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제천을 바라보며 명상 중인 흰 옷 입은 부처, 올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홍제천을 바라보며 명상 중인 흰 옷 입은 부처, 올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서울 종로구 구기동, 평창동을 지나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 홍제천(弘濟川). 삼각산(북한산)의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잔잔하고 소담하게 흐르는 서울 서대문구의 자랑이자, 동네 주민들에겐 언제나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산책로이자 자전거 길이자 쉼터다.

홍제천은 서울의 다른 하천과 달리 하천 개발을 한 말끔한 신 구간과, 홍제천의 또 다른 정겨운 이름 '모래내'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간직한 옛 구간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다. 도시 하천에선 보기 드물게 산의 지형을 살린 자연형 인공폭포와 안산 들머리가 있는가 하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될 백불(白佛)이 있는 암자,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인질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의 슬픈 사연, 조선시대 인조반정에 출현하는 누각 세검정 등 역사의 유적들까지 있는 풍성한 하천이다.

인공폭포가 있는 신 구간, 역사의 유적들이 많은 옛 구간

추운 겨울에도 오리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어 개천 풍경이 덜 적적하다.
 추운 겨울에도 오리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어 개천 풍경이 덜 적적하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서대문구의 주산인 안산으로 가는 '안산 자락길' 들머리가 개천가에 있다.
 서대문구의 주산인 안산으로 가는 '안산 자락길' 들머리가 개천가에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수도권 전철 6호선 마포구청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막 한강으로 합류하려 힘차게 흘러가는 홍제천을 만날 수 있다. 하천 양쪽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잘 닦여있어 눈 내린 겨울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페달을 밟으며 개천가를 달렸다. 추운 겨울이다 보니 다른 계절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진 하천엔 춥지도 않은지 오리들이 물질을 하며 먹거리를 찾고 있고,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고 있어 덜 적적하다. 홍제천 신구간길 위엔 고가도로(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는데 다행히 높다랗게 세워져 있어 차량 소음이 들리지 않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 역할까지 해준다.

원래 수량이 적은 모래하천이었던 데다 1999년 홍제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의 설치로 인해 더욱 물줄기가 마르는 현상이 발생해, 서대문구에서는 하천의 신 구간 (5.3km)에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하천 개발을 하게 되었다. 송수관을 통해 하루 4만 3,000톤의 한강물을 홍제천으로 끌어올린 뒤 다시 한강으로 흘러가도록 했다. 그 급수 관리소가 있는 곳이 홍제천의 명물 중 하나인 인공폭포다. 산에서 폭포수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다. 한 여름에는 늦은 밤까지 인근 주민들에게 최고의 피서지로 인기가 좋다.

그 옆으로 물레방아와 함께 운치있게 나 있는 길은 서대문구의 주산(主山)인 안산으로 가는 들머리로 '안산 자락길'이 이어진다. 산 모양이 안장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한문으로 안장 안자를 쓴 안산(鞍山), 해발 296m의 나지막한 이 산은 조선시대 인조 임금을 살린 산이기도 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내고 즉위한 지 일 년 후. 반정을 주도했던 신하들에게 내리는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무장 이괄의 난이 터졌다. '이괄이야 말로 병조판서 감'이라는 칭송이 나올 정도로 반정을 성공시킨 전위대 역할을 했지만, 겨우 2등 공신에 병조판서는커녕 궁벽 진 변방으로 발령이 난 것.

승승장구한 반란군은 곧 서울을 점령했고 인조는 창경궁을 빠져나와 반란군을 피해 도성을 버리고 공주까지 파천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권이 다시 교체될 위기 속에 높은 고개가 있는 안산을 탈환하고 진을 친 정충신의 관군이 지형적 이점을 살려 안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반란군과의 일전을 승리로 이끔으로써 반란군은 도주하였고 결국 자중지란으로 궤멸되었다.   

천변에 있는 전통재래시장, 문화재, 성곽

한겨울 홍제천은 주민들과 아이들의 썰매 놀이터가 되어 준다.
 한겨울 홍제천은 주민들과 아이들의 썰매 놀이터가 되어 준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거대한 바위돌에 새겨넣은 흰 옷 입은 불상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전설도 있다.
 거대한 바위돌에 새겨넣은 흰 옷 입은 불상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전설도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신 구간에서 하천길은 도로와 주차장에 막혔다가 3호선 전철역 홍제역 인왕시장 앞 효제약국 건너편 홍제교에서 옛 구간의 하천길이 이어진다. 언제나 상인들과 주민들로 북적이는 인왕시장 주변은 2호점까지 있는 오래된 전통의 헌책방 '대양서점'과 자전거포도 아닌 '자전차점'이 있는가 하면 맥도널드와 편의점들도 시장 주변에 같이 있어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품고 있는 곳이다.

홍제천 옛 구간의 이 천변 길은 말하자면 구(舊)홍제천이자 개천의 상류지역이다. 한쪽 편에 산책로만 있을 뿐 흔한 자전거도로도 없고 개천가에 작고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는 게, 도시의 옛 하천길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사람들의 삶이 가까이 보이고, 원래 우리말 이름인 '모래내'에 가까운 정겨운 풍경들이 나타난다. 하천변 동네에 이어진 특이한 이름의 '포방터 시장'은 예전에 포병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웬 군부대가?' 싶었는데 시장 상인 아저씨는 저 앞에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을 가리키며 이 부근이 옛 부터 수도방위의 중요한 지역이었단다.

얼어붙은 홍제천 썰매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지나가다보면,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한 옥천암 마애보살좌상(玉泉庵 磨崖菩薩坐像)이 힘차게 흐르는 홍제천 앞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거대한 바윗돌에 새겨진 이 불상은 상 전면이 흰색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 일반적으로 '백불(白佛)' 혹은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큰 성문인 '홍지문'과 성문 옆 다섯 칸의 구멍이 있는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사이로 흘러갔을 홍제천이 하얀 눈으로 포근하게 덮혀 있다. 홍지문(弘智門)은 숙종 45년 (1719년)에 만든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산성으로 길이가 약 5㎞에 이른다.

역사속의 슬픈 사연을 품고 흐르는 홍제천 상류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홍제천.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홍제천.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뒤로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의 풍경이 이어진 누각 세검정.
 뒤로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의 풍경이 이어진 누각 세검정.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곳 홍제천 상류는 도시에선 보기 드물고 자연적인 개천 풍경을 보여준다. 거친 바위들과 나무 많은 언덕, 옛사람들의 정자, 성벽, 수문,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날아갈 듯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세검정 정자는 그 정점이다. 북한산과 인왕산, 북악의 산세가 겹칠 듯 맞대고 있다. 인조반정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는 세검정(洗劍亭)은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단다.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인조반정이 있기 오래전부터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기던 명소답게 위치가 참 좋다. 정자 앞의 너럭바위들도 눈길을 끈다.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세검정(洗劍亭)의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칼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한자 이름엔 조선중기 인조반정 때 거사 동지인 이귀·김유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 결의를 하고 칼을 씻었다 하여 누각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외에도 홍제천에 마음 아픈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다.

1636년 병자년(인조 14) 조선을 침략,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공녀(貢女)가 섞인 50만 명의 백성들을 전쟁포로와 인질로 청나라에 끌고갔다. 이후 가족들이 몸값을 주고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했지만, 그 가운데 부녀자들(환향녀: 還鄕女)은 오랑캐에게 정절을 잃었다하여 '화냥년' 취급을 당하는 비극까지 낳았다. 이것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자 당시 인조임금은 이들을 홍제천에서 집단 목욕을 시키도록 한 후 환향녀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명을 내렸다. 나라가 힘이 없어 여성들이 겪어야했던 슬픈 수난사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어울리려는 조상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세검정 누각에 기대어 앉아 쉬고 있는데 벌써 겨울 하루해가 북악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려한다. 참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천변 길이었다.

* 주요 자전거 여행 길 ; 전철 6호선 마포구청역 -  홍제천 - 인공폭포 - 인왕시장 - 홍제천 옛 구간 -  포방터 시장 - 옥천암 백불(白佛) - 홍지문, 오간대수문 - 세검정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홍제천, #모래내, #환향녀, #옥천암 , #세검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