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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0년 전. "내일 결혼기념일인데 뭐할까?" 남편에게 물었다. "애기나 나부소." 큰아들은 18개월,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고 출산을 몇 주 앞두고 있었다. 조산기가 있어 몸이 무거워 힘들어하며 별다른 기대 않고 물었는데 장난스러운 말투에 그냥 웃고 말았다. 다음날 정말로 진통이 왔고 양수가 터져 두 시간 만에 예쁜 딸을 낳았다. 아빠 말을 참 잘 듣는 효녀다.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다. "첫째 낳을 때는 힘 여러 번 줘서 낳고, 둘째는 힘 몇 번 주면 낳고, 셋째는 힘주려면 나와 불꺼야"라는 지인의 이야기가 딱 들어맞았다. 대신 회복하는 데는 그 반대였다. 첫째 때는 자연 분만하자마자 침대에 바로 앉아 있었는데, 셋째 때는 분만 후 부축 없이는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큰딸 생일에 묻혀 버린 결혼기념일

거실에 놓여있는 달력과 책상 달력에는 어김없이 큰딸의 생일이라고 하트가 그려져 있다. 저의 생일이라고 음력까지 챙겨서 적어놓았다. 거실 달력 한쪽에 적힌 결혼기념일은 남편의 글씨다. 이런 날 가족과 함께 케이크라도 놓고 축하를 하기로 했다. 카스텔라 반죽을 식빵 틀에 부어 만들었다. 모양은 예쁘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거기에다가 아들이 과학수련회 때 만든 초로 불을 밝혔다.

분위기를 잡으며 이승철의 음악을 감상하고자 하는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따뜻한 카스텔라와 음료수 먹을 생각에 빨리 불을 끄자며 성화였다. 막내도 덩달아 빨대도 없이 음료 입구의 종이를 물어뜯고 있었다. 분위기는 무슨 분위기. 얼른 생일축하 노래를 틀고 촛불은 내가 껐다. 빵이 맛있다며 울 남편 그런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 평소 칭찬에 인색한 남편이 본인 딴에는 크게 칭찬을 한 거란다. 덕분에 내 평소 버릇이 나왔지만. 버럭 이라고.

어깨가 무겁단다. 셋이나 더 따라온다고...

막내는 8개월까지 모유만 먹다가, 15개월까지는 혼합수유를 했다. 지금은 분유와 밥을 먹고 있다. 모유를 먹으며 엄마의 배를 만지는 버릇이 있어서인지 분유를 먹으면서도 내 배를 만진다. 나도 못 만지게 하는 내 배. 내 배는 내 것이 아니다. 잠깐 운동이라도 다녀오면 그때까지 배가 고파도 분유를 안 먹고 있다. "우유우유"를 외치며 본인 옆에 눕게 한 뒤 엄마의 배를 만지며 맛있게 먹는다.

늘 넷이던 우리 가족에 일을 더한 딱 18개월. 육아휴직중이다. 남편이 막내를 안고 가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더니 어깨가 무겁단다. 셋이나 더 따라온다고…. 하루에 금방 쌓이는 빨래, 방에 어질러진 책들과 장난감, 장을 보기 무섭게 비어있는 냉장고. 외벌이로는 공과금, 학원비, 식비 등을 감당하기엔 벅차다. 몇 개월 있으면 출근이다. 남편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려나.


#결혼기념일#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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