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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중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공동투쟁위원장이 지난 29일 저녁 눈을 감았다. 꽃상여 뒤로 보이는 언덕이 예산주물산업단지 예정지다.
정환중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공동투쟁위원장이 지난 29일 저녁 눈을 감았다. 꽃상여 뒤로 보이는 언덕이 예산주물산업단지 예정지다. ⓒ 심규상

"책임을 맡아 더 일찍 돌아가셨다. 이 일로 걱정이 많았다" (반대투쟁위 소속 주민)

정환중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공동투쟁위원장이 지난 29일 저녁 눈을 감았다.  향년 72세. 그는 올 초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왔다.

31일 장례식은 그의 삶의 흔적이 담긴 마을회관 마당(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서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이하 반대투쟁위) 주도로 치러졌다. 주민들은 꽃상여를 앞에 놓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웃을 위한 일을 우선해온 그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인근 마을주민들은 주물공장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해 오다 병을 얻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위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인근마을 주민들을 대표해 반대투쟁위 위원장을 맡아 충남 예산과 당진 면천 인근에 들어설 예정인 주물산업단지를 막는 일에 몰두해왔다.

모내기 하던 중 전해진 주물산업단지 입주소식....그 해 농사는 접었다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소속 주민들이 고인을 조문하고 있다.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소속 주민들이 고인을 조문하고 있다. ⓒ 심규상

  고 정환중위원장의 거리노제는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주도로 치러졌다.
고 정환중위원장의 거리노제는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주도로 치러졌다. ⓒ 심규상

지난 2010년 정 위원장은 모내기를 하던 중이었다. 마을 앞에 들어서는 대규모 '신산업소재 산업단지'가 공해가 심한 주물산업단지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산군청과 충남도를 번갈아 쫓아다니며 "주물산업이 신소재, 무공해산업이냐"고 따졌다. 농사일을 제쳐놓고 전국 주물단지를 돌며 자료를 수집했다.

당시 그는 "다른 주물단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며 "공해산업단지로 대대손손 살아온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해 정위원장은 찬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 때까지 추수를 하지 못했다. 농사를 제쳐놓고 주물단지를 막는 일에만 전념하느라 가을걷이를 할 여력이 없었다.

이듬해 6월 충남도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주물산업단지를 '조건부 승인'했다. 그날 충남도청앞에서 승인 소식을 전해들은 정 위원장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1년여 동안 공방을 벌였지만 1심 법원은 충남도와 주물공단 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낙담하는 주민들에게 "내 생전에 못 막으면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막아 내겠다"며 독려했다. 그러나 그는 2심 법정을 지켜볼 수 없었다.

주물단지 '조건부 승인' 소식에 도청 앞 마당에 털썩..'울먹'

 고 정환중 위원장의 거리노제는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주도로 치러졌다.
고 정환중 위원장의 거리노제는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주도로 치러졌다. ⓒ 심규상
몸의 이상을 느꼈지만 반대투쟁위 일로 차일피일 진료를 미루던 그는 올 초 어느 날 쓰러졌다. 뒤늦게 찾아간 병원은 그에게 혈액암 말기 판정을 내렸다. 그는 병석에 누워서도 2심 재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병석에 누워 일일이 전화를 하며 주민들을 챙겼다.

이권배 반대투쟁위공동위원장은 "지난 주 주민들과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대전고등법원에 가는 길에 정 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며 "잘 다녀오라며 격려하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연규 사무국장은 반대투쟁위 명의의 추도사를 통해 "못다 한 주물공단 저지를 반드시 우리가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중병에 괴로워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재판을 걱정하며 일일이 전화를 걸어 챙기시던 희생정신과 정열, 온화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덧붙였다.

꽃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무논을 지나 그가 평생 육신을 의탁해온 집 앞에 머물렀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상여는 마을 앞에 있는 그의 선산으로 향했다. 그가 묻힌 묘지와 주물산업단지 예정지간 거리는 수 십 미터에 불과했다.

한 주민이 말했다.

"죽어서도 주물단지가 들어서지 못하게 지켜볼 모양 인게벼... 그러지 말고 편안히 쉬십시오."        

충남도는 지난 2011년 7월 예산신소재산업단지주식회사가 요청한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 일원 48만m²(약 14만5000평) 부지에 주물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획을 승인했다. 이를 놓고 지역주민들은 충분한 법적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충남도를 상대로 승인취소 소송을 제기, 현재 2심 계류 중이다.

 정환중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공동위원장의 생전 모습
정환중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공동위원장의 생전 모습 ⓒ 심규상
존경하는 정환중 위원장님.

만남과 헤어짐은 인지상정이라 하지만 오늘 정 위원장님과의 이별은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70여 성상을 정의와 굳은 신뢰 속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도를 걸어오셨기에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님의 앞을 내다보시는 혜안은 놀랄 만큼 정확하셨습니다. 나보다 내 이웃을 더 챙기시는 희생정신과 매사에 적극적인 정열은 님이 보여준 인생관이었습니다. 온화한 미소 속에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특유의 강직함으로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조상 대대로 수백 년 동안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향에 대표적 공해산업인 주물공단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분개해 우리 힘으로 고향을 지켜나가자며 의지를 불태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주물공단의 현황을 파악하기위해 부산, 다산 등 전국을 돌 때였죠. 생각보다 더 심각한 주물공장의 피해에 분개했었죠. 땅을 치며 '살아 내 생전에 못 막으면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주물공단을 반드시 막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님의 의지에 모두가 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중병에 힘들어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재판을 걱정하며 전화로 일일이 챙기시던 님. 님은 떠나지만 가슴속에 항상 님의 의지를 간직하고 뜻을 받들어 주물공단이 무산되는 날까지 투쟁할 것을 영정 앞에 약속드립니다.

정말 존경하는 정환종 위원장님. 이제 갈등 없는, 육신의 아픔 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님의 못다 한 주물공단 저지, 반드시 우리가 해내겠습니다. 생전의 모습, 영원히 간직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예산주물단지조성저지투쟁위-



#정환중#예산주물산업단지#충남도#반대대책위원회#에산 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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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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