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앞에는 '금세기 최고의 스타일리시 락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이런 엄청난 수식어가 어울릴 만한 작품인지 의심을 품는 예비 관객,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고 나면 안다. 할머니 관객도 '스탠딩'하게 만드는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 바로 <헤드윅>이며, 그런 수식어를 가질 자격은 충분히 차고도 넘침을 말이다.
지난 6월 8일부터 백암아트홀에서 상연을 시작한 뮤지컬 <헤드윅>의 여덟 번째 시즌은 지난 두 달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7월 말인 현재, 무더운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굴 한 달여간의 여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만난 뮤지컬 <헤드윅>은 언제나 그랬듯이, 또 한 번 흥분의 도가니를 경험케 했다.
보고 또 보는 뮤지컬 <헤드윅>
주옥같은 배우들이 역대 헤드윅으로 명성을 남겼으나 가장 주목받은 배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조승우와 송창의, 두 배우의 이름이 거론된다. 조승우는 한국공연 오리지널 캐스트로 2005년 초연과 2006~2007년 시즌3, 송창의는 시즌2와 2009~2010년 시즌5에 출연했다. 실로 오랜만의 컴백이다.
여기에 초연 이래 <헤드윅>과 가장 오랜 인연을 이어온 이지나 연출가가 만나 2013년 헤드윅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반가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부지기수,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공연장을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또한 극장 로비 한편에 마련된 MD부스에서는 관람 금액의 10%를 적립해주는 쇼노트 카드를 발급, 이를 발급(적립)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을 통해 <헤드윅>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제작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7월 27일 기준으로 800여 명이 가입했으며, 이들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곤 두 차례 이상 공연을 관람한 상태다.
한셀·헤드윅 그리고 1인치
헤드윅의 원제는 'Hedwig and the Angry Inch'로, 우리말로 옮기면 '헤드윅과 열 받은 일인치 정도'가 되겠다. 세상에 이런 제목도 있냐며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점은 헤드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961년 동독, 엄마와 단둘이 살던 여자 아이처럼 예쁘고 소심한 소년 한셀은 암울한 자신의 환경을 탈출하기 위해 미군 병사 루터와 결혼한다. 그 과정에서 한셀은 엄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 수술을 받지만, 싸구려 수술의 실패로 그에겐 정체불명의 살덩이 1인치가 남게 된다.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락 가수 헤드윅의 이야기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길 원하는 특별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우리 역시 그처럼 가슴 한 구석에 숨겨뒀으나 언젠간 극복해내야만 하는 1인치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관객들의 혼을 쏘옥 빼놓는 조승우
조드윅(조승우가 분한 헤드윅을 일컬어 팬들이 부르는 애칭)이 등장하자 비명 섞인 환호성이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빨간 매니큐어를 손톱에 곱게 칠하고, 금발의 가발을 쓴 채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로 한껏 멋을 낸 조드윅은 객석 반응에 "좋아하든지 말든지"라며 시니컬한 말투로 말하곤 관객들의 뜨거운 시선을 못 이기겠다는 듯 "나보고 어쩌라고!"를 내뱉으며 공연을 시작했다. 단 한 번의 퇴장 말곤 줄곧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노래를 하는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참 매력적이다.
담담하게 어릴 적 이야기를 늘어놓다간 그 시절 즐겨듣던 음악들을 불러줬고, 토미와의 만남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사연들을 고백할 때는 다소 흥분에 겨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발을 벗고 가슴 속에 품었던 토마토를 짓이기는 장면에서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엿볼 수 있다.
그가 관객들에게 물었다. "웃는 게 쉬워요, 우는 게 쉬워요?" 대답이 없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웃는 게 쉽지, 그래서 난 이렇게 웃어요!" 그 말에 관객들은 울었고, 결국 웃고 말았다. 관객들의 혼을 쏘옥 빼놓은 채 어쩌지 못하게 하는 조승우, 그 때문에 관객들은 다시 또 공연장을 찾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