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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책표지.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책표지.
ⓒ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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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는 '위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뜻한다. 사전 뜻풀이를 따르는 한, 억압하는 '위'와 억압 당하는 '아래'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선한 권위주의' 따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권위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말한다. 권위주의에서와 달리, 권위에는 '위-아래'의 위계 구조가 있을 수 없다. '능력'이나 '위신' 그 자체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 누구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권위'가 가능함은 물론이다.

나는 신앙이나 종교의 진정한 힘이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에 있다고 믿는다. 종교 지도자의 진정한 힘도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로부터 비롯된다고 단언하고 싶다.

석가나 예수와 같은 저 먼 옛날의 성인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살아 있는 석가나 예수가 적지 않다.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로 무장한 채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사표와 귀감, 본보기가 되는 참 신앙인들 말이다. 농민과 농촌을 위해 신부복을 벗고 스스로 농민이 된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1940~2012)도 그들 중 하나다.

가톨릭농민회라는 귀한 조직도 지도신부였던 그

1970년대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양심과 인권, 정의의 상징적인(때로는 실제적인!) 보루가 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출범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가톨릭농민회라는 귀한 조직도 지도신부였던 그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땅을 파고 곡식을 거두는 농민이 됨으로써 노동하는 예수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갔다. 그는 그렇게 그 스스로의 권위를 만들어가며 많은 이에게 참된 신앙인의 귀감이자 본보기, 사표가 되었다.

이 책은, '노동하는 사제, 현장교회에 희망을 거는 사제, 생명공동체에 구원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제, 마을민주화가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강조하는 사제'(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회고 중)였던 정 신부의 평전이다. 정 신부를 기리고 그 뜻을 알리기 위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지원하여 나온 귀한 결과물이다.

정 신부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정 신부가 로만 칼라를 벗을 때까지 살았던 삶은 '나눔'과 '섬김'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스스로 더불어'에 충실한 '농민' 공동체를 이루는 데 몰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정 신부는 사목의 대상이 사람이므로 농민구원을 위한 사목은 농민의 삶 자리를 뜻하는 '농촌사목'이 아니라 '농민사목'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정 신부가 '노동사목'이 아니라 '노동자사목', '교도소사목'이 아니라 '수인사목'이라고 말한 배경도 이와 같다. 조직보다 사람을 더 중시하는 정 신부의 지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진정한 농민구원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의 삶과 죽음을 온몸으로 살고 죽을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예수처럼 서럽고 한 맺힌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예수처럼 이들과 하나 될 때, 예수의 믿음이 이들의 가슴마다 누룩처럼 퍼져 나갈 것이고, 숱한 치유와 해방의 기적과 함께 모두가 하나 되는 구원의 잔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109쪽)

이와 같은 정 신부의 지론은 가톨릭농민회 활동에 얽힌 일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평전의 저자가 "전국 최초의 조직적·연속적 시위"로 정리한 1985년의 '소몰이 투쟁'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자.

소몰이 투쟁은 1985년부터 전국 22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경운기와 소를 마을에서 군·면 소재지까지 몰고 나가 시위를 벌이는 유례 없는 방식이 동원되었다. 연인원 4,700여 명이 참여해 시위 중 연행된 이가 419명이나 되었을 정도로 뜨겁고 격렬하게 진행된 투쟁이었다. 당시 경찰은 성당에 난입해 성모상을 훼손하기도 하는 등 강경하게 진압했다.

그런데 당시 가톨릭농민회는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재 추기경)가 맡고 있었다. 농민들의 시위가 못마땅했던 그는 "어떻게 성전에서 불경스럽게 '소 값, 개 값, 똥 값'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며 농민회 활동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정호경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도신부건 담당주교건 농민들 하는 일 방해만 안 하면 족하다." 평소에도 정호경 신부는 가톨릭농민회 일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사제는 농민들이 일을 잘하라고 뒷바라지하는 게 제 역할이라는 것이다. (121쪽)

정 신부의 평전을 읽으면서 두 명의 신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NLL 발언'으로 정부와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은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와, '사제는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염수정 추기경(당시 대주교)이 그들이다.

박 신부는 5·18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다 괴한들의 테러를 당한 분이다. 그가 진실 앞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한 이들은 당대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니었을까. 현실 권력자를 향한 추상같은 일갈이야말로 종교 지도자가 갖는 진짜 권위의 한 중요한 원천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염수정 대주교의 사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제의 정치 참여에 관해 발언한 염 대주교의 진짜 속내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표면의 의미만 놓고 보자면, 정치와 종교가 별개여야 한다는 당위론을 설파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자장권에서 벗어난 세속의 종교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염 대주교의 발언이 참된 신앙적 권위가 아니라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위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 이유다.

힘으로 내리누르는 권위주의가 아니라...

가톨릭의 정점에는 교황이 있다. 교황의 힘은 막강하다. 그는 세계 5천여 명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힘은 수십만 명의 사제와 수사, 수녀, 11억을 넘는 전세계 가톨릭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힘으로 내리누르는 권위주의가 아니라 '선한 권위'가 절실한 까닭이다.

나는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야말로 그런 선한 권위의 대표적인 본보기라 생각한다. 거리로 나가 노숙인을 만나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을 감지 말라고 외치는 교황은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힘을 주지 않을까.

정 신부에게 친한 벗과도 같았던 권혁주 신부(안동교구장)는 정 신부를 "이 땅의 농민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농민들을 위해 투신하며 싸우시다가 스스로 농민이 되신 특별한 분"이라고 평했다. 그는 농민 속에서 농민과 함께 농민으로 사는 것이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 정 신부의 삶이 참된 권위가 되어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한상봉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리북 | 2013. 12. 24. | 320쪽 | 16,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한상봉 지음, 리북(2013)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한상봉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리북#염수정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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