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숙사 사생들과 함께하는 등산활동 매월 일요일 2회씩 기숙사 사생들은 등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기숙사 사생들과 함께하는 등산활동 매월 일요일 2회씩 기숙사 사생들은 등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복진정

관련사진보기


일요일 아침이다.

"얘들아, 어서 나와. 모두 모여야 출발하지."
"선생님, 오늘 또 가는 거예요?"
"그래, 금오산 가는 날이야."
"다음에 가면 안돼요?"


가기 싫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우리 학교 기숙사 사생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산행을 한다. 평일에는 내내 공부만 해서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산 자체를 싫어한다. 고등학생이라 체력도 좋으니 운동 삼아 잘 갈 법도 한데, 산에 한번 가려면 갖은 핑계가 무성하다. 배도 아프고, 다리도 불편하며, 머리도 아파 스스로 환자란다. 나는 그래도 달래면서 사감의 임무를 수행한다.

"얘들아, 산에 가는 것은 기숙사 학생이면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거든."
"그건 알지만요. 그래도 음."
"힘들어도 가야 돼."
"사감 선생님, 프로그램 바꾸면 안 될까요?"
"좋은 프로그램인데 왜 바꿔."

이런저런 투정을 듣다가 마지막엔 히든카드를 제시한다.

"자, 사생 여러분! 전원 산에 가면 아이스크림 사줄 건데."
"그 약속 지켜야 돼요."

10여 분의 실랑이 끝에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나도 대학 다닐 때 기숙사생활을 몇 달 해 보았는데, 통제와 규칙이 엄해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요즘 아이들의 인내력 부재가 심히 걱정이 되어 산에 오르는 것을 추진하게 되었다.

시작은 힘들지만... 걷다보면 어느새 '편한 친구'

우리 학교는 충남 예산 금오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행조건이 참 좋다.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을 필요도 없이 출발과 동시에 숲속 길을 만나게 된다. 3시간 코스 내내 시원할 뿐만 아니라 초목의 향긋한 냄새를 만끽하며 다녀올 수 있다.

"사감 선생님은 산 좋아하세요?"
실랑이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일단 출발하면 아이들이 먼저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한다.

"산, 좋아하지. 너희들 만나고부터 더 좋아하게 됐어."
"왜요?"
"너희들이 산에 다녀오면 마음도 넓어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게 되며, 다음 날 집중력도 좋아지는 거 같아서."
"아, 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줄을 서서 가면서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어느새 편한 친구가 되어 힘든 걸 잊은 채 서로 말을 건넨다. 

"사감 선생님, 승룡이 여자 친구 진짜 예뻐요."
"도언이는 판타지 소설을 밤 늦게까지 많이 읽어요."
"기숙사 외박 매주 나가면 안 돼요?"
"운동할 시간 많이 주세요."

기숙사 내에서 쉽게 못했던 말을 자연스럽게 술술 풀어 놓는다. 덕분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또한 사생들의 생활 정보를 많이 얻기도 한다. 개별 상담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숙사 운영 방법을 조정하는 데 참고할 만한 색다른 정보인 것이다.

"승현이는 요즘 수학공부 열심히 하니?"
"열심히 하는데 좀 어려워요."

승현이가 중학교 3학년 되던 해부터 알고 지내온지라 관심이 더 간다. 특히 수학을 잘해 중학교 때 우리 학교에서 주관한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한 아이라서 자주 수학 성적을 점검하고 있다. 아이들은 승현이만 챙긴다고 시샘을 한다. 산에 와서 가급적 많은 사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칭찬도 하고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주며, 고쳐야 할 점을 얘기하면 아이들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마치 자연의 넓은 포용력을 터득한 것처럼.

정상에 올라 땅바닥에 벌러덩... '고진감래'를 깨닫는 순간

한 시간 반 남짓 정상을 향해 걷다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힘든 코스에서는 동료의 손을 잡아주고 물도 나눠 마시면서 마음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친구와의 우정, 선·후배간의 존중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어 대견스럽다.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감성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좋기만 하다. 남자 아이들이라서 이 부분을 평소 염려했기 때문이다.

힘든 발걸음을 동행한 끝에 다다른 산 정상. 아이들은 모두 땅바닥에 눕는다. 나도 함께 눕는다. 모두가 하나 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산들바람을 맞고 보내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열 번 말해도 쉽게 느끼지 못하던 '고진감래'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사감 선생님, 우리 산에 올 때마다 한자성어 몇 개씩 공부해요."
"쉽고 빠르게 머릿속에 들어와요."

한자라면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던 아이들이 산행하면서 한자성어를 공부하자니, 어느 때 보다도 큰 수확이다. 앞으로 산행과 관련된 한자성어를 준비하여 이런 시간에 활용하면 효과가 클 것 같다.

산마루에 서니 문득 수 년 전 일이 생각났다. 2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매월 한 번씩 아이들 생일 파티를 바로 이 자리에서 했던 것이다. 아이들 부모님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음식과 케이크를 준비하여 합동 생일잔치를 했던 소중한 추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 그 아이들을 만나면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보니 지금 사생들에게도 산을 통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출발이 어려웠던 산행 체험, 벌써 하산이다. 하산 길은 누구나 빠르게 움직인다.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속행이다. 힘듦 뒤에 맞이한 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내리막의 속성을 만끽하는 것일까! 아무튼 즐거워하니 내 마음도 가볍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도 하게 한 죄인 같은 불편한 마음이 좀 남아 있었는데.

"얘들아, 천천히 가자."
"사생장, 너나 천천히 와라. 우린 빨리 내려가서 쉬고 있을 테니."


내리막길에서는 사생장 말도 통하지 않는다. 난 몸이 뚱뚱하고 체력이 약해 힘들어 하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내려오게 된다.

영원한 '형님 사감'으로 남고 싶습니다 

3시간의 산속 체험을 끝으로 산사 입구에 도착했다. 비호같이 먼저 내려온 아이들이 조그만 슈퍼 앞에 아주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다. 평소 잘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감 선생님, 목말라요."
"아까 약속하셨지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가 필요한 것이다. 즉시 슈퍼에서 원하는 것을 사주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잘 먹겠다는 인사를 여기저기서 건넨다.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경우가 있었을까?

땀을 흘린 뒤의 음식은 맛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을 것이다. 자주 잊고만 살았던 작은 행복이 오늘은 소중하다는 것 또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썩 하기 싫었지만 단체의 힘을 통해 이룩한 성취감은 어느 때보다도 큰 것이다. 다음에도 아이스크림을 사줘서라도 산행을 함께하도록 하여 특별한 경험을 계속 만들어주고 싶다. 훗날 그때 그 시절의 산행은 멋진 고교생활의 추억이었으며, 삶에 있어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하도록.

기숙사 아이들과 이 즐거움을 오랫동안 같이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늦은 밤에도 나를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게 만든다. 체력을 튼튼히 하여 산행을 함께하는 영원한 '형님 사감'이 되기 위해서.


#사는 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교육의 올바른 방향 제시와 바람직한 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교육가족 모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현직 교사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교육활동 내용을 실감나게 전할 것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