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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없는 과학기술자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들 ⓒ 뜨인들
SNS시대다. 페이스북은 하루에 3억 건, 트위터는 하루 4억 건 포스팅, 유트뷰 동영상은 1초에 1시간 분량이 업로드 된다고 한다.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나지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SNS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뒤로 돌려보면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도 불과 4-5년이고, 휴대전화도 10여 전이다. '벽돌'같이 생긴 휴대전화가 수백만 원이었다. 최신형 스마트폰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시골 어머니 집에는 '우물'이 있다.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더운 여름 두레박으로 물을 퍼 등목을 하면 수돗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어릴 적에는 지게를 졌다. 리어카만 들어가도 엄청 편리했다. 지금은 경운기로 농사짓는 이들도 거의 없다. 초등학교와 집이 10리가 넘었다. 1학년때부터 걸어다녔다. 추운 겨울 새벽 같이 일어났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무한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이 사람을 이렇게 편리하게 만들었다.

대량생산이 '빈곤을 영속화'한다

무한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은 사람을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사람냄새나는 '참 좋은 세상'은 만들어주지 못한다. 경제도 '양극화'이지만, 정보사회에서 정보도 양극화이다. 그리고 기술문명 역시 '양극화'다. 경제와 정보 양극화는 많은 관심이 있지만, 과학기술문명 양극화는 별 다른 관심을 없었다.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가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이다. 독점은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어 쓸 때 살아가는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다.

'적정기술'. 생경한 단어다.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운용되는 기술을 뜻한다. <국경 없는과학기술자들>(뜨인돌)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히말라야 오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준 대학생봉사단, 수은중독의 위험에 노출된 인도네시아 금광지역 주민들을 위해 수은증기 회수기를 개발한 박사 등 책 속엔 분야별 20여 개의 사례들"이 실려있다.

"과학기술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적정기술은 마하트마 간디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가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원조는 인도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마하트마 간디였다. 그는 영국이 인도에 이식한 대량생산 기술들이 인도의 빈곤을 해결하기는커녕 인도인들을 기술의 특혜를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고 실업 상태에 머무르는 대다수 민중으로 나누고, 이러한 구분 속에서 빈곤을 영속화한다고 비판했다."(21쪽)

자본가들은 '대량생산'을 통해 사회를 더 낫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대량생산이 빈곤을 영속화한다고 간다는 주장한 것이다. 간디는 "세계 빈곤의 해결은 '대량생산(mass production)' 기술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prouduction by the masses)'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적정기술은, 기술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

기술개발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성장론자들은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서민들 주머니는 항상 부족하다. 성장 열매는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에게 돌아간다. 박근혜정권도 '알바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 일자리 질은 생각하지 않고, 수만 늘리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일자리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중심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적정기술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인간중심이다.

적정기술의 정신과 실천은 이제 인간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중심주의가 아닌 인간중심주의! 인간과 환경 모두를 위한 기술!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적정기술, 나아가 21세기의 기술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난 세기의 낡은 슬로건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제안하고, 과학은 탐구하며, 기술은 순응한다.'(People Propose, Science Studies, Technology Conforms)"(31쪽)

사람이 희망이라고 했다. 자본이 중심이 되면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SNS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로 역할을 해야지, 사람이 SNS에 매이면 결국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위해 기술이 존재해야지 사람이 기술을 위해 존재하면 결국 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널리 공유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어느 누구의 창조성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꺾이지 않게 하는 과학기술"이 바로 "적정기술"이다. 기술이 이윤만을 추구할 때 그것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적정기술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준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정기술은 '최고의 기술'일 수 있습니다. 최선의 설계와 최적화된 맞춤 기술이 들어가야 하고, 지속성과 확장성까지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안에 이윤 추구를 뛰어넘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을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적정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73쪽)

선한 빛, 생명의 물, 번쩍이는 빛을 선물

따뜻함을 함께하는 적정기술은 히말라야 오지에 선한 빛을 비춘다. 히말라야, 위대한 자연 앞에 사람은 한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다. 신이 보호하는 이 아름다운 땅,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땅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문명은 아직 혜택받고 있지 못한다. 그 중 하나가 전깃불이다. '네팔솔라봉사단'은 그들에게 빛을 선물하기로 했다. 수도 카투만두에서 자동차로 10시간, 걸어서 다시 12시간 오지마을인  라마호텔에 '선한빛'을 선물한다.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설치를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서 "3! 2! 1!"을 외치며 전깃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만끽했지요. 한 주민은 우리가 오기 전에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꿈을 꿨는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며 좋아하고, 또 다른 주민은 저희에게 '불을 가져온 신'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어요.(128쪽)

그리고 온돌을 선물한다. 거기에는 국경도, 이념도, 피부색 구별도 없었다. '사람'만이 존재했다. 과학기술은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따뜻함을 선물한다. 이들이 전깃불을 선물했다면, 또 다른 사람들은 '물'을 선물한다. '팀앤팀 인터내셔널' 설립자 이용주씨는 1999년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했다. 그는 거기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물'임을 알았다.

"물이 없이는 병원을 만들 수 없고,
물이 없이는 학교도 못 열고,
물이 없이는 공동체마저 존재할 수 없으며,
물이 없으면 아예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멈출수 없는 사람들 중'

팀앤팀은 무조건 자신들이 다 수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 함께 잘 사는 것'이다. 김두식 대표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간단한 기술이 지구촌 어단가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습니다. 사실 최첨단 기술은 현지에 가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철기시대 사람들에게 칼이나 창을 건너뛰어 갑자가 총을 쥐어 주는 겪이나까요."(84쪽)

그러면서 그는 "문명의 개념이 없고 현대적인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의 삶에 맞춘 기술, 스스로 관리하고 수리하고 발전 시킬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현장에서 적정기술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갑자기 4대강이 생각난다. 시민들 피땀흘린 세금 22조원을 삽질로 허비하면서 죽음의 강으로 만든 전직 대통령은 "녹조는 강이 깨끗하다는 증거"라는 막말을 했다. 그러고도 뜻뜻하고, 당당하다. 통탄할 일이다. 물을 죽여놓고 저렇게 당당한 사람은 MB가 처음일 것이다.

MB는 강을 죽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람과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라고 말해야 한다. 여기 그런 꿈을 가진 이들이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로 이루어진 '섬광'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꿈을 적정기술을 통해 찾았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전공, 서로 다른 꿈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로 이웃을 돕고 싶다는 것! 나보다는 남을 위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가지고 있다.

"'섬광'은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섬광' 팀원들은 '섬김의 빛'이라는 뜻에서 팀 이름을 정했다. 어두운 곳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기술로 섬기며 반짝이는, 그런 빛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들이 뿌린 빛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더욱 반짝이기를 기대해 본다."(156쪽)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바로 세워지고 존중받는 세상, 땅과 하늘의 모든 자연이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 소외와 빈곤의 고통, 억압과 착취의 폭력이 사라진 세상, 사람 살 만한, 나무 살 만한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다. 그런데 기술은 우리가 쓰다남은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는 쓰레기장이 아니다

"언젠가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선 한물간 것, 제3세계에서는 유용하다'. 나는 이게 아주 제국주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필요 없으니 너나 쓰라는 식이잖아요.(중략) 아프리카는 거지 나라도 아니고 쓰레기 처리장도 아닙니다. 나한테 필요 없는 걸 그들에게 주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적정기술은 보급이 아닙니다. 창조입니다. 창의적이어야 적정할 수도 있는 건데,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들이 그들에게 유용하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합니까."(283쪽)

조금 충격이었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에게 필요없는 것을 갖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정기술은 '보급'이 아니라 '창조'였다. 아프리카가 페품처리장이 아님을 가슴에 새기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한다. 적정기술이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기술을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원형을 테크네techne라고 썼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 이념을 성취, 구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기술의 원형적 의미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의 자유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현대문명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억압하는 기술이 되어버렸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제 적정기술을 통해 사람을 억압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구현하도록해야 한다.

"'인간이 제안하고, 과학은 탐구하며, 기술은 순응하다.'(People Propose, Science Studies, Technology Conform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이경선 지음 ㅣ 뜨인돌 펴냄 ㅣ 18000원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 적정기술과 지속가능한 세상

이경선 지음,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기획, 뜨인돌(2013)


#과학기술문명#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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