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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갈 행(行)은 네거리를 그린 상형자다. 네거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가다’, ‘행하다’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갈 행(行)은 네거리를 그린 상형자다. 네거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가다’, ‘행하다’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 漢典

중국의 명문 칭화(淸華)대학 교정에는 "행동이 말을 이긴다(行勝於言)"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베이징대학의 교풍이 미명호(未名湖·이름 없는 호수)에서 보듯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정신'을 강조한다면 칭화대학은 부단한 노력과 '실천'을 중시하는 교풍을 지닌 셈이다.

신영복의 판화 중에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는 문구가 있는데 세상을 바꾸어 가는 힘은 두 발로 뛰며 함께 실천하는 것에서 비롯됨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갈 행(行, xíng)은 네거리를 그린 상형자다. 조금씩 걸을 척(彳)과 자축거릴 촉(亍)의 결합으로 보는 것은 분석의 편의상 만들어낸 것으로 문자 발전 단계상 옳지는 않다. 갑골문, 금문의 '行'은 꼭 우리가 약도를 그릴 때의 네거리 모습을 그린 것 같다.

네거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가다', '행하다'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또 '行'은 한자에서 '항'으로 읽기도 하는데 사람들로 붐비는 네거리에 물건을 사고파는 곳도 많았을 것이니 '가게'라는 뜻도 생기고, 함께 길을 가는 '줄', '항렬'의 의미도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명사로 쓰일 때는 '항'으로 읽고 동사로 쓰일 때는 '행'으로 읽는다.

나그네가 되어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여행(旅行)이다. 삶이 어쩌면 그렇게 늘 새로운 풀을 찾아 떠도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먼 길의 시작은 늘 스스로의 발아래(千里之行, 始於足下)라고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일러준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 떠나는, 이른바 유목민, 노마드(nomad)는 그래서 어쩌면 공간의 이동보다 그 발아래의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왼발과 오른발을 움직여 어딘가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좌우를 넘나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유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노마드'일 것이다. 그런 '노마드의 네거리'를 스스로의 발아래 구축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들어 새로운 소통이 생겨날 것이고, 누군가는 그 네거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노마드의 여정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은 철저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의 발걸음으로 이룩된다. 또 그 실천의 시작은 늘 스스로의 발아래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먼저 행동하고 말은 그 행동을 뒤따라야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고 했다. 머리를 경유해 마음을 움직인 생각도 결국 발이 움직여 하나의 행(行)함으로 완성되어야 의미가 생긴다. 그 행함이 있어야 그 뒤를 잇는 말도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행함'으로 '말'을 대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행동이 말을 이기니까.


#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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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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