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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책 표지 ⓒ 토담미디어

거칠다. 그리고 거침없다. 그래서 '동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럽다. 그러면서 울림이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둔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정한영의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은 아이와 아빠가 함께 읽기에 절대로 적합하지 않다. '동화책'을 표방하면서 전래동화나 유명한 동화를 차용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동화'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까지 곁들였지만, 그렇다. 

어린 자녀와 함께 읽다가 자칫하면 아빠가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아이가 물으면 일부 내용은 대답이 난감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물쭈물하면서 "넌, 몰라도 돼" 하는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끔찍한 내용으로 점철된 잔혹동화도 아니다.

결국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는 아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니면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이거나. 기준을 너무 높였나?

뒤집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늘 보아 오던 장면, 늘 들어오던 이야기들의 뒷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혹시 백설 공주는 날라리가 아니었을까? 흥부의 가난은 무능하고 대책 없는 그의 기질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이몽룡과 변학도의 사랑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의도는 이렇게 '프롤로그'에서 쉽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나쁜 동화책>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 건 당연지사. 그렇지만 작가가 독자가 의도한 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그 책은 읽을 가치가 전혀 없다. 독자의 허를 '푹푹' 거침없이 찔러줘야 독자는 호기심에 겨워 책장을 넘길 테니까.

그런 면에서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은 독자를 그다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름대로 작가의 재기가 번득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에는 전부 14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전래동화 '해님 달님'부터 시작해 '단군 이야기'와 '뽕이 이선달' 이야기를 거쳐 '백설 공주'가 날라리인지 아닌지 진단한다. 또한 '청개구리 싸이'를 통해 획일화를 풍자하면서 거침없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내용을 새롭게 살을 붙여 풀어낸다. '춘향전'이라고 피해갈 수 없다. '토끼와 거북이'도 작가는 독특한 시각으로 현실을 비틀어 담아낸다.

아주 기발하다.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동화는 진부하게 풀어내 신선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거칠어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작가의 직설화법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그럴 때 헛웃음이 더 많이 튀어나오면서 현실을 개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먼저 '단군이야기'를 살펴보자.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땅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고, 곰이 백일동안 마늘과 파만을 먹고 여자가 되어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동굴 안에서 인간이 되고자 한 동물은 곰 외에도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도 더불어. 그 이야기를 작가는 뼈대는 남겨두고 내용을 새롭게 채웠다.

환웅은 색시감을 구한다는 공고를 낸다. 조건은 100일 동안 동굴에서 마늘과 파만 먹고 견뎌야 한다는 것.

작가는 곰과 호랑이의 식성이나 습성을 비교해 곰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곰은 잡식성이요, 호랑이는 육식성이니 곰이 마늘과 파를 먹고 더 오래 견딜 수밖에 없단다. 또한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니 호랑이와는 아예 게임이 안 된다는 거다.

호랑이가 삼칠일(21일)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튀어나가자 곰이 이긴 건 당연했다. 곰은 백일을 채우지 않고 고작 삼칠일 만에 호랑이 뒤를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갔고, 웅녀라는 이름을 얻어 드디어 환웅과 결혼한다. 이후 곰은 100일이라는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는 문제제기를 받게 된다.

그러자 '찌라시'들은 '승부를 인정하지 못하는 찌질이'라며 오히려 이들을 공격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은 곰이 먹은 마늘과 파가 담긴 바구니 안에 마늘 모양의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는 내부고발까지 나오게 됐다.

하지만 '떡찰'은 오히려 내부고발자에게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나. 어디서 많이 듣던 내용이 아닌가. 요즘 항간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느닷없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청개구리 싸이' 통해 획일화 풍자... '세상 염장지르기'로 해석할 수도

'청개구리 싸이'는 말춤으로 미국을 평정한 가수 싸이를 소재로 삼았다. 남들은 개골개골 울 때 굴개굴개 운 개구리가 약장수 눈에 띄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순회공연을 떠나 떼돈을 벌고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개구리들이 싸이를 흉내 내면서 전부 다 굴개굴개 울기 시작했다.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무슨 의미냐고? 잘 생각해 보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또한 내용을 엄청나게 뒤틀었다. 때문에 행간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토끼와 거북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달리기 경주를 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서 늘 술이 문제다. 술 권하는 사회는 문제를 마구 만들어낸다.

전래동화에서 토끼는 빠른 발만 믿고 게으름을 피우다 성실한 거북이에게 추월당해 망신살이 뻗쳤다. 그렇다면 <나쁜 동화책>에서 토끼는 어쩌다가 거북이에게 졌을까? 그것도 경주를 세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거북이에게 완전하게 판정패 당했다.

첫 번째 경주에서 토끼는 함께 술을 마셨던 동물 친구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전부 다 거북이 편이었던 것. 거북이의 우정(?)은 너무나도 두터웠다. 친구들이 토끼의 진로를 방해하려고 계속해서 전화질을 하거나, 쉬었다 가라고 유혹을 했던 것. 경주에서 진 토끼는 억울했다. 두 번째 경주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주에서 거북이는 주자를 계속 바꿔치기 하는 꼼수를 써서 또 토끼의 뒤통수를 쳤다. 거북이가 승부조작을 했다고 폭로한다고 해도 언론에서 토끼의 말을 믿어줄리 없었다. 아마도 기사 한 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억울한 토끼는 다시 한 번 경주를 제안한다. 삼세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거북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번에야말로 토끼가 결승점에 먼저 들어갔다. 하지만 심판은 거북이의 승리를 선언했다. 왜 그랬을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다. 선녀와 나무꾼이 아이를 낳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는 결말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풀어냈는데, 설득력이 있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두자.

이 정도로 예를 든다면 <나쁜 동화책> 내용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리라. 그렇다면 작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이 책을 썼을까? 작가는 아이들이 아닌 '아빠'들을 겨냥해서 <나쁜 동화책>을 썼다고 프롤로그에서 털어놓는다.

나쁜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는 것이 세상 아빠들이 자녀들에게 해주어야할 책임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가? 이제 엄마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가르쳐 준다면 아빠들은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위험한 곳인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 -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 프롤로그에서

하나 덧붙이자면 정한영 작가의 이력은 상당히 다채롭다. 한 때 충남지역의 오일장을 돌면서 생선장수를 했던 작가는 아버지 때문에 '부동산 경매'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3권의 부동산 관련 책을 출간한다.

'염장지르기' 시리즈로 <생선장수 경매 염장지르기>,<생선장수 전원마을 염장지르기>,<생선장수 월세 염장지르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염장을 지르는 대상은 하우스 푸어나 렌트 푸어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개미'들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부동산 이야기는 흥미로워 쉽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옥천신문>의 최대주주이기도 한 그는 팟 캐스트 '생선장수 부동산 염장지르기'를 진행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의 분석과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정곡을 콕콕 찌른다.

이런 그가 우리의 현실을 동화에 빗대 거칠게 그리고 거침없이 비판하는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세상 염장지르기'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 - 사회적으로 올바른, 그러나 묘사와 전개가 어설픈 이야기
정한영 (지은이)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10월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 - 사회적으로 올바른, 그러나 묘사와 전개가 어설픈 이야기

정한영 지음, 토담미디어(빵봉투)(2013)


#나쁜 동화책#정한영#염장지르기#세상#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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