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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 옳을 가(可)는 막대기처럼 생긴 정(丁)과 구덩이 모양의 구(口)가 결합된 형태로서 알맞다는 의미에서 옳다, 허락하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옳을 가(可)는 막대기처럼 생긴 정(丁)과 구덩이 모양의 구(口)가 결합된 형태로서 알맞다는 의미에서 옳다, 허락하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 漢典

사십대 중반의 유비가 스물일곱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인재를 초빙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이야기로 너무나 유명하다. 유비에게 제갈공명을 추천한 이가 바로 서서(徐庶)인데 유비가 서서에게 직접 가서 데려오도록 하자, 그는 가서 만날 수는 있어도 제갈공명을 설득하여 오게 할 수는 없다(可就見不可屈致)고 했다. 결국 유비가 직접 몸을 굽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갈공명은 어리고 낮은 신분의 자신을 세 차례나 찾아온 유비에게 감동하여 그의 군사(軍師)가 되어 삼국정립의 초석을 다진다.

옳을 가(可, kě)는 도끼자루 등에 쓰이는 막대기처럼 생긴 정(丁)과 구덩이나 입 모양의 구(口)가 결합된 형태로 제사에 필요한 그릇을 고정시키거나 농작물을 심기 위해 판 구덩이가 알맞다는 데에서 '옳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입 구(口)가 소리부이면서 동시에 의미적으로도 말로 뭔가를 '허락하다'는 뜻도 생겨났을 것이다.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등석(鄧析)은 그리스 소피스트에 견줄만한 유명한 변론가였다. 그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가론(兩可論)'을 주장했는데 다음 일화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전해진다.

한 부자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시신을 건졌다. 유족들이 그 시신을 사려하자 건진 사람이 너무 많은 돈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등석을 찾아 해결책을 구하니 등석은 그 시신을 대체 누구한테 팔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며 가만 있으면 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시신을 사러오지 않자 이번엔 건진 사람이 등석을 찾아왔다. 그러자 등석은 당신이 아니면 누구에게서 시신을 살 수 있겠느냐며 가만히 기다리면 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전통 질서가 무너진 어지러운 시대가 등석과 같은 궤변론자를 탄생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백이, 숙제)과 달라서 가(可)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고 했다. 맹자는 이를 두고 벼슬할 수 있으면 벼슬을 하고, 벼슬을 해서는 안 될 때는 벼슬을 하지 않으며 오래 머물 수 있으면 오래 머물고, 떠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무가무불가'의 태도라고 평가했다.

어떤 정해진 형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일의 내용과 현실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야말로 '해야 할 것도, 해서 안 될 것도 없는' 진정한 자유인만이 누리는 높은 경지일 것이다. 유연한 사고, 개방적 태도와 자유로운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일생을 걸고 정진해 다듬어야 할 '구덩이'가 아닐까.


#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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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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