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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러운 세상 더 살면 뭐 하겠느냐. 하직하고 싶다."

백발의 고준길(71·용회동마을)씨는 울먹이며 "나 뿐만 아니라 주민들 모두 이런 생각뿐"이라 말했다. 그는 16일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송전탑 공사장 진입로에서 비닐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농성장을 찾았더니, 그는 먼저 "말문이 막힌다"는 말부터 했다.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다. 40년간 교단생활하고, 부산에서 8년간 3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뒤 정년퇴직했다. 7년 전 부인과 밀양시 단장면 용회동마을에 와서 살고 있다.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진입로에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는 주민들이 비닐을 설치해 놓고 밖에 "다 죽이고 공사해라"라고 써놓았다. 주민 고준길씨가 비닐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진입로에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는 주민들이 비닐을 설치해 놓고 밖에 "다 죽이고 공사해라"라고 써놓았다. 주민 고준길씨가 비닐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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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송전탑 반대에 적극 나섰다. 손자뻘 되는 경찰대원들과 몸으로 싸우기도 한다. 지난 2일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는 경찰과 충돌하다 쓰러지기도 했고, 11일 충돌과정에서는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게 중요한 책무다. 국가가 그렇게 하지 않기에 국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선 싸움이다. 그래서 정당한 싸움이다. 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생존권이다. 주민들은 그래서 투쟁에 나섰는데 정당성도 있다. 공권력 3000명을 투입해서 70~80대 노인들과 맞서고 있다. 노인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 아니냐. 공권력이 노인을 강경 진압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 국무총리도 밀양을 다녀가지 않았나.
"국무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밀양을 왔다 갔다. 단계로 볼 때, 그 분들이 주민과 대화한다고 해서, 한전 사장보다는 장관이 올 때 조금 기대를 했고, 장관보다는 총리가 올 때 상당히 많은 기대를 했다. 총리는 국정 2인자 아니냐. 그런데 그 분들이 와서 한 말은 한전과 똑같았다. 총리와 송전탑 반대 주민들 만남의 자리도 결렬되었다. 한전 사장과 장관, 총리가 다녀간 것은 의례적인 수순이었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 국무총리가 방문했을 때 보상안이 나왔는데.
"한전은 보상밖에 대안이 없다고 해왔다. 장관도 총리도 같은 말을 했다. 보상 밖에 대안이 없다고 할 바에는 밀양에 올 필요도 없었다. 정말 실망이 컸다. 한전 사장과 장관뿐만 아니라 총리까지 밀양 송전탑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 외면했다. 변죽만 울리다 갔다. 적어도 총리는 본질적인 문제의 접근을 했어야 했는데 장관과 한전 사장과 다르지 않았다. 총리도 밀양 문제의 해결의지가 없고, 그냥 소수 노인들이 희생하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보상 말고 대안이 없다는 말이 상당히 원망스러웠다."

- 지금 주민들의 심정은?
"지금 주민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8년간 싸워 오면서 노인들은 한이 맺혀 있다. 한결같이 말한다. 이 더러운 세상 더 살면 뭐하겠느냐고, 하직하고 싶다고. 국가와 지도자, 가진 자에 대한 원망이 포함돼 있다."

- 밀양 송전탑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라 보는지?
"송전탑이 마을을 비켜갔다고 하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송전선로는 울주, 기장, 양산, 창녕을 지나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밀양은 너무 마을 가까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전체 30개 마을 가운데 20개 마을이 500m 안팎에 송전선로가 지나간다. 송전선로로 피해 보는 집이 1400세대로 파악되고 있는데, 피해가 너무나 광범위하다. 건강 문제도 있지만, 재산 피해가 엄청나다. 그것이 본질이다. 송전탑 문제의 본질은 목숨을 부지하려면 거기서 떠나야 하고, 집과 땅을 살 사람이 없으니 맨손으로 떠나야 한다는 게 본질이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위해 1일 장비와 인력을 현장에 투입한 가운데, 이날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마을 철탑 현장 입구에는 주민 30여 명이 모여 장비 진입 등을 막으며 경찰과 대치하거나 충돌했다. 사진은 교장 출신인 고준길(71)씨가 진입을 막는 경찰에 고함을 지르며 호소하고 있는 모습.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위해 1일 장비와 인력을 현장에 투입한 가운데, 이날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마을 철탑 현장 입구에는 주민 30여 명이 모여 장비 진입 등을 막으며 경찰과 대치하거나 충돌했다. 사진은 교장 출신인 고준길(71)씨가 진입을 막는 경찰에 고함을 지르며 호소하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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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 피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인지.
"며칠 전 우리 동네에 집이 한 채 팔렸다. 몇 해 전에 팔겠다고 내놓은 집인데, 이제사 매매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은, 내가 보기엔 4억 원 정도는 되는데, 매매가가 1억5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집주인은 2억5000만 원이나 손해를 보고 판 것이다. 지금은 그 정도 피해인데, 만약에 철탑이 세워지고 나면 더 클 것이다."

- 한전은 가구마다 400만 원을 보상한다고 하던데.
"한전은 가구마다 평균 400만 원을 보상한다는데 말이 안된다. 우리 동네는 평균 400만 원도 돌아가지 않더라. 재산 피해가 엄청난데, 그 정도 보상 받는다고 되겠나. 철탑이 서게 되면 누가 들어와서 살려고 하겠나. 집도 땅도 안 팔리니까 건강을 위해 다른 데 가서 살려고 하면 맨 손으로 떠나야 한다. 그런 상황을 주민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것이다. 정부는 그것을 모르고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 400만 원 갖고 어디 가서 집을 사겠나. 4억 원이면 몰라."

- 한전 사장도 밀양을 여러 차례 다녀갔는데.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이 국회에 나가 발언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 앞에서 그는 밀양만은 송전선로를 잘못 그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 밀양이 전력대란의 주범처럼 되어 있다. 적반하장이다. 전력대란의 위험을 밀양 사람들한테 덮어씌우고 있다. 국가가 철면피다. 조환익 한전 사장이 피해 마을을 둘러보면서 우리 동네에 온 적이 있었다. 그가 나무를 베어낸 곳을 보고 한전 직원한테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묻더라. 주민들이 매우 가깝다고 하니까, 그는 '정말 가깝네요. 가슴이 무겁다'고 하더라. 한전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

- 마을 주민들은.
"우리 동네는 30가구 정도다. 이번에는 아픈 사람들 빼고 20여 명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왔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서 온 주민만 벌써 2명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병원 후송된 주민은 6명이다. 절반 정도다. 누구는 누가 시켜서 주민들이 여기에 나왔느냐고 묻던데, 절대 그렇지 않다. 너무나 절박하고,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되기에 나온 것이다. 내 삶의 터전을 다 빼앗기기에 주민들은 열심히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삶의 터전이 강탈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 죽이고 공사하라며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것이다."

- 외부세력 논란은.
"외부세력이라고 하는 분들은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회정의가 유린 당하는 현장에서 그것을 외면하는 시민은 제대로 된, 성숙한 국민이라 볼 수 없다. 사회정의가 유린 당하는 심각한 현장을 외면하면 국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밀양 노인들의 절박하고 피 터지는 한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달려와서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밥을 해오기도 하는데, 성숙한 시민들을 외부세력이라고 하면 되겠느냐. 국가폭력을 행사하는 정부와 공권력, 한전이 외부세력이다."

 밀양 주민 고준길씨가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진입로에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비닐을 설치해 놓고, 밖에 "다 죽이고 공사해라"고 써놓았다.
 밀양 주민 고준길씨가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진입로에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비닐을 설치해 놓고, 밖에 "다 죽이고 공사해라"고 써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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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은 밤샘 농성하기도 하는데 힘들지 않는지.
"10월 1일부터 농성해 왔으니까 16일째 노숙 생활이다. 노숙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누가 시켜서 한다면 한계가 있다. 이 일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 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오셨는데, 교육철학과 현재 밀양 상황을 비교해 보면.
"공익과 사익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선하느냐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서로 대치하면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공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적으로 재산 피해가 있으면 국가에서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에 나와 있다. 재산상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응당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댐 수몰지나 고속도로 편입부지는 집도 사주고 이주비까지 주지 않느냐."

- 언론 보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언론매체들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해야 한다. 이제까지 8년 가까이 제대로 보도도 하지 않다가 최근에 보도하면서 너무도 사실과 다르게 왜곡 보도하고 있다. 우리 주민들은, 노인들은 정말 분하고 억울하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생명줄이 끊기는 처참한 상황을 언론은 외면하고 정부와 한전의 편에 서서 옹호하는 보도만 하고 있다. 주요매체들이 정말 개탄스럽다. 정부나 한전보다 더 무서운 게 언론이다."


#밀양 송전탑#고준길#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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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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