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식물은 꽃을 피운다.
작은 꽃 안에서는 비밀스러운 연애소설이 들어 있다.
씨방을 품은 암꽃술과 그들을 둘러싼 수꽃술들, 그들을 만나게 해 줄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젤리를 닮은 꽃밥과 향기, 모든 것들은 그냥 허투루 존재하는 것이 없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필요에 따라 꽃술들을 만드는 것이다.
꽃술의 세계는 철저하게 모계사회다.
암꽃술은 단수, 수꽃술은 복수다. 꿀을 찾아 나선 곤충들이 이들의 만남을 주선하니 곤충들은 결혼중개소 사장인 셈이다. 아무리 못생긴(?) 꽃도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어떤 식물은 꽃이라는 거창한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예 꽃술을 내어놓고 곤충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람에 의지하여 수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사초과의 꽃술들은 돛단배를 닮았으니 하늘은 그들의 바다다.
사초과의 꽃들이 가을 초입에 많이 피어나는 이유는, 바다가 그만큼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얼핏보고 지나칠 수 있는 마이크로의 세상, 그 세상들은 우리 눈으로 인지하지 못했어도 존재하는 세상이다.
비밀스러운 연애소설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감정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