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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사진은 지난 10월 22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당시 모습.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사진은 지난 10월 22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당시 모습. ⓒ 남소연

서울시의회가 2014년도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서울시의 일반예산은 이미 처리됐는데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예산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지난 20일에 마무리돼야 할 예결위 회기가 열흘이나 늦춰졌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의 발단은 혁신학교 예산을 둘러싸고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 간에 조정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년도에 97억 원이 책정돼 있던 혁신학교 예산을 2014년에는 40억 원으로 삭감한 예산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행정집행기관과 의회라는 서로 다른 두 기관의 정책적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설사 두 기관 간 정책관이 일치되더라도 예산을 바라보는 행정집행기관과 의회의 견해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은 자신의 사업계획에 따른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는 이를 검토하고 교육청과 협의·조정하면서 최상의 예산안을 만들어 내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는 절차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안을 제출한 서울시교육청 문용린 교육감이 '혁신학교 예산은 단 1원도 올릴 수 없다'면서 의회와의 협의와 조정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결위 출석은 말할 것도 없고 박래학 예결특위장이 교육청 예산안 협의를 위해 특별히 제안한 12월 20일 7인(시의회 의장 직무대리, 예결특위장, 운영위원장, 교육위원장, 민주당 대표, 새누리당 대표, 교육감) 조찬모임마저도 거부하고 소위 '배째라' 전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용린 교육감의 이와 같은 태도는 다음 네 가지 점에서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지정기간 있던 혁신학교인데... 신뢰 깨는 문용린 교육감

첫째, 혁신학교 정책은 처음 출발할 때 2014년까지 4년간의 지정기간이 정해져 실시되고 있는 정책이다. 특정정책이 지정기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 정책의 집행을 위한 재정적 지원조치와 행정적 지원조치를 그 기간 동안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용린 교육감은 이런 기본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국가기관의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보란 듯이 깨뜨리고 있다. 우리가 외국과 협정을 맺어놓고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약속했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국격을 실추시키는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 아닌가?

지금 문용린 교육감은 초빙교사 비율이나 학급당 학생 수와 같이 혁신학교에 대해 취해졌던 행정적 조치들을 모두 폐기하고 원점으로 돌려 일반학교와 동일하게 만들어놨다. 이에 더해 혁신학교 지원예산까지 대폭 삭감해 사실상 혁신학교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문용린 교육감은 혁신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조치들을 특혜라고 하지만 초빙교사비율은 혁신학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자율학교들이 공통적으로 적용받고 있는 것이며, 학급당 학생 수의 경우에는 학교 단위의 혁신모델을 실험한다는 혁신학교의 정책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교육학전문가였던 교육감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족도는 높아지는데 지원은 없다? 역주행이다

둘째, 67개 서울형혁신학교들에 대한 학생, 교사,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년이면 4년 차가 돼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혁신학교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거의 모든 혁신학교들에서 매 학기말 실시하고 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서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지난 12월 4일 서울시 의원회관 앞에서 있었던 혁신학교 예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집회에 교사 수에 버금가는 학부모들이 버스를 대절해서까지 참여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이라면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교육 당사자들의 의견과 만족도를 반영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문용린 교육감의 혁신학교 예산 삭감 조치는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의사에는 완전히 역주행하는 행보에 다름 아니다.

'1원도 증액할 수 없다'는 서울시교육감, 혼란 야기한다

셋째, 설사 백번 양보하여 이 모든 것을 다 접고 문용린 교육감의 교육관에 따라 혁신학교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래서 혁신학교에 대한 기존의 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할지라도, 이건 아니다.

3년 동안 1억4000만 원의 예산 규모에 맞춰 교육활동을 해 왔던 학교들에게 갑자기 6000만 원만 지급한다는 것은 거의 폭력에 가까운 일이다. 특히 4년 차 학교들에게는 40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학교들은 일반학교에 지원되는 교무행정사 인건비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빼고 나면 사실상 교육활동에 쓸 수 있는 돈은 2000만 원 남짓이다.

예산을 줄여도 1억4000만 원에서 1억2000만 원, 1억 원, 8000만 원,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면서 교육활동 내용을 조정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이는 4년의 지정기간을 알고 이를 기대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허탈감과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며, 직접적으로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주어졌던 교육적 혜택을 한꺼번에 박탈하는 것이다.

많은 혁신학교들에서는 혁신학교를 찾아 일부러 이사를 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교육청이 정책에 대한 공신력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셈이 된다. 누구보다 정직, 약속, 용서를 강조하는 문용린 교육감이 할 일은 아니다.

넷째,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나 세력과의 협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일은 교육을 하는 사람, 더구나 서울교육의 수장이 할 일은 전혀 아니다.

교육이 무엇인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 아닌가? 문용린 교육감 자신도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교육적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서울교육감은 적어도 최소한 협의와 조정을 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아이들 앞에, 자신을 서울시교육감으로 뽑아준 서울 시민 앞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게 아닌가?

정쟁의 대상 된 '교육'... 피해는 학생이 본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부장관 만큼은 바꾸지 않고 19년 동안이나 직을 유지하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교육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핀란드 이야기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일처럼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그 피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서울시의회는 '문용린 교육감이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혁신학교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교육청의 혁신학교 지원 축소에 반발한 바 있다. '교육이 아니라 정치에만 관심 있는 교육감'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문용린 교육감은 지금이라도 당장 서울시의회와의 교육청 예산 협의에 나서야 한다. '혁신학교 예산은 1원도 못 올린다'는 식의 말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문용린 교육감이 교육감 만큼이나 행복교육이 이뤄지길 간절하게 바라는 서울시민이자 교사의 말에 한 번쯤은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혁신학교#문용린교육감#서울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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