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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포구의 그림 같은 풍광, 역시 압권이었다.
강경포구의 그림 같은 풍광, 역시 압권이었다. ⓒ 홍경석

지난 20일 강경을 찾은 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우선 하나는 '제1회 청년작가 박범신 전국백일장' 참여 때문이었고, 다음은 그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강경발표젓갈축제'의 구경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강경에 가려면 논산부터 먼저 들러야 했다.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논산에서는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탑승해야 하는 수고만 든다. 아무튼 이윽고 도착한 강경포구의 너른 축제장에서는 각종의 행사가 왁자지껄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날의 내 머릿속에는 온통 박범신 전국백일장에서 대상과 상금 100만 원을 받아 당면한 경제난을 씻어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강경포구의 바로 옆 야트막한 산에 위치한 옥녀봉에 오르니 강경발표젓갈축제장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이었다.

 옥녀봉의 백일장 접수처
옥녀봉의 백일장 접수처 ⓒ 홍경석

"나눠드린 원고지와 필기도구는 다 받으셨죠? 이제부터 제1회 청년작가 박범신 전국백일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중도일보> 기자의 안내에 이어 심사위원장인 시인 겸 연무고 교장은 글감으로 '소금'과 '가을'을 알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소금'을 주제로 한 글을 원고지 10매에 모두 채웠다. 논산시가 주최하고 <중도일보>와 KT&G상상마당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날 행사는 황명선 논산시장을 비롯해 <중도일보> 송명학 사장, 김미진 KT&G상상마당 대표와 논산계룡교육지원청 교육장, 논산문화원장 그리고 각급기관단체장과 백일장 참가자와 그 가족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단상에 오른 박범신 작가
단상에 오른 박범신 작가 ⓒ 홍경석

하지만 인원이 많을수록 백일장의 경쟁은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는 법. 어쨌거나 1시간 만에 완성된 원고지를 접수하고 난 뒤 비로소 강경발표젓갈축제 구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강경포구의 수려한 풍광을 더욱 가까이 음미할 수 있는 배까지 타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결정도 안 된 백일장의 결과인지라 그런 '경거망동'은 괜스레 부정 타는 짓이란 자격지심에 금세 접었다. 시간은 저벅저벅 흘러 오후 5시가 가까워지기에 다시 옥녀봉에 올랐다.

치열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심사가 늦어진다며 작가 박범신씨가 무대에 올라 시간 끌기 덕담을 해주셨다. 마침내 백일장의 결과가 발표됐다. 장려상과 동상, 은상과 금상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절망감과 일말의 희망이 급속도로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대상 한 명뿐! '저기서 내 이름이 호명되면 나는 오늘 강경젓갈을 최소한 5만 원 이상 살 것이며, 또한 논산까지는 아예 택시를 대절하여 갈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러한 나의 기대를 끝내 저버리고야 말았다. 다른 여성이 단상에 뛸 듯이 올라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쓸쓸히 뒤돌아섰다. 저만치의 강경포구가 어쩜 그리도 내 맘을 대변하는 듯 쓸쓸한지 단박에 거기로 뛰어들고만 싶은 충동이 꿈틀거렸다.

 "강경 젓갈 맛, 끝내주네유!"
"강경 젓갈 맛, 끝내주네유!" ⓒ 홍경석

 옥녀봉에서 내려다 본 강경젓갈축제장의 모습
옥녀봉에서 내려다 본 강경젓갈축제장의 모습 ⓒ 홍경석

그럴 즈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여태 안 오는 겨?" "응, 지금 끝났어. 곧 갈게. 근데 여기서 다시 시내버스로 논산까지 간 뒤 기다렸다가 대전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하기에 다소 시간이 걸릴 테니 저녁 먼저 먹어."

강경발표젓갈축제장을 지나치려니 막바지 공연의 무대에 오른 여가수의 격정적 노래가 겨우 정적을 찾으려는 강경포구를 다시금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일장에서 아무런 수확조차 거두지 못 한 나는 죄인의 심정이 되어 코가 쑥 빠져 거길 달아나듯 나와야만 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바로 옆에선 1톤 트럭의 뒤에 달린 기계에서 장작구이로 3마리에 만 원하는 통닭을 많은 이들이 사 먹고 있었다. '나도 저기에다 소주 좀 먹고 가?' 그러나 그리 하면 분명 홧술이 될 터였다.

홧김에 마구 마시는 술은 폭음으로 연결될 것이고, 그건 또한 집으로 가는 길마저 잃게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 뻔했다. '참자! 물은 깊을수록 고요하다고 했지 않았던가?'

나는 그날 백일장에서 충격의 낙선을 맛봤다. 한데 그 같은 결과는 천학비재(淺學菲才)한 나의 지적 수준을 새삼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튼 내 사전에 고난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낙선 아픔이 당선의 기쁨으로 배가될 것임은 당연지사일 터. 따라서 나는 내년에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리곤 반드시 대망의 대상을 쟁취하리라!

덧붙이는 글 | 없음



#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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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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