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고자 이렇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비겁한 세상에서 저 또한 비겁자로서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합니다. (중략) 같은 꿈과 희망을 쫓았던 분들에게, 전 그 꿈과 희망마저 버리고 가는 비겁한 겁쟁이로 불러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그 꿈과 희망을 찾는 끈을 놓지 마시고 꼭 이루시길…. 어머님께,어머님 못난 아들이 이렇게 먼저 떠납니다. 죄송합니다."지난 7월 15일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사무장이 남긴 유서내용이다. 박정식씨가 사망한 지 52일이 지난 5일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원회'는 유족들과 협의해 전국노동자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동안 박정식대책위 '현대차의 사과', '손배가압류 철회·원상회복', '공장 안 노제보장', '장례비 일체 지급', '유족보상' 등 5가지를 현대자동차 측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박정식대책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박정식씨가 사망한 지 52일이 지나도록 최소한의 사과조차 없었으며, 어떠한 장례비 지급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지회를 대화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 구본조 조직부장은 "현대차는 '장례 일정이 확정되면 유감정도 표명할 수 있다'는 망발을 하는가 하면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에 대한 가처분을 진행한 것도 모자라 추후 고소·손해배상을 하겠다는 협박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정식대책위는 장례식 날 성명을 통해 "대법원 판결이 지켜져 정규직전환이 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박정식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현대자동차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망자에 대한 책임은커녕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현대자동차를 강력히 규탄하고 추후 불법파견투쟁을 더 힘있게 하자는 결의와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날 장례는 오전 10시 온양장례식장 발인제를 시작으로, 오전 11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 앞 영결식, 오후 1시 아산시청-온양관광호텔-온양온천역 광장 노제, 3시 30분 천안풍산공원묘원 하관식의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장례식은 노동계, 시민단체, 농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여했다.
한편 영결식이 진행된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는 노동자들에게 '몽구산성'으로 불리는 콘테이너로 담벼락을 치고 있었다. 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장 너머로 안전모를 착용한 사람들이 모여 영결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정식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
"1년 365일 근조리본을 떼지 못하고 있다. 1996년 OECD 가입 후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자살률과 산재사망률, 2013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박정식씨 영결식에서는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계와 사회단체 인사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신승철 위원장은 "43년 전 전태일 열사는 '나를 아는 모든 이들, 나를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억압에 굴하지 말고 싸우라고 했다. 박정식 열사 역시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고 호소했다"며 "그들 모두 무엇을 얻고자 해서가 아니라 모순된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노동자의 꿈과 희망을 위해, 억압과 착취를 뚫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우자"고 말했다.
박상철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세상, 노동이 즐거운 세상으로 바꾸겠다"며 "박정식 동지가 못다 한 일을 죽지 못한 동지, 살아남은 동지들이 하겠다"고 말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회 정태효 목사는 "1% 가진 자들만을 위해 99%의 사람이 노예된 세상을 거부하며 당당하게 죽음으로 정면승부한 박정식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며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는 정규직'이라고 내린 판결로 대한민국 법에 따라 그를 '故 박정식 정규직 노동자'라고 불러주자"고 말했다.
최만정 민주노총 충남본부장은 "유족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없는 현대 자본의 태도에 가슴 치며 분노했지만, 현실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분노와 좌절을 딛고 박정식 열사가 그토록 꿈꿨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하나되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弔詩>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 시인 임성용나는 죽지 않았습니다누가 날더러 죽었다고 이야기 합니까한여름 그 무더운 7월의 뙤약볕 아래 서른 다섯 청춘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아무리 불러도 대답해 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아 나는 살아있습니다나는 죽지 않았습니다무엇을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내가 살아왔는지얼마나 뜨거운 분노의 거리를 내가 달려왔는지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나는파업의 현장에서 노숙농성장 보도블럭에서여전히 머리띠 두르고 피켓을 들고단단한 주먹으로 서 있습니다나는 죽지 않았습니다50일이 넘게 꽁꽁 얼어붙은 냉동고에서나는 이렇게 나의 두 발로 걸어나왔습니다나를 죽이고자 눈을 부릅뜬 자들 앞에서내가 죽었다고 하지 마세요나보다 먼저 죽어간 친구들 앞에서내 영정을 놓고 한송이 꽃을 바치지 마세요나는 죽지 않았습니다내가 지나온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비정규직 철폐투쟁 10년의 길입니다대법원 판결이행 정몽구 구속의 길입니다저 끝없는 광야의 시간이 멎은 길빛나는 태양이 가리키는 대지의 길내가 가혹하게 사랑했던 노동자의 길입니다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나를 위한 눈물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죽어도 결코 이대로는 죽을 수 없는 나는환한 내 웃음이 머물던 자리정의와 승리가 피를 흘린 자리그 자리를 내 목숨으로 영원히 지킬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