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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김종길

해가 저물었다. 강도 저물었다. 섬진강을 닮은 붉은 얼굴의 사내가 검은 강으로 총총 사라졌을 무렵 우리는 장군목으로 향했다. 천담마을에서 좁은 다리를 건넜을 때만 해도 장군목이 지근거리에 있는 줄만 알았었다.

다리 건너 초입에서 장군목 표지판을 보고 산비탈 오르막을 들어서니 길은 양 갈래다. 한쪽은 산을 향해 치닫고, 다른 쪽은 석전마을 농가에서 막다른 길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좁고 급한 산길마저 포기하고 다시 717번 지방도로로 나와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시간을 잃어버린 장군목 가는 외진 길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사실 구담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곧장 걸어가면 장군목까지 1.68km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안 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였다. 임실 구담마을에서 강 건너로 보이는 물돌이 마을이 회룡마을이다.

구담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세월교를 통해 강을 건너면 회룡마을을 지나 장군목으로 이어진다.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진메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이 장군목구간이다. 구담마을에서 강을 건너 장군목까지 곧장 걸어갔다면 얼마 되지 않았을 거리를,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난 초행길은 멀기만 했다.

 장군목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전시장이다.
장군목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전시장이다. ⓒ 김종길

717번 지방도로를 얼마간 달리자 오른편으로 장군목 표지판이 나타났다. 관전리 삼거리에서 21번 국도와 잠시 합류했던 길은 구미마을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날 시멘트 길로 바뀌었다.

한때 3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는 구미마을에서 섬진강을 만났다. 원래 구미마을은 마을 입구에 있는 거북형상의 바위 꼬리가 마을로 향해, '거북이 꼬리'란 뜻으로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길은 더욱 좁아졌다. 낮은 고개를 하나 넘으니 강물이 다가왔다. 당산나무 쉼터에서 봐도 강줄기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강으로 바짝 붙은 길은 차가 다니기에는 아무래도 좁다. 그 흔한 밭뙈기 하나 없는 긴 골짜기에 오직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의 물소리만이 이따금 적막을 깨운다.

골짜기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길은 더욱 외지고 인적조차 없어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생겼다. 분명 유원지라면 그 흔한 상가나 적어도 차 두어 대는 비킬 수 있는 넓은 길이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선입견은 이곳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섯 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어스름이 내린 섬진강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라이트를 켰다.

조바심을 내며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 때 강 건너 숲에서 건물 몇 채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쪽 산비탈에도 이리저리 파헤친 공사 현장이 나왔다. 섬진강마실휴양단지였다. 이 한적한 곳에 휴양단지라. 며칠 푹 쉬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장군목의 기묘한 바위들
오랜 세월이 빚어낸 장군목의 기묘한 바위들 ⓒ 김종길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김종길

얼마나 흘렀을까. 굽은 강을 따라 난 비뚤비뚤한 길을 타박타박 가다 보니 어느새 시간도 잊고 거리도 잊어버렸다. 나중에 구미마을에서 섬진강을 따라 겨우 2km 남짓한 거리를 들어왔다는 걸 알았지만 그 거리감의 현실마저 완전히 잊고 말았다.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암만 봐도 걸작이네! 요강바위

한적한 강변 풍경에 시선을 두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강 가운데로 예사롭지 않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던 기묘한 바위들이 어느새 강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장군목이었다. 냉큼 강으로 달려갔다.

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한 샘물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가는 섬진강 최상류에 있는 장군목은 길이 212.3km의 섬진강 구간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소재지에서 약 7km 떨어진 어치리 내룡마을에 있다.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그곳이 풍수지리상 두 개의 험준한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세 즉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 명당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장구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만 년 동안 동북쪽의 용궐산(645m)과 남쪽의 무량산(586.4m), 서쪽의 벌통산(450m)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온 강물이 각양각색의 바위들을 빚어 놓았다. 마치 용틀임을 하며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형상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바위들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과 오랜 세월이 빚어낸 약 3km에 걸쳐 있는 이 일대 기암괴석의 경관은 볼수록 놀라울 뿐이다.

 요강바위는 높이가 2m, 폭이 3m로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된다.
요강바위는 높이가 2m, 폭이 3m로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된다. ⓒ 김종길

 요강바위는 섬진강 일대에서 최고의 자연조형물이다.
요강바위는 섬진강 일대에서 최고의 자연조형물이다. ⓒ 김종길

그중 강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요강바위'는 단연 독보적이다. 어떻게 이런 모양의 바위를 빚었을까. 오랜 세월이 빚어낸 걸작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요강바위는 섬진강 일대에서 최고의 자연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암만 봐도 걸작이다!

요강바위는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돌이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요강처럼 움푹 팬 이 바위는 높이가 2m, 폭이 3m로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된다. 한국전쟁 때 마을 주민 다섯 명이 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요강바위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실제 바위 가운데는 사람 3~4명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깊고도 넓다.

한때 이 바위가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1993년에는 실제 중장비까지 동원한 도석꾼들에 의해 도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도난 후 마을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1년 6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 그대로 장군목에 앉아 내룡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고 있다.

 요강처럼 움푹 팬 요강바위는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돌이다.
요강처럼 움푹 팬 요강바위는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돌이다. ⓒ 김종길

해는 떨어진 지 오래고,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강을 가로지른 현수교에 올랐다. 2010년도에 완공한 현수교는 길이 107m, 폭 2.4m로 이 일대의 강변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장군목은 주변의 회문산 등지에서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늘 수량이 풍부하고, 소와 여울이 많아 물놀이는 물론 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장군목으로부터 순창군 적성면 일대에 있는 섬진강은 '적성강'이라고 불린다.

장군목은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다. 이 일대는 섬진강을 따라 트레킹 코스 등 각종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변을 따라 섬진강문화생태탐방로(임실~구례 총거리 88km, 순창구간 26km)가 있으며, 섬진강자전거길(임실~광양 총거리 148km, 순창구간 29.8km), 예양천리마실길(8.3km, 왕복 2시간), 용궐산 등산로(8.2km, 3시간) 등이 있다.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섬진강에서 장군목 일대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김종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쳔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장군목#요강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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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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