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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보리베츠 온천 밤풍경
노보리베츠 온천 밤풍경 ⓒ 이상기

노보리베츠의 밤풍경은 조용하고 쓸쓸하다.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온천으로부터 올라오는 수증기만이 하늘 위로 퍼져나간다. 그렇지만 온천호텔의 대부분 방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다들 방안에서 뜨거운 겨울을 보내는 모양이다. 나도 호텔 지하 로텐부로(露天風呂)로 가서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근다. 물에 유황성분이 있어 냄새가 나고 물이 미끈미끈한 편이다. 국내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온천이어서 세 번 정도 탕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와 내일에 대비, 노보리베츠에 대해 공부한다. 노보리베츠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오유누마로 알려진 온천 호수, 지고쿠다니로 알려진 지옥계곡, 에도시대 민속촌인 다테 지다이무라(伊達時代村)다. 우리는 이 중 지옥계곡과 다테 지다이무라를 관람할 예정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옥계곡의 탕귀신(湯鬼神)이 9가지 금방망이(金棒)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방망이가 바로 도깨비 방망이로 우리에게 9가지 행운을 가져다준단다.

 지옥계곡과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도깨비
지옥계곡과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도깨비 ⓒ 이상기

금색 방망이는 소원을 성취하게 해 주고, 흰색 방망이는 가정을 원만하게 한다. 붉은색 방망이는 자손을 번창하게 하고, 노란색 방망이는 좋은 인연을 맺어준다. 보라색 방망이는 입신출세할 수 있도록 해주고, 녹색 방망이는 금전운을 좋게 한다. 파란색 방망이는 병과 재해를 막아주고, 갈색 방망이는 학업을 성취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검은색 방망이는 상업과 매매를 잘 되게 한다. 그러므로 이들 탕귀신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도깨비다.

갑자기 인간을 도와주는 서양의 요정 하인첼맨헨(Heinzelmänchen) 생각이 난다. 독일의 쾰른 지역에 사는 이 요정은 노동자들이 잠든 밤에 나타나 노동자들이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다 끝내준다고 한다. 다음 날 노동자들이 이것을 보고는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밤 사이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나타나 나에게 9가지 행운을 주고가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한 바퀴 돌아본 노보리베츠

 간논지의 보살
간논지의 보살 ⓒ 이상기

아침에 일어나니 방망이도 보이질 않고, 여늬 아침과 다르지 않다. 나는 아침을 먹고 온천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지도를 보니 간논지(觀音寺) 절이 호텔 앞에 있다. 나는 기와집으로 된 근사한 절을 생각하면서 절을 찾았다. 그런데 현대식 3층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도 기척이 없다. 나는 밖으로 나와 절 입구에 있는 보살을 살펴본다. 빨간 모자를 쓰고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모자와 어깨 그리고 팔 위에는 눈이 쌓여 있다.

호텔 뒤로 난 길을 건너면서 보니 아래로 오유누마가와가 흐른다. 이 하천의 발원지 오유누마에서 내려오는 물로 온기가 있어 수증기가 올라온다. 오유누마는 둘레가 1㎞나 되는 온천 호수로, 지하에 130℃의 유황천이 있다. 그래서 표면의 수온이 40-50℃나 된다. 이 오유누마가 넘쳐 흘러 오유누마가와를 이루고, 주변에 천연족탕이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하천변에 있어선지, 물가에는 겨울에도 식물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겨울 눈속에서도 파랗게 자라는 식물
겨울 눈속에서도 파랗게 자라는 식물 ⓒ 이상기

다행히 오늘 날씨가 좋아 관광하기에 좋을 것 같다. 홋카이도의 겨울날씨는 변화무쌍하고 눈이 오는 날이 많아, 관광을 단축하거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침인데도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출근하는 사람이 가끔 보일 뿐이다. 그리고 관광에 나서는 버스가 호텔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우리는 여유 있게 9시에 버스를 타고 가까운 지옥계곡을 보러간다.  

지옥계곡으로 순례를 한 번 떠나볼까?

 지고쿠다니 풍경
지고쿠다니 풍경 ⓒ 이상기

지고쿠다니로 불리는 지옥계곡은 호텔에서 걸어서도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길이 미끄럽고 단체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간다. 지옥계곡 주차장에 내리니 오른쪽으로 제목석(題目石)이 보인다. 1871년(메이지 4년) 다테시(伊達市)에 묘에이지(妙榮寺)를 연 일진상인(日進上人)이 풍우를 방지하기 위해 자연석에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글씨를 써 넣었다고 한다.

여기서 지옥계곡 입구까지는 90m 쯤 된다. 계곡으로 오르다 나는 잠깐 관광안내소로 가 노보리베츠와 지옥계곡 자료를 얻는다. 다행히 우리말로 된 자료도 있다. 나는 지고쿠다니 전망대로 가 가이드로부터 지옥계옥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지옥계곡은 시코츠-도야(支笏洞爺) 국립공원의 일부다. 지옥계곡은 히요리(日和) 화산의 분화활동으로 생겨난 분화계곡이다. 직경이 450m며, 면적은 11ha 정도 된다.

 지옥 속을 들어간 아내
지옥 속을 들어간 아내 ⓒ 이상기

계곡을 따라 수많은 분출구와 분기공이 있으며,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지옥 같다 해서 지고쿠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 온천에서 지고쿠다니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다음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물이 거품을 내며 끓어올라야 한다. 둘째 물의 온도가 80℃가 넘어야 한다. 셋째 유황이 솟아 나와야 한다. 넷째 연기가 분출되어야 한다.

노보리베츠 지고쿠다니는 이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 지옥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잠시 지고쿠다니 제2전망대로 올라가 계곡 전체를 조망해 본다. 그리고는 지옥계곡의 하이라이트 뎃센이케(鐵泉池)로 향한다. 중간에 잠시 약사여래상을 찾아간다. 1861년 화약의 원료가 되는 유황을 채취하기 위해 이곳에 온 남부지역 번(藩)의 가신이 이곳에서 솟는 온천물로 눈을 씻은 다음 안질이 나았다고 한다.

 '눈의 탕' 앞에 있는 약사여래
'눈의 탕' 앞에 있는 약사여래 ⓒ 이상기

그 후 이렇게 작은 집(堂)을 짓고 약사여래를 안치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신이 눈병을 치료한 이곳을 '눈의 탕(目の湯)'이라 부른다. 여기서 다시 계단과 나무데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유황온천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물에서 유황냄새가 진하게 나고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곳을 지나 드디어 최종목적지 뎃센이케에 도달한다. 뎃센이케는 지옥계곡의 한 가운데 위치한 간헐천이다.

 유황성분이 흘러내리는 지고쿠다니
유황성분이 흘러내리는 지고쿠다니 ⓒ 이상기

뜨거운 온천수와 수증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분출하는 간헐천인데 오늘은 아주 약하게 끓어오른다. 그래서 아주 가까이서 간헐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솟아나온 물은 온도가 80℃이며 흘러 넘쳐 아래로 내려간다. 그런데 분화구를 감싸고 있는 경사면과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이게 바로 자연의 신비다. 뜨거운 온천수와 차가운 눈의 공존, 이것이 또 홋카이도의 매력이다.

다양한 성분을 함유한 노보리베츠 온천

노보리베츠에는 9가지 종류의 온천이 있다고 한다. 이들 온천은 다양한 성분의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가장 흔한 것이 유황천(硫黃泉)이다. 탁한 유백색으로 유황냄새가 나며 비누 거품이 잘 생기지 않는다. 피부병, 기관지염, 동맥경화에 특히 좋다고 한다. 두 번째로 많은 게 식염천(食鹽泉)이다. 일본 전체로 볼 때 가장 흔한 온천이다. 무색투명하고 짠맛이 나며 거품이 잘 일지 않는 특징이 있다.

 넘어진 철천지 표지석
넘어진 철천지 표지석 ⓒ 이상기

물이 잘 식지 않고, 온천욕 후에도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기능이 있어 보온탕이라고도 불린다. 신경통과 요통, 냉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세 번째로 많은 게 철천(鐵泉)이다. 철이온을 ㎏당 20㎎ 이상 함유한 원천을 말한다. 온천수가 공기와 작용해 붉은색으로 변하며 물에서 철분을 느낄 수 있다. 빈혈이나 만성 습진에 좋다고 한다. 철천 중 pH가 3 이하일 때 산성철천이라고 부른다. 살균력이 지나치게 강해 피부에 자극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욕 후 온천수를 물로 씻어내기도 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 온천은 아주 특이한 것들이다. 이들은 명반천, 망초천, 녹반천, 중조천, 라듐천이라 불린다. 명반천은 화산지대에서 나타나는 온천이다. 피부질환, 점막 염증, 무좀, 두드러기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망초(芒硝)는 황산염의 일종으로 소금기가 있다. 소금기가 혈류를 좋게 하기 때문에, 망초천은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에 좋다.

 노보리베츠 온천 안내도
노보리베츠 온천 안내도 ⓒ 이상기

녹반천이 공기와 닿으면 산화하여 다갈색으로 변한다. 동이나 망간 등이 들어있는 강한 산성의 온천으로 빈혈이나 만성 습진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조(重曹)란 탄산수소나트륨의 한자식 표현이다. 이것이 물에서 탄산수소 이온과 나트륨 이온으로 갈라져 피부의 각질을 부드럽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중조천을 미인탕이라고도 부른다. 라듐은 말 그대로 라듐이 들어있는 온천이다. 라듐천은 신경통, 류머티즘, 갱년기 장애에 좋다고 한다.

지옥계곡 답사를 끝낸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다테 지다이무라 시대촌으로 간다. 이곳 온천마을을 벗어나면서 나는 우리를 환영하는 도깨비상을 볼 수 있었다. 이 도깨비는 높이가 무려 18m나 된다. 이곳 노보리베츠에는 크게 네 개의 환영 도깨비상이 있다. 노보리베츠역 앞에 또 하나가 있고, 오유누마로 가는 길에 부자(父子) 도깨비상과 염불(念佛) 도깨비상이 있다고 한다. 그 외 작은 도깨비가 넷이나 더 있다. 이들 도깨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노보리베츠에는 도깨비상을 따라가는 순례코스도 만들어져 있다.


#노보리베츠#지고쿠다니#탕귀신#뎃센이케#노보리베츠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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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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