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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국민참여재판 이대로 좋은가?〉
책겉그림〈국민참여재판 이대로 좋은가?〉 ⓒ 알마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울화통이 터진 게 있었다. 판사와 검찰, 심지어 변호사까지 짜고 치는 고스톱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공권력을 이용하여 죄 없는 학생들을 사법살인으로 몰아넣은 걸 봤을 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나라 같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2008년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모형을 본뜬 국민참여재판을 하고 있다. 그 유명한 '나꼼수 재판'과 안도현 재판도 그런 형태를 띠었다. 그 재판에서 법원은 '나꼼수' 사건의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안도현 사건에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나꼼수 사건의 경우 9명으로 구성된 국민배심원단의 의견이 팽배해서 그렇게 결정된 걸까? 아니다. 나꼼수 재판에서는 국민배심원단의 의견이 전원 무죄로 평결치는 않았다. 하지만 안도현 재판에서는 배심원 7명 전원이 모두 무죄평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왜 법원은 안도현 재판에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또 후보자 비방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판결한 걸까? 그것도 양형 최저 기준인 벌금 100만 원 형의 선고를 유예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것은 생각을 달리하면 국민참여재판을 모독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국민배심원단 전원이 무죄를 평결을 했는데도 재판부는 그걸 무시했으니 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국민참여재판을 행할 까닭이 없지 않나?

"'나꼼수' 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다수 의견을 따랐지만 안도현 재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검찰을 비롯한 반대파는 국민참여재판이나 배심원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담당 판사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9쪽)

이는 진보적 법학자인 박홍규의 <국민참여재판 이대로 좋은가?>에 실린 이야기다. 그렇다.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두고 있지만 검사와 판사는 국민배심원단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담당 판사가 그런 판결을 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왜 그와 같은 일이 초래된 걸까? 박홍규 교수는 우리나라 배심재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마냥 미국식 배심재판이 좋다고 생각하여 국민모두가 원하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 같지만, 그 내용에는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나라 배심재판의 배심원수는 9명에서 7명으로 지극히 적고, 배심원의 평결이 판결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권고적인 효력에 그칠 뿐이고, 무죄율도 일반재판의 건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이 또다시 항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란다. 더욱이 민사재판은 빠져 있고, 오로지 형사재판만 국민참여재판으로 한다고 한다.

이 무슨 기이한 발상이란 말인가? 그럴 바에야 아예 시행하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럴 바에야 공안통치 때의 시절과 뭐가 다를 수 있겠는가? 그저 형식만 국민을 위할 뿐 그 내용은 영화 <변호인>을 보던 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지 않는가?

"국민의 80퍼센트 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재벌에 솜방망이 처벌은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은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형이 확정된 후 평균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현직에 복귀했다."(32쪽)

익히 들어 본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이라는 것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특사로 곧잘 풀려나는 사람들이 재벌총수들과 크고 굵직한 자리에 있던 공공기관장들 아니던가? 그러니 영화 <도가니>나 <7번방의 선물>같은 엉뚱한 일들이 자꾸자꾸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암기력을 시험하는 사법시험은 인격적으로 훌륭하거나 판단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법률가는 암기력의 천재가 아니라 공정한 판단력과 따뜻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암기 능력의 인재를 좋은 법률가로 여겨왔다."(44쪽)

그야말로 사법시험에 합격인 이들에 대한 환상을 확 깨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탄주'니 '전관예우'니 하는 말들이 나도는 것이다. 검찰 조직에 상명하복이 있을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로들 암기력의 천재성을 자랑한다며, 일반 배심원단들의 의견을 묵살시키고 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국민참여재판 결과를 보면 환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지난 5년간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5.7퍼센트로 1심 형사합의사건 무죄율 3.2퍼센트보다 약간 높다고 한다. 미국 배심재판의 무죄율 33퍼센트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꽤나 실적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 비율은 전체 재판의 0.1퍼센트에 불과할 뿐이고, 그 중에서도 무죄판결이 떨어지는 건 전체 재판의 0.005퍼센트에 불과하고 한다. 모든 사건을 배심재판으로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와 완전 딴판이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야옹하는 꼴이다. 이러니 검사와 판사를 불신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박홍규 교수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국민참여재판을 개정해야 한다. 더 많은 수의 배심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트고, 그들의 평결을 검사와 판사가 존중하여 그대로 판결하고, 그들의 평결이 검사와 판사의 입맛에 안 맞아도 다시금 뒤집어 엎으려는 항소도 못 하게 하는 제도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그 때에만 우리 국민이 두 다리를 뻗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국민참여재판 이대로 좋은가?

박홍규 지음, 알마(2014)


#박홍규 #국민참여재판 이대로 좋은가?#전관예우#유전무죄 무전유죄#국민배심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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