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지 뼈가 없습니다."
5번째 구덩이(세로 12.5m X 가로 3m)속에서 61구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민간인 희생자 유해추가발굴단(단장 김도태 충북대 교수)은 23일 오전 11시 현장에서 유해발굴 설명회를 개최했다.
발굴단은 현재까지 발굴된 희생자 유해는 모두 61구로 17~25세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5년 전 발굴한 317구를 합쳐 왕촌 살구쟁이 희생자는 최소 378구로 늘어났다.
그러나 박선주 책임조사원(충북대 명예교수)은 "지표면과 유해사이의 거리가 불과 30~50 센티미터에 불과해 대부분 뼈가 삭아 없어지고 온전한 사지 뼈가 없다"며 "유해보존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사망원인은 모두 헌병대 또는 경찰에 의한 사살 또는 확인사살로 추정했다. 출토된 탄피와 탄두, 탄창 등 총기류(59점)가 모두 M1 소총과 카빈소총이기 때문이다.
"여성 유해매장지 또 있다"... 추가 희생자 더 있을 가능성 커
희생자는 공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 또는 보도연맹원으로 보인다. 28점의 단추 중에는 흰 단추와 군청색 단추가 섞여 있다. 발굴단은 흰 단추는 보도연맹원, 군청색 단추는 당시 공주형무소 수감 정치범으로 보고 있다.
안경 한 점도 발견됐다. 특히 서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보철을 한 치아도 두 점이 출토됐다. 박 책임조사원은 "당시 치아에 보철을 한 경우는 드문 경우"라며 "유가족들의 증언이 있을 경우 희생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드러난 유해는 오는 27일까지 수습한 후 5년 전 이곳에서 발굴한 317구의 유해와 함께 충북대 추모관에 함께 봉안할 예정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곳에 있는 네 개의 구덩이에서 모두 317구의 유해를 발굴한 바 있다.
희생자가 더 매장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근 마을에 사는 이종구씨는 "1950년 당시 끌려와 죽은 사람이 17도라꾸(트럭)라고 들었고 매장지 맨 위쪽에 여성 세 명이 따로 묻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 트럭을 최소 30명으로 계산하더라도 희생자가 500명에 이른다. 진실화해위원회도 이곳에서 최소 400~5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여성 희생자의 매장지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곽정근 유족회장 "작은 위령비라도 세웠으면..."
박 책임조사원도 "미발굴 유해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특히 여성 희생자 매장지가 존재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있는 만큼 추가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유해발굴지가 역사적 교훈장으로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은 "추모공원을 조성해 작은 위령비라도 세워 희생자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관할 자치단체 등의 관심과 배려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상왕동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 9일께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 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 위령사업 지원 ▲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지원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