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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생인권조례가 오는 1월 26일로 공포 2년을 맞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글을 받아 싣는다. [편집자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0일, 시행한 지 2년이 채 안 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며 공청회를 개최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30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는 학생인권을 약화시키고 교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지도부장인 난 우려스러운 마음을 안고 공청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여러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며 마련한 공청회는 실망스럽다 못해 폭력적이었다. 올바른 공청회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등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 개정, 나아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우려하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하고 참기 어려운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관련기사 : "입 닥쳐, 찢어버린다" 협박에도 교육청은 구경만). 참여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정리해 생산적인 공청회가 될 수 있도록 나서야 했던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파행적으로 공청회를 진행했다. 논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했던 이날 공청회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서울시교육청과 한국교총 등은 ▲교권 실추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 ▲학교폭력 등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고 있는 내가 볼 때 이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이들이 주장의 근거로 든 것들을 하나씩 따져보자.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인권조례 탓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2012년 1월 26일 오후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자문위원,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2012년 1월 26일 오후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자문위원,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먼저 '교권의 실추'에 대해 이야기하면, 먼저 이들이 말하는 '교권'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교권은 '교원의 교육권'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교권은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의 권리(교육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 신분상의 권리, 재산상의 권리, 교직단체활동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의 권리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헌법 31조④항에 명시되어 있다. 교사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안 된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키고 채택을 강요하는 교육부다.

또 불의한 사회 모습에 꿈틀대는 자신들의 마음을 대자보로 표현한 학생들에 대해 '지도하라'며 공문을 내려 보내 학생 징계를 종용한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쓸데없는 행정업무와 지침공문으로 교권침해를 밥 먹듯이 하는 교육청이 교권 강화를 빌미로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일 뿐이다.

둘째,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교칙 강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사의 학생 체벌은 학급당 70~80명씩 수용된 교실을 통제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허용돼 왔었다. 하지만 학생 수가 한 반에 30명인 지금은 폭력으로 학생 위에 군림하기보단, 학생 수를 더 줄이거나 교사를 상대로 한 인권(학생인권) 재교육 등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2013학년도 신입생의 숫자가 2학년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다. 그럼에도 한 학급이 줄어들어 학급당 학생 수가 33명으로, 2학년과 비교해 6~7명이 많았다. 2013년 기준 1학년의 징계 학생 수는 2학년 징계 학생 수 6명에 비해 2배가 많은 12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한의 중학교 2학년 학생 때문이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생활지도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사례를 보면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단지 학생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학급 당 학생 수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서울시교육감이 해야 할 일은 힘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엄격한 교칙의 적용하는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 작업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공약이기도 한 '교육여건 개선'을 이행하라고 교육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사정이 그리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전국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낸  '2014학년도 교육공무원 정원 가배정서'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공립 각급 학교 교원 가배정 인원은 총 4만6264명으로 지난해 4만6350명에 비해 86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재원을 조달하여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면 당연히 해결될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어린 학생들 손목 비틀어 해결하려고 하니... 이러고도 교육자라고 자임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폭력 감소에 결정적 역할한 학생인권조례

또한 서울시교육청이 2012년 10월 서울지역 학교의 학칙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금지하는 두발제한을 교칙으로 둔 중학교는 87.8%(333개교), 고등학교는 89.9%(285개교)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학교 현장에서는 기존의 '서울학생인권조례' 내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서울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교육청이 '서울학생인권 조례'에 맞게 교칙을 바꾼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교칙 위반 비율' 등을 객관적으로 조사해 보지도 않고 그저 막연하게 "서울학생인권 조례 때문에 학생 생활지도가 어렵다"라는 추상적인 주장만을 펼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서울, 경기, 전북, 광주 등 네 곳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도 체벌이 전혀 없다고 답한 학생이 58.7%에 불과했다. 이렇듯 여전히 체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학생인권의 과잉이 아니라 학생인권을 두려워하는 문제 있는 교육자들이 아직도 상당수 학교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셋째, '서울학생인권 조례'가 '학교폭력'을 조장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2013학년도 상반기 학교 폭력 심의 건수'와 '2012학년도 학교 폭력 심의 건수 비교'에 따르면, 진보성향 교육감이 있는 지역과 학생인권조례를 실시하는 지역의 학교폭력 감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학교의 경우 '서울학생인권 조례'를 충실하게 반영한 교칙제정 이후 학교폭력 가해학생 수는 23명에서 5명(-78%)으로, 피해학생 수는 18명에서 6명(-67%)으로 줄어들었다. 또 학교폭력 가해자조치 건수도 39건에서 12건(-68%)으로 대폭 줄었다.

진보교육감 또는 학생인권 조례를 시행하는 시·도교육청과 우리 학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폭력의 주범은 '학생인권 조례'가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만을 위한 과도한 경쟁 교육, 특권 교육의 폐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학생 중심의 민주적 운영과 소통·협력의 학교 문화를 만드는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이 학교폭력을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의 서울학생인권 조례는 ▲교권의 실추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 ▲학교폭력의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교권을 신장시키고 학생인권 차원에서 학생의 생활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또 학교폭력을 감소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문용린 교육감은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덕성에는 여섯 단계가 있다. 그 4단계는 '법과 질서가 중시되는 단계'로 사회유지의 최소한의 단계이다. 법은 무조건 다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도 자연의 법칙에 맞아야 한다. 양심범 같은 사고를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국민의 수준이 한결 높아진다."

5단계인 '사회 계약의 단계', 6단계인 '보편적 윤리가 지배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기존의 '서울학생인권 조례'에 충실히 반영된 '보편적 윤리가 지배하는 단계'를 내던지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법과 질서가 중시되는 단계'로 퇴보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개정안을 속히 철회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미 제정된 법을 개정한다고 나선 교육청이지 학생인권조례가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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