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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애들은 어때? 괜찮아?"
"으응, 그냥 할만 해. 애들이랑 놀아주는 셈 치면 돼. 그런데 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은솔이는 마치 냄새가 나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라니?"
"있잖아.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 그 애들은 우리랑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씻지 않은 건지. 하여튼 그래. 너도 가보면 알 거야."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아이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은솔이가 말하는 냄새를 떠올릴 수가 없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냄새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3학년에 올라와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평화의 집'이라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놀이도 함께하고, 종이접기나 그림 그리기 등의 봉사하기로 한 것이다. 특별하게 힘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곳의 아이들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은솔이처럼 그곳에서 봉사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이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아이도 있고, 은솔이 말처럼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쨌든 그곳의 아이들은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노동자의 아이들이니 모든 면에서 우리와는 다른, 우리에게 못 미치는 생활을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평화의 집에 들어서니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곳 선생님의 소개로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한눈에 봐도 외국인의 모습으로, 차림새도 어딘가 후줄근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아이들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랐다.

"선생님, 이 다음에 어떻게 해요?"

가무잡잡한 피부에 굽실한 머리를 땋은 아이가 나를 보며 웃었다.

"응? 응, 다음에는 반대로 접으면 돼."
"이렇게요?"
"아니, 반대쪽이라니까. 그건 아래쪽이잖아."

아이는 반쯤 접힌 색종이를 몇 번씩 폈다 접었다 하더니 울상이 되었다.

"이리 줘봐. 내가 해 볼게."

가무잡잡한 피부 아이가 말을 건넸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색종이를 나에게 건넸고, 나는 접는 순서에 따라 접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저고리가 완성되자 아이는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나는 하루 봉사 2시간을 채우는 동안 될 수 있으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고 말을 건네는 아이에게만 건성으로 대답할 뿐,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마치 아이들로부터 더러운 것이라도 묻을까 하는 염려로.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냄새를 맡아보려 해도 은솔이 말처럼 지저분한 냄새를 맡으려 해도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선생님, 저는 미숙이에요. 김미숙, 선생님도 내 이름이 이상해요?"
 "선생님, 저는 미숙이에요. 김미숙, 선생님도 내 이름이 이상해요?"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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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지나면서 나는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로 미숙이, 그러니까 첫날 나에게 색종이 접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아이. 가무잡잡한 피부에 굽실한 머리를 땋은 미숙이는 다음날부터 나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해왔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곁을 맴돌았다.

"선생님, 저는 미숙이에요. 김미숙, 선생님도 내 이름이 이상해요? 우리 위층에 사는 진구도 그렇고, 슈퍼 하는 은영이도 저보고 미숙이 보다는 세리나 줄리 같은 이름이 어울린대요. 왜죠? 나는 내 이름이 좋은데."

순간 나는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아니,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 애들이 괜히 그러는 거야. 네 이름이 예뻐서."
"근데 걔 들은 내가 자기들하고 다르니까 이름도 달라야 한데요. 그런데 여기 선생님들은 아니라고 해요. 왜 내 이름은 평화의 집에서만 예쁘고 동네에서는 이상한 거죠?"

나를 바라보는 미숙이의 눈빛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는 평화의 집이 좋아요. 선생님도 좋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미숙이에게 먼저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집에 도착해서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미숙이가 주변의 보이지 않는 차별로 벌써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미숙이뿐만 아니라 평화의 집에 있는 이주 노동자 아이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미안해졌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게. 게다가 최신 문물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러면서도 외국인 강사나 유명한 외국인들에게는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이주노동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는 것은 그들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미숙이는 아버지가 필리핀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인으로 두 분 모두 공장에서 일하기에 학교 수없이 끝나면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거리는 머리, 커다란 눈에 쌍꺼풀까지.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외국인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말을 잘하는 게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그것도 나의 편견일 뿐, 미숙이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당연하였다.

학교보다 평화의 집이 더 좋다는 미숙이... 언제나 당당해지길

학교보다 평화의 집이 더 좋다는 미숙이, 학교나 평화의 집이나, 언제 어디서든지 미숙이가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누가 아닌 내자신부터 미숙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져야 한다. 차별 없는 보통의 눈길로.

다음 날부터 나는 평화의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미숙이를 비롯한 그곳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함께 웃고,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럴수록 미숙이도 나를 더 따랐다. 봉사 마지막 날, 나는 미숙이에게 필통을 선물로 주었다.

"미숙아,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인데. 그래도 가끔 찾아올게. 그리고 이 필통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알았지? 자, 약속."

미숙이의 빨개진 눈시울에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밝게 웃었다. 미숙이는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한 후,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고는 친구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궁금한 생각에 열어보니 색종이 접기로 만든 저고리와 치마를 도화지에 붙이고는 얼굴, 손, 발을 그려놓은 것으로 빨간 저고리의 키가 큰 사람 옆에는 선생님을, 그 옆에 노란 저고리의 꼬마 옆에는 자신의 이름을 써 놓았다. 그 사이에는 'LOVE'라고 커다랗게 써 있었다. 애써 눌러왔던 눈물이 흘려 내려 나는 교실 밖으로 나왔다.

미숙이는 이주 노동자의 딸이 아니라 반짝이는 눈빛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딸이고, 귀여운 동생이고, 내일의 꿈을 키워가는 우리의 아이였다. 그런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는 차별을 받지 않고 꿈을 품고, 키워가며 자랄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화의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몇 몇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 맨 앞에 미숙이가 서 있었다. 열심히 손을 흔들며. 나도 마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미숙아, 화이팅!"

덧붙이는 글 | 혐오와 차별 응모글



#혐오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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