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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겉표지
<환상> 겉표지 ⓒ 오월의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이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간접적인 방식의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비록 일방적이지만, 나에게 많은 이들을 사귀게 해줬다. 독서를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고, 공감하고, 스며들다 보면 자연스레 동질감이 생겨난다. 이렇게 나는 일면식도 없는 친구들이 많다. 특히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삼성전자 해고노동자 박종태씨의 구술을 기록한 책 <환상> 또한 나에게 일방적인 교우관계를 형성해줬다. 책을 읽는 내내 구구절절 그의 굴곡진 삶이 보였다. 마치 내가 옆에 있었던 것마냥, 갓 스물에 삼성전자로 입사해 23년 동안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던 그 순박함과 우직함이 어떻게 배신감과 상처로 변모해갔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줬다. 그저 상식을 바랐던 한 개인을 거대기업은 잔인하고 극단적으로 몰아세웠다.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을 들여다보며 내가 느낀 사실은 '그가 얼마나 삼성을 사랑하는지'였다.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처절하게 짓밟혀 버린 상처만큼이나 그는 삼성을 사랑하고 있었다. 애정이 없으면 쓴소리도 못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만들어진 '이미지의 삼성'이 아닌 '현실의 삼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우아하게 수면을 가르는 백조의 몸통이 아닌, 그것을 위해 아등바등 움직이는 다리를 말이다. 다만 서글픈 사실은, 다리라도 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사회상이다.

우리가 아는 '이미지의 삼성'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주식시장은 삼성전자의 주가에 따라 요동을 친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발표되는 날이면 미디어의 이목이 집중된다. 신문의 경제면에는 삼성과 총수일가의 근황이 빠짐없이 실린다. 심지어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무슨 말을 했는지도.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삼성은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가 돼 버렸다.

이는 곧 삼성의 거대한 경제력이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원천이라는 사실로 귀결된다. 마치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만 같다. 거기다가 한 사람이 삼성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마냥 호들갑이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삼성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국가와 국민 그 중에서도 노동자들의 지지와 헌신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의견] '삼성가'란 표현에 대해서
책을 읽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었다. 바로 '삼성가' 혹은 '삼성 일가'라는 표현이다. 마치 기업과 그의 일가를 동일시하는 풍조가 배어 있는 말이다. 이는 비단 삼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실제적으로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또한 기업이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 그리고 국민의 지지가 있었단 말인가. 박종태씨의 표현인지, 아니면 구술을 정리한 김순천 작가의 실수인지는 모르겠다. 상장된 기업의 주인은 개인이 될 수 없다. 굳이 쓰자면 '이건희 일가'란 표현으로 통일하는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에버랜드·삼성카드·삼성생명·삼성화재 등 모든 삼성 계열사의 경영시스템이 삼성 일가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니 일반 사람들은 삼성전자가 이건희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데, 이건희와 삼성가조차도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직원의 기업이고 국민의 기업이다. 그러니 그 부는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삼성은 그 부를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언제든 돈을 빼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은 것이다."(본문 274쪽)

삼성 안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것은 철저한 '현실'이다.

그가 겪었던 '현실의 삼성'

 삼성전사 온라인 사내 게시판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뒤, 업무지시 거부와 허위사실 유포 등의 이유로 해고된 박종태씨. 사진은 지난 2010년 12월 27일 '삼성의 노동조합 설립 탄압규탄 및 삼성전자 박종태씨 해고무효확인소송 소장제출 기자회견' 당시 모습. 박종태 대리가 직무대기 처분을 받았을 당시,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서 사내 메일도 사용할 수 없게 차단된 '왕따 직원' 생활을 하는 박 대리의 모습이 뒤로 보인다.
삼성전사 온라인 사내 게시판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뒤, 업무지시 거부와 허위사실 유포 등의 이유로 해고된 박종태씨. 사진은 지난 2010년 12월 27일 '삼성의 노동조합 설립 탄압규탄 및 삼성전자 박종태씨 해고무효확인소송 소장제출 기자회견' 당시 모습. 박종태 대리가 직무대기 처분을 받았을 당시,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서 사내 메일도 사용할 수 없게 차단된 '왕따 직원' 생활을 하는 박 대리의 모습이 뒤로 보인다. ⓒ 유성호

삼성에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목소리를 들어주는 주체가 없다. 다만 '한가족협의회'라는 일종의 노사협의회가 있는데, 이마저도 '어용성'이 강하다. 노조를 대신한다는 기구가 오히려 '회사의 고충처리와 권익 보호'를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출장갔을 때 나와 함께 일하던 외국인 동료가 '삼성에는 노조가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없다고 대답하니 그는 있는 줄 알았다고 하며, 자신들은 노조가 없는 기업의 제품은 안 쓴다고 말했다. 제품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존재이며, 그 제품 안에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권리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 제품이나 함부로 쓰지 않고 정당하게 만든 제품만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본문 42쪽)

그렇기에 삼성의 노동자들은 원치 않는 희망퇴직·유산·성과급 차별·강제 전환배치·폭언 등에 내몰려도 무기력하다. 찍히면 끝이었다. '하얀 방'에 끌려가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동료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삼성의 인터넷 소통 공간인 '싱글'은 사생활이 없다. 검열과 감시가 횡행한 환경에서 소통이 가능할 리 없다.

이 모든 일들은 기형적인 기업구조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런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건강한 유기체가 아니라 시체나 다를 바 없다. 제왕을 중심으로 주변에 아첨꾼만 들끓는 조직이 건전한 사고를 가질 수 없음을, 우리는 수차례 목격했다.

기업에서 제왕적 의사결정 구조가 가지는 폐단 중 하나는 개인의 욕구가 회사에 투영된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경영자로 자격이 없다. 총수의 욕구가 기업의 비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업의 비전이 담아야 할 것은 비단 산술에 의한 수치만이 아니다. 매출액과 업계의 순위도 중요하겠지만 직원들의 복지나 주주의 이익, 나아가 사회 공동체의 권익을 위하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이건희 회장이 한 번 하라고 한 일은 아무리 불합리한 것이어도 해야 했고,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절대 살아남지 못했다. 예전에 '삼성 CEO들의 제1덕목은 이건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의중을 잘 파악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웃은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건희 눈치를 잘 살피는 것이 곧 삼성 CEO들의 능력이었던 것이다."(본문 85~86쪽)

사실 삼성 직원들의 월급이 많다는 것도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기본급은 낮고 성과급으로 나머지를 메우는 임금체계이기 때문이다. 삼성 직원들의 연봉이 높다는 오해가 세간에 퍼진 이유는 회사 측이 성과급을 받는 직원들의 월급만을 언론에 공개하거나 모든 직원의 평균치만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분배기준 또한 공정치 못하다고 하니, 직원들이 받는 억울함과 고통은 얼마나 크겠는가.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저항했던 그는 두 번의 유서를 작성했다.

지금, 당신의 '환상'을 깰 때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한 발만 내디디면 그곳이 곧 죽음의 세계였다. 아내, 아이들 그리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그즈음의 어느 주말, 나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뵙기 위해 무안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빴는지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많이 연로해 보였다."(본문 199쪽)

그러면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밝혔다.

"나는 지금 산재소송 중이다.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와 인권유린에 대해 법적으로 정식 고소를 했다. 작으나마 내 명예를 찾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고, 국민들과 동료들을 위해 더 이상 이러한 부당한 노동탄압이 없는 기업으로 삼성을 바꾸고 싶다."(에필로그 중에서)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의 가치가 바로 서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아는 '삼성'과 그가 겪었던 '삼성'의 괴리감만큼이나 멀고 먼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시작해야만 하는 일이고, 꼭 성취해야 할 가치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책의 권두언에 쓰여 있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깊게 생각하고 참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역사는 실제로 그런 소수에 의해 바뀌어 왔다'는 말처럼 말이다.

추천사를 쓴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의 지적은 뜨끔하게 와 닿는다. 삼성이 대한민국에 진 빚을 상환시키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 되레 우리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지고 있다. 그에게 떠넘기지 않아야 할 몫까지 그는 순박하게 껴안고 오늘도 저 거대한 삼성이라는 인간성 파괴의 복마전 앞에 외로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 역사를 바꾸는 소수가 되지는 못할망정 의심은 말자. 최소한 뜨거운 박수라도 쳐줘야 할 것 아닌가. 이제 '환상'을 깰 때다.

덧붙이는 글 | <환상>, 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 펴냄, 2013.04, 1만4천원



환상 - 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 이야기

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2013)


#오월의봄#박종태#김순천#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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