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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 바람으로 우는 아이를 데리러 나가서
노상에서 지상의 순경을 만났더니
'아니 어디를 갔다 오슈?'
이렇게 돼서야 그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 바람으로 닭모이를 주러 나가서
문지방 안에 석간이 떨어져 뒹굴로 있는데도
심부름하는 놈더러
'저것 좀 집어와라!' 호령 하나 못하니
이렇게 돼서야 그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 바람으로 체면도 차리고 돈도 벌자고
하다하다못해 번역업을 했더니
권말에 붙어나오는 역자 약력에는
한사코 ××대학 중퇴가 ××대학 졸업으로 오식(誤植)이 돼 나오니
이렇게 돼서야 그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 바람으로 주스를 마시면서
프레이저의 현대시론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고 있으려니
여편네가 일본에서 온 새 잡지 안의
김소운(金素雲)의 수필을 보라고 내던져준다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읽어보시오
나의 프레이저의 책 속의 낱말이
송충이처럼 꾸불텅거리면서 어찌나 지겨워 보이던지
이렇게 돼서야 그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1962. 8)

그 누구든 '내부 비판'을 하기란 쉽지 않다. '내부'로부터 배제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조직 순혈주의'가 강한 집단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다. 공무원 사회나 검찰 조직을 떠올려 보라.

그나마 문학판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불온성'이나 '전복성'을 갖는다. 진보주의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한 본령이 아닌가. 문학판 내부의 '순혈주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동인'이니 '계파'니 하는 말로 끼리끼리 뭉치는 패거리주의도 있다. 

수영은 해방 후 연극에서 시로 전향했다. 그런 '후래자(後來者)'여서였을까. 그는 문학판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작품 활동을 펼쳤다. 문인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1960년 10월 19일 자 일기에서는 이렇게 적기도 했다. 과거의 문학단체를 무형의 사회적 압력에 대한 피신처로 이용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또 다른 바람을 펼쳐놓기도 했다.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문학하는 사람이 그 어떤 단체도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그때문이었을까. 수영은 문학판을 향해 쓴소리를 자주 던졌다.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에는 시인다운 시인이나 문인다운 문인이 없었다. '나의 지론', 나아가 '세상의 지론'이 그렇다고 말했다. "알맹이는 다 이북 가고 여기 남은 것은 다 찌꺼기뿐이야"라는 말이 그 '지론'을 대변한다.

그 자신이 시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찌꺼기' 운운한 말은 스스로에게 분개했다. "이 이상의 모욕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탄식했다. 언젠가는 이 문제로 소설가 최정희에게 술주정까지 했다. 그가 자신에게조차 모욕적인 말을 하면서 '내부 비판'을 한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수영이 쓴 산문 중에 <시의 뉴 프런티어>라는 글이 있다. 거기에서 수영은 양심적인 문인들이 6·25 전에 이북으로 넘어간 여건을 냉정하게 돌아보자고 말한다. 그후 10여년간 남한에 남은 작가들이 이뤄 놓은 업적을 솔직하게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수영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들은 과연 그동안에 문학의 권위와 문학자의 존엄을 회수할 수 있었던가? (<시의 뉴 프런티어>, ≪김수영 전집 2 산문≫, 240쪽)

'문학의 권위'와 '문학자의 존엄'은 어디에서 나올까. <파자마 바람으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수영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도대체 "체면을 차려볼 궁리"(1연 5행)를 하지 않는다. "파자마 바람으로 우는 아이를 데리러 나가"(1연 1행)고, "닭모이를 주러 나가"(2연 1행)는 것부터가 그렇다. 속옷인 '파마자'를 입고 골목을 나가는 광경을 그려 보라. 어지간한 사람은 엄두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체면이고 뭐고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체면'과 담 쌓고 사는 것 같은 화자는 언뜻 대범해 보인다. 진짜 그럴까. 화자는 파자마를 입고 길거리에 나섰으면서도, '순경'에게 "'아니 어디를 갔다 오슈?'"(1연 3행) 하는 가벼운 인사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다. '석간'이 '문지방'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데도 "심부름하는 놈더러 / '저것 좀 집어와라!'" 하는 "호령 하나 못"(2연 3, 4행)한다. "××대학 중퇴가 ××대학 졸업으로 오식(誤植)이 돼 나"(3연 4행)와도 '한사코' 그 오식을 바로잡지 않는다. 

겁 많고 소심하며,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다.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하며 채근하지만 그저 말로만 끝나고 만다. 그는 한 눈 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인생의 한 길만을 줄기차게 따라 간다. "파자마 바람으로", "체면을 차려 볼 궁리"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못난 인생길을.

수영은 골방에 갇힌 문학인들을 증오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영웅주의'에 빠진 시인들을 혐오했다. 그는 다방에서 이유 없이 테이블을 치고 찻잔을 부수는 시인들의 치기에 냉소했다.

아니 찻잔을 깨뜨리기는커녕 무수한 영웅들이 다방 안에서는 절간에 간 색시모양으로 마담의 눈초리만 살피고 있는 것이 서울의 생태이다. 문화는 다방마담의 독재에 사멸되어 가고 있다. (위의 글, 위의 책, 240쪽)

수영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학문 탐구와 예술 창작이 정치인들의 턱 아래서 놀고 있는 세태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엄혹한 1960년대 초반에 이북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을 그 어느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그런 '문화사업'에 정부당국이 적극적으로 후원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가 또 있을까. 불온서적을 운운하는 옹졸한 문화정책을 지양해야 한다며 의분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영은 '파자마 바람으로' 골목에 나설 수 있었으나 '순경'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찌 소리 한 번 하지 못한 '소심남'이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당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불온한' 발언을 아무 거리낌 없이 토해 낸 '용기남'이기도 했다. 그만의 그런 방식으로 수영은 '문학의 권위'와 '문학자의 존엄'을 회수하려고 몸부림쳤다. 그것이 그 자신의 진정한 '체면'을 살리는 길임을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파자마 바람으로>#김수영#문학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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