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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잠시 머무르던 호텔 벽에 아주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을 보았다. 야자수나무 뒤로 이어지는 바닷가, 그 너머 빨간 지붕의 하얀색 성벽이 그림 같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엘미나 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로, 케잎코스트성과 같이 노예를 가두던 감옥이 있는 '노예의 성'이었다.

엘미나 성 가나 호텔에서 홍보하는 사진을 흉내내어 촬영해보았습니다.
▲ 엘미나 성 가나 호텔에서 홍보하는 사진을 흉내내어 촬영해보았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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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서양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471년으로, 그들은 포르투갈인들이었다.

1482년 포르투갈인 디오고 선장이 이 곳에 도착하여, 엘미나 지역을 관장하던 카라만사 왕과 회담을 진행했는데,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다.

'카라만사 왕은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황금색 보석들이 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왕은 손목과 발목에 황금 장신구를 차고 있었고, 황금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의 신하들은 비단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와 턱에 보석을 걸고 있었다. 왕은 매우 지혜로워 보였고, 특히 우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굉장히 점잖고 사려가 깊었다. 왕은 우리가 제안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디오고 선장의 몸짓 하나 하나를 주의 깊게 살폈다. 우리가 대화할 때 그와 그의 신하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경청했다. 그리고 신하들은 제대로 규율이 잡혀 있었다.'

그러니까 포르투갈인이 기록한 회담장면은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다. 가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의 '원시적인' 삶의 형태가 얼마나 왜곡되고 치우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은가?

엘미나 마을이 생긴 것은 약 700년 전인 1300년대라고 한다. 이 곳은 '베냐'라는 이름의 석호(lagoon: 모래 퇴적으로 바다와 분리되면서 생긴 호수)가 있어, 염전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포루투갈인들은 1482년부터 '카라만사 왕의 허락 하에', 이 곳에 성을 짓기 시작하고 무역을 시작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정당하게 얻어낸 허락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 때 포루투갈인들이 이곳에 성을 짓기 시작했다. 이 성의 이름은 성 조지 성인데,  엘미나 성으로 더 알려져 있다. 

엘미나 성 외곽 성 밖의 모습입니다.
▲ 엘미나 성 외곽 성 밖의 모습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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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미나'라는 이 지역의 이름은 포루투갈 어인 황금해안가(Da Costa de el Mina de Ouro)에서 기원했다 한다.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을 차지하고 150년이 지나 네덜란드가 이 곳을 침공했고 그 때 이 성의 상당부분이 허물어져서, 현재 보이는 성의 모습은 그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처음에 포루투갈인들은 이 곳에서 노예가 아닌 금 무역을 했다. 가나가 접한 해안을 황금해안이라 하는 것도 이 지역에서 백인들이 주로 금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금보다 '노예' 무역이 더 '짭짤해지면서' 이 지역에 노예를 가두는 '노예의 성'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18세기 한 네덜란드인의 표현을 빌리면, 황금해안은 노예해안으로 변해갔다.

성의 구조는 케잎코스트 성과 달랐지만, 지하감옥이 있는 것과 교회가 있었다는 건 여전했다.

성주의 방에서 성주의 방에서 본 대서양의 깊고 푸른 바다는 바로 밑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 성주의 방에서 성주의 방에서 본 대서양의 깊고 푸른 바다는 바로 밑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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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성주의 방으로 올라가 보았다. 성주의 방은 여전히 바다가 시원히 보이는 창문이 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서양의 깊고 푸른 빛은, 아래 층 감옥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을 무시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성주의 방은 안쪽 테라스로 이어져 있었다. 테라스에 서서 성의 아래층을 내려다보려는데 안내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다.

"여기를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아세요?"
"...... 예?"
"성주는 방에서 걸어 나와, 잡혀오는 노예를 여기서 관찰했어요. 노예 중에 젊고 예쁜 여자들을 고르는 거죠! 여기서 이렇게 보다가 어여쁜 여자를 보면 바로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그러면 부하들은 그 노예를 성주의 방으로 데리고 왔죠. 그리곤 성주는 욕망을 채우는 거죠."

죄수를 감시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감옥은 들어본 적 있어도, 이렇게 성주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 설계한 감옥 이야기는 처음이다. 정말로 그것 때문에 건물을 이렇게 설계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잡혀온 노예를 성주가 어떻게 다루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성주의 방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지하 감옥 입구 성주의 방 테라스에서는 밑으로 지나가는 노예를 볼 수 있습니다.
▲ 성주의 방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지하 감옥 입구 성주의 방 테라스에서는 밑으로 지나가는 노예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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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 입구와 성주의 방 지하 감옥으로 가는 통로를 지나는 노예를 위층에 서서 노려볼 수 있습니다.
▲ 지하 감옥 입구와 성주의 방 지하 감옥으로 가는 통로를 지나는 노예를 위층에 서서 노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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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감옥으로 가는 길 여자 노예들을 가두던 지하감옥 입구입니다.
▲ 지하감옥으로 가는 길 여자 노예들을 가두던 지하감옥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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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은 호기심을 보이는 나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쉼 없이 엘미나 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더 놀랄 만한 이야기가 쏟아질까봐, 애써 호기심을 감추었다.

"죄송한데, 충분히 감을 잡았으니 너무 자세한 것까지 설명을 안 해주셔도 돼요."

그러나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또 있어요. 성폭행은 여자 노예만 해당 된 게 아니었어요. 남자 노예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도 수시로 벌어졌어요."

'아 다 알았으니, 됐다니까요!'
하마터면 안내원에게 버럭 하고 화를 낼 뻔 했다. 여기 저기 뜯겨져 나가고 빛이 바랜 성벽 페인팅 때문인지, 야릇한 괴기스러움으로 가득 찬 이 성에 괜히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황급히 성주의 방을 떠났다.

네모로 된 성 안은 비어있었다. 그 빈 자리에 작은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은 포르투갈이 이 성을 관장했을 때는 교회였다가, 네덜란드가 이 성을 빼앗은 이후 노예거래를 위한 '경매장'으로 바뀌었다 한다.

'그들은 정말로 흑인이 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못 한 것일까?'

노예 경매소 성 안쪽에 있는 저 별도의 건물은 포르투갈 시절에는 교회로 쓰였다가, 이후 네덜란드가 점령한 시절에는 '노예 경매소'로 쓰였습니다.
▲ 노예 경매소 성 안쪽에 있는 저 별도의 건물은 포르투갈 시절에는 교회로 쓰였다가, 이후 네덜란드가 점령한 시절에는 '노예 경매소'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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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쪽 한 켠에는 감옥에서 반란을 주도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노예를 가두는 별도의 감옥이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 보았다. 반란을 꿈꾸다 이 감옥에 갇힌 노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특별 감옥 반란을 시도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노예를 별도로 가두는 곳입니다.
▲ 특별 감옥 반란을 시도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노예를 별도로 가두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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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의 상 극 지점 특별 감옥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안내원은 문을 잠궜습니다. 동아프리카 사파리와 상 극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한 평 남짓한 이 감옥이 아닐까 합니다.
▲ 사파리의 상 극 지점 특별 감옥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안내원은 문을 잠궜습니다. 동아프리카 사파리와 상 극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한 평 남짓한 이 감옥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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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들어서니 불현듯, 아프리카를 아직 다녀오지 않은 친구나 조카들이 나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사자 봤어? 기린은? 코끼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거 정말 장관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사자, 기린, 코끼리를 야생에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동아프리카에 사파리가 있다면 서 아프리카에는 노예의 성이 있어!"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사자, 기린, 코끼리를 보러 사파리 관광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드넓은 대륙 여기저기에서 잡혀와 한 평 남짓 되는 이 감옥에서 병들고, 죽고, 팔려간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라고.  

저녁이 되면서 관광객들이 성을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안내원의 설명이 내 신경을 무척 건드렸다. 이 불편한 이야기들을 이제 그만 듣고 싶어졌다. 내 귀는 여전히 호기심에 가득 차서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는 안내원의 이야기를 향해있었지만, 내 발은 서둘러 이 성을 나가야 한다며 이미 성밖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성 밖은 활기가 찼다. 케잎코스트 성 밖 마을에서 지하감옥과 대조되는 조용한 평화로움을 느꼈다면, 엘미나 성 밖 마을은 떠들썩한 생기가 넘쳐났다. 대서양 서쪽 너머로 지려하는 해가 엘미나 마을을 반짝이며 비추고 있었다.

엘미나 마을 케잎코스트 마을과 마찬가지로 성 안과 성 밖은 같은 공간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른 분위기를 보입니다. 엘미나 마을은 활기가 찼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 엘미나 마을 케잎코스트 마을과 마찬가지로 성 안과 성 밖은 같은 공간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른 분위기를 보입니다. 엘미나 마을은 활기가 찼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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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노예의 성을 찾는 이들에게 이 말은 덧붙여야겠다.

"케잎코스트 성과, 엘미나 성 방문이 상쾌하고 발랄한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엘미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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