙피하지 않았어라. 그때 어디 책가방 메고 온 얼라들이 있기나 했소. 맨 책 보재기였재. -본문 5p-

첫 장부터 입담 좋은 남도사투리가 등장한다. 글에서 보듯 양춘단은 대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만으로도 한에 풀리고 가슴이 벅차다. 주변 지인들에게 '나가 드디어 대학에 다니게 됐다'며 자랑을 숨기지 않는다.

청소노동자로 입성하게 된 양춘단이 마주한 것은 녹록지 않은 현실. 볕조차 잘 들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한 구석에서 급하게 식사를 해치워야 한다. 갑갑함을 달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 밥을 먹던 춘단의 눈에 홀로 고독을 즐기는 교수님(알고 보니 시간강사) 한도진이 눈에 띈다. 그녀만의 너스레로 말을 붙이고 식사를 나누게 된다. 친구가 생겼다. 어쩌면 행복할 것만 같았다.

힘과 강자의 뒤틀린 논리, 대학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 다를 것만 같았던 대학사회. 하지만 겪게 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새로 부임한 소장이 시급을 4800원에서 4300원으로 깎는다. 반말을 퍼부어대며 인격적인 대접 따위는 국 끓여 먹은 듯 행동한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당장 급한 생계가 아닌 소일거리로 여기던 춘단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도움도 경찰의 진압 앞에 소용이 없다. 결국 모두가 잘려나가고 그녀만이 남게 된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낮은 임금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언제나 줄을 선다.

다시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춘단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날아든다. 그의 말벗이자 친구이던 강사 한도진이 부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 도진이 춘단에게 남긴 것은 틈틈이 그가 써내려가던 일기. 춘단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대학을 향해, 침묵하던 세상을 향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도진의 뜻을 알리기 시작한다. 청소노동자 신분을 이용해 남녀 화장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한도진의 일기 내용을 화장실 낙서처럼 남기기 시작한 것. 대학에 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벌이는 것이다.

남도 사투리에 버무려진, 세상을 향한 물음

전지적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 책을 읽어나가면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넉살좋은 남도 방언에 작가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떠오른다. 박지리 작가다. 한국 나이로 갓 서른이 됐다. 2010년 청소년소설 <합체>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성인소설로는 이번이 첫 작품이다.

스스로를 작가보다 백수로 여긴다는 젊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때론 대거리를 하듯 때로는 탄식을 풀어놓듯 떠벌이는 이야기들이 의뭉스럽지만 퍽이나 자연스럽다.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성을 해학적이지만, 폐부 깊숙이 밀고 들어와 지적한다. 소재의 무게에 가위눌림 당하지 않은 날렵한 문체가 돋보인다.

소설에는 청소노동자나 시간강사로 대표되는 우리사회 안녕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그려지고 지적되고 있다. 마치 근래 이슈화됐던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은 그 이전에 쓰였다고 한다. 급하게 만들어졌다면 담기지 못했을 해방전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이슈들이 빼곡히 담겨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때 '안녕하지 못한 사회'가 신드롬이 됐었다. 따지고 보면 삶의 퍽퍽함 앞에 진정 안녕한 이가 몇이나 될까. 작가가 밝혔듯 주인공 양춘단은 이 시대 어딘가에 살아있는 실제 인물이다. 도시를 누비는 경찰 기동대, 파업 노동자들, 새벽일을 나가는 가방 군단, 도서관 붙박이 학생들. 나에게 직접적 위해가 없으면 별일 없는 듯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양춘단 여사의 입을 빌린 작가는 이야기한다. '정말 안녕하냐'고.

덧붙이는 글 | <양춘단 대학 탐방기>(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02. / 12,800원)



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사계절(2014)


#양춘단 대학 탐방기#박지리#사계절#청소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