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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농단을 지키는 문인석이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500살 먹은 천연기념물 향나무.
선농단을 지키는 문인석이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500살 먹은 천연기념물 향나무. ⓒ 김종성

서울엔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 온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가 많다. 이 나무들은 '6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갖가지 역사를 품고 있다. 노거수 중에서도 보존가치가 높아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이 바로 천연기념물이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은 적게는 수백 년에서 많게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나이테에 간직하고 있는 고목(古木)들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아직까지도 생명을 잃지 않고 매년 봄이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서울에 사는 총 12그루의 천연기념물 나무 가운데 두 그루가 향나무로 용두동 선농단과 종로 창덕궁에 살고 있으며 수령이 각각 500살, 700살이 넘은 노거수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 향나무 속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나무(常綠針葉樹)다. 상나무, 노송나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와 마찬가지 양성수(陽性樹)여서 해받이를 좋아해 그늘진 데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을 비롯해 경상북도 울릉도와 동해안에 자생하며 일본·중국·몽골에 분포한다.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던 선농단 향나무

 수피가 개성적인 향나무, 팔 벌려 환영하는 것 같다.
수피가 개성적인 향나무, 팔 벌려 환영하는 것 같다. ⓒ 김종성

 태풍 피해를 보기 전 장대했던 창덕궁 향나무.
태풍 피해를 보기 전 장대했던 창덕궁 향나무. ⓒ 문화재청

향나무는 옛 부터 정원이나 우물가에 심기도하지만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리던 중요한 장소에 심었다. 그런 장소 중의 하나인 용두동 선농단에 천연기념물 제 240호의 향나무가 살고 있다.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3.1m, 가슴높이의 둘레는 약 2.28m이다. 이 향나무는 선농단을 조성하였던 성종7년(1476년)에 중국에서 선물한 어린 묘목을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선농단(先農壇: 사적 제 436호)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제사가 끝나면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어 국을 끓이며,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지어서 농부들과 구경나온 노인에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어 제사에 사용된 막걸리를 나무에 붓는데, 이 때문에 선농단의 향나무는 술 마시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또한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선농단엔 측백나무와 리기다소나무, 물오리나무, 현 사시나무 등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데 제단의 문인석이 바라보고 있는 향나무가 군계일학처럼 가장 우뚝하고 키 크게 자리하고 있다. 선농단을 축조할 당시 예닐곱 그루의 향나무를 심었다는데 이 한 그루만이 살아남아 선농단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대개 오래된 향나무는 구불구불 비틀어져 자라는 것과는 달리 이 나무는 곧게 자라고 있는데 이유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라 여러 나무가 같이 심겨졌다가 키 키우기 경쟁에서 이긴 이 나무만 살아남아 그런 것이라고 한다.

선농단은 나무를 심는 식목일의 기원이 되기도 하였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정부는 처음 식목일을 정하면서 어느 날로 할지 고심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선례를 찾아보았더니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1493년 4월5일 직접 동대문 밖 선농단에 가서 밭가는 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마침 이 날은 청명과 한식날 전후이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기에도 좋은 때여서 4월5일을 식목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선농단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내년 4월까지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동대문구청에서는 선농단의 상징인 노거수 향나무 앞에서 매년 곡우(양력 4월20일경) 무렵 선농제를 재현하고 있다.

ㅇ 위치 ; 1호선 전철 제기동역 1번 출구 도보 5분
ㅇ 문의 ; 동대문구청 문화체육과 (02-2127-4321)

태풍에 상처 입은 궁궐의 향나무

 2010년 태풍 곤파스에 큰 상처를 입은 향나무의 마음 아픈 모습.
2010년 태풍 곤파스에 큰 상처를 입은 향나무의 마음 아픈 모습. ⓒ 김종성

 마치 용틀임하듯 구불구불 자라는 향나무 특유의 생김새가 무척 인상적이다 - 창덕궁 향나무
마치 용틀임하듯 구불구불 자라는 향나무 특유의 생김새가 무척 인상적이다 - 창덕궁 향나무 ⓒ 문화재청

창덕궁 향나무(천연기념물 194호)는 수령이 7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뿌리부분의 둘레가 5.9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2m, 남북 7.5m로 퍼져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 담장을 따라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학자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100m 정도 걷다 보면 절로 눈길을 끄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무려 700살이 넘은 신령스런 분위기의 향나무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자 왕실은 경복궁을 폐허로 버려두고 창덕궁만을 재건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750살로 추정되는 이 향나무는 1824~1827년 사이 그려진 궁중 기록화인 '동궐도'에도 지주로 받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영욕을 50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 이 생명체가 바로 천연기념물 창덕궁 향나무다.

창덕궁엔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뽕나무, 다래나무 등도 살고 있어 그 역사만큼 오랫동안 많은 노거수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왔다. 향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부정을 씻어 주는 정화 기능을 가졌다고 믿어져 이렇게 궁궐을 비롯해 사찰, 사대부의 집에도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러다 2010년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는데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인해 12m나 되던 키가 4.5m에서 부러지는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큰 가지의 절반 이상이 부러진 실제 나무 모습을 보니 마치 존경받던 집안 어른 한 분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우람한 줄기나 용틀임하는 모습은 남아 있어 천연기념물로의 보존 가치는 여전하다고 한다.

잘린 부분은 종묘제례나 궁중 행사 등에서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한다고. 향나무는 향을 풍기는 여러 식물 중 가장 유명하다. 나무를 태울 때 강한 향이 나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시신이 상할 때 생기는 냄새를 없애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향나무를 태우는 향은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도 믿어져 제례에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의 희생이 인간사에 많은 의미를 만들어준 셈이다.

위의 선농단 향나무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사는 나이 많은 향나무들은 모두 저마다의 강렬한 개성과 인상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 향나무의 가지들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무척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첫인상은 마치 나무가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무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 몸체에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듯한 모양의 줄기가 꼬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침 옆을 지나던 외국인이 "Oh, my God!" 감탄을 하며 다가갈 만하다. 향나무 특유의 용틀임 하듯 가지가 뒤틀린 모습하며, 우람하고 당당한 밑줄기는 그런 감탄사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비록 세월의 무게에 겨워 무거워진 몸을 철제 지지대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노거수의 위용은 여전하다.

소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나무지만 다른 나무들과 달리 향나무는 번식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잘 익은 씨앗을 땅에 심고 정성껏 돌봐주어도 싹은 잘 나오지 않는다. 향나무는 독특한 번식 전략을 갖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새를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택한 것. 향나무는 새들의 눈에 잘 띄는 열매를 가지 끝에 맺어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이 향나무 열매를 삼켜서 씨앗에 붙은 과육을 소화시키는 동안 씨앗의 껍질은 새의 소화액에 의해 서서히 부식된다. 곧이어 씨앗을 품고 땅에 떨어진 새의 배설물은 싹이 틀 때까지 적당한 온도를 제공하면서 씨앗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일정한 양분까지 제공한다. 스스로 새로운 자리로 옮겨갈 수 없는 향나무를 대신해서 새들이 더 넓은 공간으로 씨앗을 퍼뜨려주기까지 하는 흥미로운 후계목 생산 방법이다.

ㅇ 위치 ;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서 담장을 따라 100m 도보
ㅇ 관람문의 ; 창덕궁 안내소 (02-762-8261)


#향나무#선농단 #창덕궁#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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