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두 명이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와 나를 길러준 엄마인 외할머니. 옛날 그른 것 하나 없다고, 낳은 정보다는 길러준 정이라 했다. 나에게 엄마는 늘 "외할머니"였고 엄마는 또 다른 우리 집의 가장일 뿐이었다.
엄마는 손재주도 좋고 돈 버는 재주가 좋았다. 내 나이 4살 때 뒷마당이 넓은 2층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 집은 엄마가 처음으로 본인 명의로 산 집이었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는 엄마가 열심히 벌어 산 집에 얹혀사는 셋방식구가 되었다. 그렇게 내 유년은 엄마 없이 흘러갔고 나에게 모성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채우지 못한 빈 상자로 남아 있었다.
나는 나를 낳아준 엄마가 낯설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진짜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그리고 우리 세 자매는 엄마와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여전히 우리는 부족함 없이 키워준 엄마를 베풀어주는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로 보았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의 엄마는 나의 엄마와는 다른 전형적인 우리네 엄마다. 우리의 엄마는 평생을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의사로 바쁜 남편, 두 자녀 그리고 탈 많은 남동생을 건사하며 산다. 그리고는 허망하게 암에 걸려 죽는다. 엄마는 암에 걸려서도 나 떠나면 고될 가족 걱정이 먼저고 끝까지 돌봐드리지 못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 못난 남동생의 살 날 걱정뿐이다. 참 예쁜 가족은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자 모두 운다. 그리고 엄마가 가는 길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전형적인 신파물 소재로, 나와는 참으로 공통분모가 없는 이 책을 비가 오는 날 잠이 오지 않아 가볍게 손에 잡았다. 그리고 2시간 후 나는 얼굴에서 목까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울었을까. 흔하고 뻔한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왜 울고 있었을까….
내 엄마가 있었다. 책 속에 있는 평생을 고되게 희생만 해온 우리네 엄마가 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엄마는 평생을 자식을 위해 할머니를 위해 남편을 위해 허리가 끊어지게 손가락이 휘어지게 돈 버는 일만 했다. 그렇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우리 가족은 불편함 없이 속된 말로 잘 먹고 잘 살아왔다. 돈 버는 일만한 엄마를 나는 책 속에 엄마처럼 내 밥을 해주지 않고 내 옷을 빨아주지 않고 할머니를 봉양하지 않아서 내 엄마가 아니었다니. 나는 참 못된 딸이었다.
책 속의 엄마는 가족과의 가슴 절절한 이별의 수순을 밟고 남은 시간 그녀가 살고 싶어 했던 집에서 남편과 둘만의 지낸다. 그 짧은 시간 엄마는 한 남자의 여자로 웃고 어리광 부리고 게을러지며 조금씩 세상과 작별을 한다.
내 엄마가 어느 날 아빠에게 혼잣말 하듯이 "우리 애들… 내가 키웠다면 나를 좋아했겠지?" 라고 물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이 유독 작게 보여 손을 꼭 잡아주셨다고 했다. 애써 묻었던 내 엄마의 중얼거림이 책의 말미에 그려진 엄마의 모습과 겹쳐져 마음이 쓰라렸다.
누구나 살면서 풀지 못할 숙제들은 하나씩 품고 가져간다고 했다. 나에게 풀지 못한 숙제였던 엄마의 부재는 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기처럼 머리를 내리쳤던 이 책을 읽고 쏟아 내었던 내 울음에 그 오랜 세월 얽혀 있었던 못된 아집이 있었다. 엄마는 엄마다. 엄마가 딸에게 엄마가 아닌 그 무엇이 되겠냐는 말이다.
작가는 이 책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이라 했다. 내 엄마에게 바치는 나의 사모곡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진짜 딸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