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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 창작과 비평
영암집 숙자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느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이라고.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도 야속하고 무정하다고. -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펴냄)는 국가의 폭력이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선옥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로부터 얼마 후. 광주(전남) 인근의 한 작은 시골마을의 정애 아버지는 같이 일하던 허샌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노름판에서 날리고 일자리마저 잃고 만다.

그리하여 장녀인 정애에게 언어 장애를 겪는 아내와 아이들을 맡기고 살길을 찾아 외지로 떠난다. 노름판에서 목숨처럼 지킨 얼마간의 돈으로 돼지새끼 한 마리를 사 잘 길러놓으라고 신신당부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길을 떠난다.

사람 좋은 정샌이 우리 닭을 다 가져가버리다니. 정샌은 나를 보고 웃고 내 눈을 바라보고 말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사람이다. 나는 정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렸다. -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러나 박샌은 새마을운동 사업을 핑계로 정애네 담장을 무너뜨려 그 참에 깔려죽은 새끼돼지를 가져가 먹어 버리는가하면, 사람 좋은 얼굴이었던 정샌은 정애네 닭들을 가져가 잡아먹어버린다. 그리고 두 살 많은 친구인 용순이마저 정애네 강아지를 빼앗아 팔아버리는 등 졸지에 가장을 잃은 정애네 가족들을 동네 사람들은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한다.

또 동네 어른들이 동생 순애에게 '몹쓸 짓'을 하고, 정애마저 어른들의 희생물이 된다. 정애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리고 어른들의 몹쓸 짓에 무섭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그런데 참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이제 갓 15살에 불과한 정애가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순애는 영양실조와 어른들의 몹쓸 짓으로 인한 상처로 앓다가 죽고 만다. 게다가 딸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마저 벌건 대낮에 동네 사람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러나 정애네 가족의 상처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후 쌍둥이를 출산하던 엄마까지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 죽고 만다.

이제 남은 가족은 정애와 명애, 그리고 영기뿐. 정애는 동네사람들에게 발악을 한다. 양식이 떨어지자 자기네 돼지새끼를 가져갔으며 아버지를 살해하고도 남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으로 보내고 잘 살고 있는 박샌의 돈을 훔쳐 양식을 팔고, 닭을 가져간 정샌네 닭을 몰아다 잡아먹어버리는 등. 그리고 "김주사가 동생 순애를 빨아먹어버렸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를 친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은 그냥 두면 자신들의 범죄가 밝혀지는 등 화근 덩어리만 될 정애에게 몇 푼의 돈을 쥐여주고 가까운 도시 광주로 쫓아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광주에서 정애는 콩나물을 받아 팔며 두 동생과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이런 정애를 무참하게 짓밟아버리고 정신까지 놓게 만들어버린 것은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쳐 온갖 미친 짓을 한 군인들.

"자네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여.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중략)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래 그런 거여." - 소설 속에서 박샌댁이 정애에게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 - 저자의 말에서

이 소설은 모두 4부. 정애가 어린 동생들과 마을에서 쫓겨나기까지가 1부의 줄거리. 저자 공선옥은 나머지 3부에서 오일팔(5·18)을 겪고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린 인물 셋을 통해 '5·18 그 후 광주 사람들'의 온전치 못한 생활을 들려준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으러 나갔다가 군인들에게 폭력을 당한 후 미쳐버린 정애와 학생으로 오인받는 재미에 들떠 전두환이 누군지도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얼떨결에 데모대에 휩쓸려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카센터 직원 박용재, 5·18 당시 공수부대 무전병으로 국난극복기장까지 받았지만 제대 후 멀쩡한 팔을 기차 바퀴에 밀어 넣어버린 오만수. 국가의 폭력에 짓밟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삶의 이정표마저 잃어버리고 떠도는 사람들의 불행과 비극을.

작가는 이 소설에서 5·18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보단 아마도 그날 그처럼 무자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니 적어도 광주에만 있지 않았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어리기만 했더라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작고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갔을 세 젊은이의 꺾인 삶과 그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 5·18의 처참한 비극을 말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아리고 슬프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폭력과 전혀 상관없는, 심지어는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왜 데모를 해야만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단지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진 사람들의 폭력 그 희생물이 되어버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를 다루고 있어서. 그리고 답답하다.

정애의 불행 못지않게 박용재의 불행도 아리기만 하다. 그것이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인 줄도 모르고 자신을 학생으로 오인하는 것이 좋아 데모대와 휩쓸릴 만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꿈을 접어야만 했던 가난한 자식들이 떠올라서, 지금도 가난하기 때문에 사지로 내몰리고 있을 수많은 가난한 자식들 생각에 말이다.

소설 속 5·18 그 몇 년 전, 처지가 비슷해 오직 서로 의지하던 정애와 묘자, 순애처럼 어린 소녀들은 단지 약하다는 것만으로 파렴치한 어른들의 폭력 그 희생물이 된다. 남들 눈에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고향 마을에서. 그럼에도 또 다른 어른들은 묵인하고 만다. 그런데 그와 같은 폭력은 5·18 이후에도 계속된다. 아니 이제까지 5·18 이전에는 전혀 드러낸 적 없는 또 다른 존재의 폭력까지 정애에게 더해진다. 

나약한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이와 같은 인면수심의 폭력들을 소설을 통해 목격하며 '한 마을에 사는 지적장애인 소녀를 돌봐준다는 구실로 성노리개를 삼았다거나, 사회복지사가 그랬다거나 등과 같은 뉴스들이 분분하게 떠올랐다. 소설에서처럼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폭력은 또 다른 얼굴로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우려는 지나친 걸까?

"새마을이 됐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마을을 떠나갔다"


새마을을 만들었는데도, 새마을이 됐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마을을 떠나갔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가는 고향을 떠나갔다. 나라에서 통일벼를 심으라고 했다. 통일벼로 못자리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짓밟았다. 정부시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윽박질렀다. 통일벼를 심고 나서 온 동네에 농약냄새가 진동했다. 통일벼는 해충이 잘 꼬여서 농약을 쳐주지 않으면 다 고스러졌다. 통일벼는 키가 작았다. 통일벼 짚은 힘이 없었다. (줄임)

통일벼는 농약을 많이 쳐서 여물로 쓸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는 볏짚 여물대신 사료를 사 먹이라 했다. 사람들은 슬레이트 올린 깨끗한 집에서 살면서 소 사료를 사느라 빚을 졌다.(줄임) 하여간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할수록 빚는 늘어갔다. 대대로 갈무리해 쓰던 종자, 퇴비만 넣어줘도 잘 자라던 작물들, 비닐을 안 쳐도 잘되던 농사는 이제 먼 일이 되었다. 해마다 종자를 사야하고 해마다 비료를, 농약을 사야하고 해마다 비닐을 사야하는 농사가 시작된 뒤로 그랬다. 그렇게 농사지어서 빚만 지고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났다. -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내가 살던 동네는 소설 속 배경과 같은 새마을운동으로 분주했다. 어린 우리들도 덩달아 부산해지곤 했다. 제3국가들이 벤치마킹까지 할 정도로 성공한 정책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한 운동으로 더 많이 알려진 새마을운동에 대한 저자의 이런 시각도 인상 깊었다.

덧붙이는 글 |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 공선옥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3-04-10 | 정가 1만3000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창비(2013)


#공선옥#새마을운동#5·18#폭력#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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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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