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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엄마 때문이다. 엄마 때문에 지각이야."

아침부터 몇 번이나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둘째 아이는 엄마 때문에 지각하게 생겼다며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냈다. 이건 무슨 엄마가 신경질 받아주는 흡입기도 아니고 툭하면 엄마에게 신경질을 낸다. 이제 돌을 넘겨 갓 세 살이 된 막내 녀석도 가만히 잘 놀다가 어디선가 내가 나오면 나한테 엉겨 붙고 칭얼댄다. 이상하다. 아니 속상하다. 아이들은 왜 엄마한테 그렇게도 짜증을 내고 모든 잘못을 엄마 탓이라고만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니 나의 학창 시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스물이 되기 전에 직장을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만 들어도 괜찮다던 곳에 운 좋게 합격하여 다녔지만, 나는 정말 근근히 직장을 다녔다.

아침마다 일어나지 못해서 깨우는 엄마에게 오만 짜증을 내고 지각할라치면 그도 저도 모두 엄마 탓이라고 또 짜증을 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허허 웃으시며 "그래, 그래…" 하시며 받아주셨다. 한 번은 회사가 너무 가기 싫어서 아예 이불을 뒤집어 쓰고 9시 넘어 까지 잠을 자버렸다. 집 전화는 쉴새없이 울렸고, 엄마는 연신 허리까지 숙여가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비굴하게 그래?"

나는 참으로 못된 딸이었다. 엄마는 항상 남들에게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신은 잘 돌보지 못하셨다. 나는 어떤가? 나는 우리 애들이 (그것도 셋이나 남편까지 넷) 짜증을 쏟아내면 가만히 있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아예 자기들이 준 짜증에다 잘못한 일들까지 모두 샅샅이 기억하고 있다가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아준다.

그러고 나면 니가 잘했네, 엄마가 잘했네 하며 한참 동안 집안이 북새통이 되고 여튼 집안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되어 누구 하나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세 금이 쫙 갈 지경이다. 더욱이 남편까지 나설 때는 엄마라는 내 입장이 참으로 난감하다.

내 정신적 연령은 아직 20대 언저리에 머물러 있어서 밴댕이 속처럼 좁고 게다가 아이들 마냥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중학생 학부형이 되고 보니 엄마라는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가끔은 세 살짜리 막내 정도만 담아낼 수 있는 엄마의 심성인데, 어느덧 아이들은 저만치나 자랐다.

그렇다. 나는 내 짜증도 분노도 잘 다스리지 못 하는 덜 자란 어른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으로 고민하고 설익은 인성으로 아이들과 늘 부대낀다. 게다가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마다 귀찮은 마음이 앞선다. 셋이 혹은 넷이 한 번씩만 불러대도 가만히 엉덩이 붙일 수가 없으니. 그리고 "엄마…"라고 부르는 목소리에서부터 나에게 뭔가 잘못을 뒤집어 씌울 기세라고 나는 감지한다.

"엄마 내 실내화? 내 교복 빨았어?"

그러나, 아이들이 항상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아닌데, 주로 그렇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찮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부를 때는 주로 하찮은 일로 불러댄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응당 해야 할 일을 가지고 나를 부른다. 나는 마치 비서처럼 쫒아가지만, 어느 날 뒤돌아본 나는, 예전에 명쾌하고 똑부러지게 직장 생활을 하던 그때의 내 모습은 없고,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나만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엄마가 절대적인 존재가 될 때도 있으니까. 아이들이 전화를 해서 아빠가 받으면 무조건 엄마부터 찾는다.

"엄마는?"

별 할 말도 없지만, 그냥 엄마만 찾는다. 마치 내가 친정에 전화했을 때 아버지와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와는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나는 예전의 엄마 세대와는 다른 교육방식과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여전히 전업주부라서 시간이 천지에 넘쳐나게 보이는 가족에겐, 뭐든지 받아줘야 하는 어깨가 무거운 엄마이다.

때로는 언제라도 늘 보듬어 주는 엄마의 넓은 품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나 자신을 돌보고 싶은 한 사람이기에 갈등하고 속상하다. 그리고, "내 짜증은 누가 받아줄까" 대답은 분명하다. 스스로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덧붙이는 글 | 세상 모든 엄마 힘내세요



#엄마#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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