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명숙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내정자와 편집국 차장급 이하 평기자들이 2005년 4월 15일 밤 '100분 토론'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편집국장에 임명되기 전, 평기자들과의 토론이 정례화되어 있다.
서명숙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내정자와 편집국 차장급 이하 평기자들이 2005년 4월 15일 밤 '100분 토론'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편집국장에 임명되기 전, 평기자들과의 토론이 정례화되어 있다. ⓒ 남소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23년 동안의 언론인 생활을 마감한 곳이 <오마이뉴스>다. 언론인 생활의 대부분을 <시사저널>에서 보냈던 그는, 잠시 공백기를 거친 뒤 2005년 4월 18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맡았다. 이듬해인 2006년 7월 31일까지 1년 3개월 가량 <오마이뉴스>와 함께 했다. 애초 2년 임기였는데, 중도 하차한 까닭은 '길' 때문이었다.

2006년 9월, 스페인 산티아고 길(800km) 도보 순례에 나섰다. 이듬해인 2007년부터 본격적인 제주도 길 답사에 나섰고, 그 해 9월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올레 1코스(말미오름~섭지코지)는 지난해 11월 21코스까지 이어지면서 제주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했다. 5년 여에 걸친 대장정의 결과였다. 내륙과 섬의 5개 알파(α)코스까지 합치면 전체 26개 코스에 총 길이는 425km다. 일직선으로 서울~부산 거리보다 길다.

2007년 8월 31일, 제주올레에서 첫 보도자료를 냈다. "차를 타고 훌쩍 둘러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쉽게 그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걸은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 또한 머무른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는 올레 취지는 지금봐도 울림이 크다. '집으로 통하는 골목길'이라는 뜻의 제주도 옛말인 '올레' 이름은 건축가 김진애(전 국회의원)가 제안한 것이었다. 나중에 KT 광고에서 사용한 '올레(Olleh)'는 같은 발음이지만, 헬로(Hello)의 철자를 뒤집은 신조어다. 이 또한 제주올레의 인기에 편승한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제주올레는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려놓은 '역작'이다. 그런 탓에 '서명숙'이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그러나 내게는 한때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언론사 선배, 인간 서명숙의 체취가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계급장을 뗀' 서명숙은 건망증 하나만큼은 프로 수준이다. '깐깐한' 기자 서명숙, 편집국장 서명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후배들이 농반진반으로 '일상 생활 장애'를 지녔다고 할 정도다.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광화문 대우빌딩(하얀색 쌍둥이 빌딩)에 있었던 때의 일이다. 서명숙 편집국장 시절이니 2005년이나 2006년 어느 하루가 분명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점심이 늦다. 지면 배치를 마치고, 내근하는 편집부 기자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그 어느 날도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을 나섰다. 서명숙 국장과 몇 명의 후배 기자들이.

5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명숙 선배의 휴대폰 통화가 길게 이어졌다. 일행들은 몇 차례 엘리베이터를 통과시키고, 서 선배의 통화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장시간의 전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끊자마자, 그가 갑자기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일행은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한참 후에 사무실에서 나온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내 휴대폰이 없어졌어. 내 책상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없네. 어떻게 하지?" 아직 채 열기가 식지 않은 휴대폰을 오른손에 꽉 쥔 채,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서명숙 선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후배 기자들은 더욱 난감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전 직장이었던 <시사저널>에서도 전화에 얽힌 서명숙의 건망증은 유명했다. 문정우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의 증언이다. 서명숙 선배가 휴대폰으로 어디엔가 전화를 걸고 있었단다. 그때 공교롭게도 본인 책상 위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더니 상대편에서는 침묵 모드. 신기할 정도로, 이런 일이 서너 차례 반복됐다. 드이어 서명숙 선배의 뚜껑이 열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했으면 이야기를 하셔야죠?"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 기자가 한 마디를 건넸다. "서 선배, 혹시 휴대폰으로 본인 사무실 전화를 건 거 아니에요?" 또다시 서 선배의 뚜껑이 열였다. "아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내가 나한테 전화를 건다는 게 말이 돼?" 말이 씨가 되었다. 원인이야 어찌됐건 간에 본인 휴대폰에 남겨진 통화기록을 보니, 사무실 본인 전화번호가 찍혀져 있었단다. 이 정도면, 건망증도 아마추어 수준은 넘어선 게 아닐까?

서명숙의 건망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사람이 갖고 있는 기억의 총량이 있는데, 한 곳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곳에서 부족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서명숙의 책 <식탐>을 보면, 먹는 것에 관한 기억은 놀랄 정도로 발달해 있는 또다른 그를 만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고 빈 틈 많은 그를 볼 때마다 제주올레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게 다 그의 건망증 덕이다. 

※ [좋은 소식]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제23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에 선정됐습니다. '일가상'은 농촌공동체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 故 일가 김용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일가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입니다. 매년 한국과 아시아 인사 가운데 사회공익과 농촌 발전을 위해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오는 9월 7일 오전 11시 서울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서명숙#제주올레#10만인클럽#10만인리포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