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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선균과 부인인 연극배우 전혜진이 연극 'Love, Love, Love'에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은다.
배우 이선균과 부인인 연극배우 전혜진이 연극 'Love, Love, Love'에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은다. ⓒ 명동예술극장

마이크 바틀렛의 연극 'Love, Love, Love'(연출 이상우)이 정통연극의 명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3월 27부터 4월 21일까지). 이 연극이 최근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드라마 <골든타임> <파스타> 등에 출연한 이선균과 그의 아내 전혜진이 동반 출연하기 때문이다.

공연 첫날부터 매진행렬이 이어져 장애인석에 보조 의자를 채울 정도로 인기인 이 연극, 그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줄거리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요사이 영국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인  1980년생 마이크 바틀렛은 영국의 5-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살아온 반세기의 가족사와 부부간의 갈등, 자녀교육의 실패, 오늘날 5-60대 장년층의 경제적 풍요와 대비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과 경제적 빈곤 등을 시원하게 풀어냈다.

또한 그 인기비결에는 역시 '스타'의 기용이 한몫을 했다. 이선균이 등장하는 무대, 처음에는 흡사 그가 출연하는 TV 시트콤의 셋트장처럼 보인다. 익숙한 그의 하이톤에 빠른 속도로 무언가 징징대거나 나무라는 식의 이선균 특유의 대사방식이 바뀌지도 않고 그대로 연극에 이어진다. 프로 연극무대가 처음이라는 그에게 연극무대가 낯설어 보이지는 않지만, 1막에서의 이선균은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과 너무 똑같아서, 특히나 깊고 진중한 연기가 필요한 정통 연극, 그것도 영국작가의 번역극에서 그가 계속 잘해나갈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든다.

옥스퍼드 대학생인 주인공 케네스가 형 헨리의 집에서 형의 애인이자 같은 옥스퍼드 학생인 산드라와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는 1막 장면에서 이선균은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한 대학생을 연기한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빈둥대고 하루 종일 잠옷차림으로 누워 TV나 보는 빈둥빈둥 캐릭터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남자셋 여자셋' 등의 TV시트콤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1막에서 이선균(케네스 역)과 김훈만(헨리 역). 프로연극무대가 처음인 이선균은 자유분방한 1960년대의 대학생 케네스 역에 잘 어울렸다.
1막에서 이선균(케네스 역)과 김훈만(헨리 역). 프로연극무대가 처음인 이선균은 자유분방한 1960년대의 대학생 케네스 역에 잘 어울렸다. ⓒ 명동예술극장

2막에서 케네스와 산드라는 결혼을 해서 런던근교 레딩(Reading)이라는 도시에서 부유하게 살게 된다. 하지만 맞벌이에 각자 바람을 피우고,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큰딸 로지는 남자친구 문제로 예민하고, 아들 제이미는 자폐증이다. 딸의 생일파티에서 산드라는 남편과 자신의 부부간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폭로하고 자신은 앞으로 자유로운 인생을 살 것을 선언한다.

이 2막에서 이선균은 1막보다는 점잖고 어른스럽지만 여전히 자유분방한 모습의 아버지를 연기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한 가정의 가장다운 모습에 몰입한다. 자폐아들이 엄마랑 맞담배를 피우니까 화를 버럭 내며 못 피우게 하고, 딸이 토라질 땐 자상하게 다독여주는 아버지의 모습. 또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여 실토하게 하기 위해 결국 자신이 한때 바람 피운 것을 먼저 얘기해 버리는 소심하고도 이기적인 보통의 남자모습을 꽤 자연스럽게 잘 소화해낸다.

3막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3막은 앞의 두 막이 표현하는 구체적 사건이나 현상보다는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배우의 대사로 거침없이 쏟아낸다. 특히 이선균에겐 60대가 된 아버지 역할도 아주 그럴싸하게 잘 어울렸다.

큰 딸 로지는 부모가 뒷받침해주고 밀어주는 대로 음악만이 전부인 줄 알고 열심히 살아왔건만 30대 후반의 로지는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고, 직업도 별로고, 집도 없다. 어느날 로지는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며 서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자유로운 삶을 살던 산드라와 은퇴 후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던 케네스는 딸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아들 제이미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로지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불행한 삶을 부모탓으로 돌린다. 이 대목부터 정말 속이 후련한 이야기이다. 바로 우리들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딸은 부모에게 엄마아빠가 시키는 대로 음악을 했지만, 또 엄마가 얘기하는 대로 여성도 사회를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자신은 이룬 것이 하나도 없고 집도 없으니, 결론적으로 집을 사달라고 말한다.

 2막. 결혼한 케네스(이선균 분)와 산드라(전혜진 분)는 부부의 문제를 딸 로지(노 수산나 분)과 아들 제이미(맨 오른쪽)에게 폭로한다.
2막. 결혼한 케네스(이선균 분)와 산드라(전혜진 분)는 부부의 문제를 딸 로지(노 수산나 분)과 아들 제이미(맨 오른쪽)에게 폭로한다. ⓒ 명동예술극장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9세부터 계속 꿈만을 좇아온 그녀에게 부모는 "니 인생 니가 살아라. 우리도 이제야 좀 편해졌다. 집은 안돼"라고 매몰차게 말한다. 그나마 마음 약해보이는 아버지마저도 "지금이랑 우리가 젊을 때랑은 시대가 다르다"며 딸의 요청을 거절한다.

딸은 엄마에게 "당신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는 우리 못 올라가게 그 사다리를 무너뜨렸다"고 항변한다. 엄마는 "그 사다리? 우리는 없던 사다리도 만들어 올라갔어"라며 나약한 딸의 세대를 개탄한다. 엄마에게 그들은 그저 놀면서 손 앞에서 컴퓨터, TV나 까딱이면서, 눈앞에 코앞에 갖다 바쳐야 겨우 해결하고, 하고 싶은 것은 욕심만 많아서 실천도 안 하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이해 안 되는 세대인 것이다.

아버지는 은퇴하고 일 안하고 골프를 치면서도 연금에 집세소득까지 연봉이 3만 파운드나 된다. 딸은 자신은 일주일에 쉬는 날 하나 없이 꼬박 일해도 아버지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연봉이라며 투덜거린다.

무엇이 이런 세대 간의 격차를 만들었을까? 세계적으로 1950-60년대 전후 베이비 붐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처럼 전쟁을 직접 겪지도 않았고, 부모의 관심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부모세대보다 안정되게 자라왔다. 영국에서 이들은 60-70년대 히피문화를 형성하며 기존의 세력에 반항하고 비틀즈 등의 로큰롤로 대변되는 음악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한다. 실제로 이 연극에서는 1막부터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 등의 음악이 사용되며 중요한 배경역할을 한다. 점차 세월이 흘러서 이들도 기성세대가 되고 그 많은 인구수로 인구 피라미드를 위협하고 자신들의 확고한 기득권을 유지하며 공화당을 지지한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1950-60년대 베이비붐 세대는 유신정권에 맞서고 학생운동을 하고 장발, 미니스커트 등 자신들의 거침없는 표출과 반항으로 세력을 일구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기성세대가 되고 일부는 여당을 지지한다. 그리고 비교적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3막. 여유로운 노후의 삶을 살고 있는 케네스와 즐기며 사는 산드라. 실제 부부인 이선균과 전혜진의 실제삶이 묻어나와 더욱 사랑스런 장면이다.
3막. 여유로운 노후의 삶을 살고 있는 케네스와 즐기며 사는 산드라. 실제 부부인 이선균과 전혜진의 실제삶이 묻어나와 더욱 사랑스런 장면이다. ⓒ 명동예술극장

연극에서 딸은 부모세대들은 하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살면서 우리를 버렸다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부모는 "우리는 그저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서 이렇게 이룩했다"고 한다. 누구의 책임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지만 그 해답은 단순히 사회구조에서만 혹은 한 개인의 선택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부모나 자식 중 굳이 어느 한쪽에 책임이 있다가 아니라, 경쾌하고 유쾌한 결론을 낸다. 사랑이라는 것이다. 왜 한 번도 아니고, 'Love, Love, Love' 세 번인가? 우리 옛말에 삼세번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연극도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젊은시절의 사랑, 중년시절의 사랑, 노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3막에서 오랜만에 만난 케네스와 산드라는 아이들에 대한 얘기로 힘들어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남은 인생 즐기면서 세계여행이나 같이 다니자며 행복하게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이선균과 전혜진은 실제 부부라서 더욱 훈훈할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3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전혜진은 1999년 올해의 연극상 신인연기상을 받을 만큼 탄탄한 연기실력을 인정받은 실력파다. 이상우 연출이 마이크 바틀렛의 이 작품의 번역을 작년 6월 끝낸 후 산드라 역에 단번에 전혜진을 떠올릴 정도로 그녀의 연기 내공은 대단하다. 1막도 좋지만, 2막과 특히 3막에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다.

이선균 역시 처음 서는 프로 연극무대지만, TV나 영화나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럽다. 그는 영국의 철부지 20대부터 40대 중년, 60대 노신사까지 소화해내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또한 형 역할의 김훈만, 딸 역 노수산나, 아들 역 노기용 모두 실력 있는 배우들로 자신의 배역들을 잘 소화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배우들을 잘 선택하고 과감히 스타배우를 기용해 그들의 능력을 골고루 잘 이끌어 낸 이상우 연출의 능력 또한 이번 연극의 성공요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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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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