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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여론의 지지가 높다. 아마 가장 대중적인 정서는 "그런 놈들에게 1년에 27억 원이라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들어가다니! 피 같은 세금의 낭비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따져 보자. 그것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10.2%의 국민이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데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다. 아마 다음 총선에서는 그 대가를 상기하면서 좀 더 신중하게 투표할 것이다.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이 따른다.

국고보조금이 아깝지만 낭비는 이미 오래 되었다

통합진보당이 지난 총선에서 얻었던 10.2% 득표는 노회찬이나 유시민, 심상정, 김성진 등이 대표적 인물이라 알려져 있는 여러 세력들이 함께 얻은 표이기도 하니, 그들을 보고 표를 주었던 국민들의 경우에는 노회찬 등에게 약간의 책임을 물어도 될 듯하다. 

더 따져 보면 어디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겠는가?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해서 진보당이 성남과 관악과 광주, 순천 등지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의석수는 국고보조금의 배분 비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민주당에도 약간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다.

이렇게 하여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조금 더 뼈아프게 아까워하자. 그러면서 이 모든 낭비들이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 낭비는 1980년대의 아픈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저 198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 이상, 유수한 대학들의 학생회 예산은 어떤 세력을 키우고 누구의 술과 밥이 되었던가? 그 돈은 아깝지 않은가? 1990년대 이후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상당한 규모의 예산과 민주노총에 지원된 국가 예산은 또한 어떤 세력들의 유지에 도움이 되었던가?

한국의 주사파운동은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이 벌인 학살로 인하여 시작되었다. 악마가 괴물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두환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의 반란과 광주시민 학살을 방임하고, '3저 호황'에 열심히 돈을 벌어 '보수 세력'이 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당의 존속 여부를 심판할 권한은 국민에게 있다 

법무부의 발표를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확실하게 어거지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온갖 이유를 일단 모두 나열하고 보는 개인 변호사들이 하는 짓을 법무부가 하다니! 통합진보당의 위헌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어거지 주장은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법부무는 이 땅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일제히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시험대에 오르게 하였다. 법무부가 열거한 통합진보당 강령의 어느 구절도 위헌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아쉽게도(?) 주사파는 항상 강령 따위에 자기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혹시 통합진보당 강령을 만들 때는 유시민 등도 함께 하지 않았던가?). 통합진보당 강령의 문구는 지극히 대한민국 헌법의 범위 안에 있다.

결국 통합진보당의 활동에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른바 RO의 집회가 녹취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합정동 집회에서 진정한 '내란 음모'는 없었다. 다만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는 조직에 다시 긴장을 불어넣기 위한 유사 종교 집회가 있었다. 그들은 '사상'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총과 폭탄을 말했을 뿐이다. 단지 입으로!

"RO는 북한과 연계되어 있으며, RO가 진보당을 장악하였으니 곧 진보당은 위헌 정당이다." 그것이 입증된다면 좋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로 입증되기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법률가의 양심으로 아마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기각된다면 진보당의 기(氣)만 살려놓은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판결을 무제한 늦추면서 총선 결과에 의해 진보당이 의석이 없는 원외정당이 되거나 극소수의 의석만 가지게 되어 거의 정치적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그 후에 판결하여 법무부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다.

원래 정당의 해산을 헌법재판소에서 하도록 한 데는 정당을 보호하자는 취지도 있지 않았을까? 1957년의 진보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등록을 취소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헌법재판소도 없었다. 진보당 정당 등록 취소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굳이 헌법재판소가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당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를 득표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된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4년마다 정당을 냉정하고 무섭게 심판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존속 여부도 조만간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오직 국민만이 가진 신성한 권한을 헌법재판소가 감히 침범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진보의 진화를 늦추자는 기획인가?

이제 나 같은 통합진보당 비판자들은 일제히 통합진보당을 향한 비판을 멈추고 통합진보당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다. 참 미칠 노릇이다. 야권의 진화는 또 다시 맞추고 뒷걸음질친다. 이렇게 질질 끌면서 야권과 진보는 과거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부산지하철 노동조합,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등의 집행부 선거 결과는 이제야 노동운동이 주사파를 비롯한 정파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내년 지방 선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희망 섞인 예상대로라면 주요 도시에서 주사파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다.

울산과 창원, 광주의 지방의회에서 통합진보당은 제1야당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다수는 낙선할 것이고, 소수는 탈당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통합진보당은 울산, 창원, 광주에서 제1야당의 지위를 잃게 되고, 성남 등지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지방의회 의석을 잃고, 통합진보당의 뿌리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 이탈자가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 심판 앞에 두려워하면서 국민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을 탈당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헌법재판소가 지방 선거 이전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라고 판결한다면, 과연 누굴 도와주게 되는가?  

이미 법무부가 해산 심판을 청구하면서 통합진보당과 80년대의 추억을 먹고 사는 정파들, 구(舊)좌파를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한다. 야권과 진보의 진화를 방해하고자 하는 심모(深謀)와 원려(遠慮)의 기획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반국가적 음모라도 있는가?


#통합진보당#주대환#해산심판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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