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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 현립 규슈 도자 문화관에 전시된 아리타 자기입니다. 이 자기는 오래전 유럽에 수출되었던 것을 일본 수집가가 다시 사 모아서 이곳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가 현립 규슈 도자 문화관에 전시된 아리타 자기입니다. 이 자기는 오래전 유럽에 수출되었던 것을 일본 수집가가 다시 사 모아서 이곳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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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아침부터 이마리(伊万里), 오가와치야마(大川内山), 아리타(有田) 등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일찍부터 자기를 만들어 구웠던 곳입니다. 특히 아리타 도자기는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1598 년) 때 일본에 끌려온 이삼평 등 도공들이 처음 자기를 구웠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만든 자기는 일본 국내 귀족들은 물론 유럽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리타 자기를 통해서 일본을 유럽에 알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리타 자기가 자랑거리입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선조들이 이곳까지 끌려와 자기를 구울 수밖에 없었던 통한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도자기는 일찍이 중국에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동물의 뿔이나 알 껍질들을 그릇으로 이용하거나 그것을 본떠서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새지 않는 튼튼한 그릇을 돌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리타 시라카와 이초메에 있는 이삼평 무덤입니다. 아리타에는 무덤뿐만 아니라 기념탑이나 아직도 후손들이 자기를 만드는 곳도 있습니다. 공동묘지 가운데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위쪽 왼쪽에 무덤이 있습니다. 부러진 묘지석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아리타 시라카와 이초메에 있는 이삼평 무덤입니다. 아리타에는 무덤뿐만 아니라 기념탑이나 아직도 후손들이 자기를 만드는 곳도 있습니다. 공동묘지 가운데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위쪽 왼쪽에 무덤이 있습니다. 부러진 묘지석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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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은 그릇을 만들고 다시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고 다시 그 위에 유약을 칠해서 색을 내면서 물이 새지 않고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술이 고려에 전해져 비취색의 고려청자로, 조선 시대의 백자로 발전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자기의 선진 기술을 부러워하였고 그것을 만들어보려는 욕심이 도공의 납치로 이어졌습니다.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 도공들은 처음 많은 고생을 했지만 아리타에서 자기를 굽는 흙을 발견하여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아리타에서 만든 자기는 일본 귀족들에게 공급되었습니다. 일찍이 중국 자기가 유럽 궁중이나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명나라와 청나라의 정치적 격변기 때 중국의 정세 불안으로 자기 중국 수출이 중단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자기의 공급처로 일본을 선택하여 일본 아리타 자기가 유럽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아리타 자기입니다. 보통 도자기는 흙의 종류, 유약의 사용 여부, 가마의 온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아리타 자기입니다. 보통 도자기는 흙의 종류, 유약의 사용 여부, 가마의 온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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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기록이나 동인도회사의 무역 거래 기록에 의하면 1650년 자카르타에 일본 자기 145점 등 여러 가지 그릇이 수출되기 시작하여 1653년에는 자기 2200점이 수출되고, 1659년 자기 56700점이 네덜란드로 수출됩니다. 정유재란 때 조선인 이삼평등 도공이 일본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토를 찾고 가마를 만들어 자기를 굽기 시작한지 백 년 만입니다.

아리타에서 만든 자기는 아리타뿐만 아니라 아리타 부근 자기를 만드는 흙을 얻기 쉽고, 가마를 만들기 좋은 지형, 가마에 불을 피울 나무르로 얻기 쉬운 곳 등에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아리타 인근에서 만든 자기는 이마리 항구를 통해서 배로 나가사키로 옮겨져 일본 여러 곳과 유럽으로 보내졌습니다.

지금도 아리타에는 조선 사람 이삼평의 무덤, 기념탑, 그 후손들이 자기를 굽는 곳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가와치야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려인 무덤이 있으며 무덤 건너편에는 고라이바시라고 하여 고려 다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마리 가까이 오가와치야마(大川?山)에는 고려인무덤(왼쪽이 묘지석이고 오른쪽은 수리 기념 표지석입니다.)과 고려다리입니다. 이곳은 일찍부터 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나베시마한이 일본 국내용 자기를 굽던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고려다리 위 산속에 있는 다케신사와 그곳에서 내려다본 이마리 시가지입니다. 건너편 바다 너머 한반도가 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마리 가까이 오가와치야마(大川?山)에는 고려인무덤(왼쪽이 묘지석이고 오른쪽은 수리 기념 표지석입니다.)과 고려다리입니다. 이곳은 일찍부터 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나베시마한이 일본 국내용 자기를 굽던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고려다리 위 산속에 있는 다케신사와 그곳에서 내려다본 이마리 시가지입니다. 건너편 바다 너머 한반도가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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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무덤이나 고려인 무덤 위에 있는 신사, 아리타에 있는 이삼평 무덤 등은 모두 서쪽을 향해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형적으로 서쪽으로 난 지역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아리타에서 서쪽은 멀리 한반도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기는 자토를 재료 그릇을 만들어 말린 다음 가마에서 섭씨 9 백 도 정도로 구운 다음 그릇 겉에 코발트나 철분으로 그림을 그리고, 석회석과 장석 등 입자가 가는 유약을 칠해서 가마에서 섭씨 1300도로 구운 다음 다시 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다시 섭씨 800도로 구워서 만듭니다.

   도자기는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는 사치품이 아닙니다. 값이 싸고 실용적이고, 깜찍한 것들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자극합니다.
 도자기는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는 사치품이 아닙니다. 값이 싸고 실용적이고, 깜찍한 것들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자극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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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중국 사람들은 자토를 발견하여 높은 온도에서도 만든 그릇이 터지지 않고 유리 성분이 그릇 겉에 잘 녹아 멋진 자기를 만들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고려청자의 멋진 비취빛을 새롭게 만들었으며 상감기법 등을 가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선 백자에서는 담백한 조선의 멋을 백자그릇에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한반도 도공들은 한반도의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중국의 채색 자기를 받아들여 개성적인 멋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상업 전략을 통해서 유럽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이것은 이삼평뿐만 아니라 일찍이 스에키(須惠器)라고 하는 한반도의 도자기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 일찍부터 일본에 전해져 그것이 일본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발전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삼평 이후 자기를 만드는 흙(자토)을 캐는 곳입니다. 사진 왼쪽 아래가 자토입니다.
 이삼평 이후 자기를 만드는 흙(자토)을 캐는 곳입니다. 사진 왼쪽 아래가 자토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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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사가 현립 규슈 도자 문화관, http://www.pref.saga.lg.jp/, 2013.8.12.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삼평 무덤#사가 현립 규슈 도자 문화관#아리마 자기#이마리#고려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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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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