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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가용이 고장 나 버스로 출근을 하고 있는데, 두 여학생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똑같이 인용하면,

"아 xx. 우리학교 학주 xx 짜증나. 왜 머리를 가지고 매일 뭐라고 그래? 머리 깎을 시간을 주던가. 매일 밤까지 잡아놓고는 머리 길다고 뭐라하고. 주말에 안 깎고 뭐했냐고 그러고. 머리가 자라는 걸 어쩌라고."

이 말을 엿듣고 있던 필자는 한참 속웃음을 지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필자도 고등학교 때 몇 번이나 머리를 밀렸는지 모르겠다. 성적 떨어졌다고 밀리고, 수능 100일 남았다고 밀리고, 수능 전 주에 의지를 보여 달라며 밀린 기억이 난다. 필자는 그때 머리를 왜 밀렸을까? 1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왜 교사들은 학생 머리에 계속 연연해 하는가? 한 번 고민해 볼 만한 일이다.

두발 규제의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 들어,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통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다. 필자가 생각해봐도 통제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된다. 10여년 전에는 교사들이 매를 들었다. 지금도 매는 있지만, 그 매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매라 짐작된다. 맞았다하면, 엉덩이에 멍드는 것은 다반사이고, 가끔 멍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매로서 통제를 받았다면, 매가 없어진 지금은 통제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졌다. 이제는 교사들이 매를 쉽게 들 수가 없다. 물론 체벌은 가능하겠지만, 잘못 체벌했다가는 고소당하기 십상이고 인터넷이나 SNS에 오르락 내리락 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되고, 급기야 교권까지 잠식당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춘기이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것에 민감한 학생들을 통제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 말하는 '고삐가 풀렸다, 군기가 빠졌다'라는 단계에 학생들이 이르면, 예전에는 운동장에 엎드려 놓고 한 번 패고, 담금질을 하면 한 며칠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상황에 몇 번이고 처해본 학생들이 교사가 되었고, 그 교사도 그렇게 하면 되리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당혹스럽게도, 시대가 달라졌고, 어쩌면 그 교사들은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통제수단이 바로 두발규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반론도 제기해 볼 수 있다. 두발규제라는 것이 단순히 통제수단이 아닌, 학생들을 더욱 학습에 집중시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두발규제를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이렇다.

"머리가 길면, 아침 마다 머리를 만져야 하고 거울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짧은 머리를 보면서 자신이 머리 깎을 때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고, 정신이 올바로 선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두발규제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머리가 길면 아침마다 머리를 만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길면 아침에 빗고 나오면 끝이지만, 짧으면 매일 감아야하는 시간적 부담이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면 교사들은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머리를 짧게 깎아도 공부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학생들의 불만은 두발규제가 불만이 아니라, 두발규제를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더 큰 것이다.

규제를 하기 위함이면 규정으로 엄격히

학생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학생을 규제하기 위한 방법을 달리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두발규제로 학생들을 일관화 시키고, 통제하려든다는 것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학생들이 두발규제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발규제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학생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들이 원하는 것이 학생들을 일관적이게 통제하는 것이라면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서 그것을 적용시키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규정이 있고, 이를 위반이 어떠한 벌을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면, 오히려 학생들은 더 이해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통제를 위함이면 규정을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 규정을 통해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고, 학생들은 규정을 따르고, 설사 어떠한 행동으로 그것을 위반했을 때에는 벌을 받음으로써 자율성에 대한 책임을 배우고, 나아가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오히려 배우는 것이 된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에 의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어색하다. 온정주의(溫情主義)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사제지간(師弟之間)에 법을 내미는 것은 정도 없어 보이고, 무슨 저것이 사제지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학생들을 아무런 규정없이 내버려둘 수 없는 노릇이고, 말도 안 되는 두발규제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종합하면, 두발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두발규제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존속 가능하겠지만, 통제의 수단이라면 가급적 빨리 폐지하길 바라는 것이다. 납득하지 못하는 두발규제로 반발감을 사는 것보다는 '학생은 단정해야한다. 단정의 기준은 앞머리 10CM 이내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이 더 명확하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학생회를 통해서 교칙을 수정하자고 건의하면 되는 것이다. 차라리 이러면서 학생들에게 법과 그 안에 있는 자유 그리고 대화를 가르쳤으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순명하라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들과 함께 가는 교사가 되어야한다. 물론 가르치는 입장에서 함께 가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면 교사들도 10년전 관행을 내려놓아야 한다.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내려 놓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내려 놓자. 그리고 새로 교사와 학생들을 위한 것을 시대에 맞게 만들자.


#두발규제#교사#학생#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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