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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29일, 국회 첫 등원한 유시민 의원은 의원선서를 못했지만, 국가인권위원 임명안 표결에는 참여했다. / 유시민 의원과 김원웅 개혁당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3년 4월 29일, 국회 첫 등원한 유시민 의원은 의원선서를 못했지만, 국가인권위원 임명안 표결에는 참여했다. / 유시민 의원과 김원웅 개혁당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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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후 첫 선거인 4·24 재보궐 선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보선 출마를 선언한 그는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정치 개혁의 대의명분을 살리면서도 당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여했던 그를 배려하기 위해 민주당 후보를 내지 말고 연합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구태 정당인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의 지지 세력들도 대선 과정을 통해 민주당이 새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그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그가 당선될 경우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해보였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하게 10년 전 개혁당의 후보로 고양 덕양갑 재보선에 출마한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유시민 전 대표의 첫 국회 입성 시도 당시 상황과 귀국 후 재보선 출마를 앞두고 있는 안 전 교수의 상황이 묘하게 닮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앞으로가 문제다. 유 전 대표는 재보선 승리 후 국회 등원 첫날 정장이 아닌 캐주얼 재킷에 흰 면바지 차림으로 본회의 단상에 올라 '백바지' 논쟁을 일으켰다. 과연 안 전 교수도 '유시민식 정치'의 상징이 돼버린 백바지를 입게 될까.

'화염병' 들고 정치권 뛰어든 유시민, 그의 정치가 남긴 건?

새로운 시도는 단절과 종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업인·학자였던 안 전 교수가 "건너온 다리를 불사르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듯, 유 전 대표도 2002년 7월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뛰어드는 심정으로" 절필을 선언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시사토론 프로그램 사회자·칼럼리스트로 '심판'만 보던 그가, 직접 '선수'로 뛰겠다고 나선 것이다.

2002년 10월 그는 "고래를 삼키는 새우가 되겠다"며 개혁당을 창당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킨다는 게 목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민주당이 아닌 개혁당으로 달려와 유 전 대표와 축배의 잔을 들었다.

유 전 대표는 2002 대선 후 처음 실시됐던 4·24 고양 덕양갑 재보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과 공조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시 유 전 대표가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의 목표는 부패한 두 거대 정당의 지역분할 정치구조에 결정적인 균열을 내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않고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지형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려는 정당개혁·정치혁명의 핵심이다. 나는 전략전술이 아니라 진정성과 열정으로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다."(2003년 3월 10일)

그런데 유 전 대표는 그 이전인 2003년 3월 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후보 단일화에 대한) 제안을 해온다면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명분 있는 연합공천'은 고려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셈이다.

민주당의 신주류에서는 고양시 덕양갑 선거에서만큼은 개혁당과 유 전 대표를 배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시 민주당의 김원기 고문과 천정배 의원 등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균환 원내총무 등 민주당 구주류는 개혁당과의 선거공조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개혁이란 이름을 붙여 당명을 개혁당이라고 하지만 여기저기에도 가지 못한 사람들,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이야기가 당무회의에서도 나왔다"며 개혁당을 비난했다.

개혁당 내에서도 "보수세력과의 야합 절대불가"를 외치는 강경파와 "개혁 세력의 승리를 위한 민주당과의 공조"를 주장하는 온건파로 나뉘었다. 온건파는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개혁당, 거기에 민주노동당까지 후보를 내면 유시민 전 대표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선거 패배의 타격은 기존에 선명함·깨끗함을 기치로 내걸었던 개혁 세력들의 무수한 패배에 또다시 한 방울의 물을 더하는 것"이라며 연합공천 불가피론을 역설한 것이다.

개혁당은 논란 끝에 민주당과 선거공조에 대한 전당원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59.7%, 반대 40.3%로 선거공조를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선거공조는 구태고 야합이라며 상당수 당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 전 대표가 후보등록을 앞두고 당원들에게 털어놓은 심경은 이랬다.

"지난 주 민주당과 선거공조 찬반투표에서 나는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 개혁당과 민주당의 선거공조에 대해 누가 돌을 던지고 있는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고 모욕하고 비방했던 세력이다. 민주당 내 반칙세력, 한나라당, 그리고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선거공조를 비난하는 사설까지 썼다. 이런 세력이 입을 모아 반대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2003년 4월 4일)

결국 민주당은 유 전 대표를 위해 후보를 내지 않았고, 유 전 대표는 재보선에서 승리했다. 4월 재보선이 대선 이후 '첫 정계개편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시화 되는 순간이었다. 유 전 대표는 당선되자마자 '개혁신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원웅 개혁당 대표도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드라이브를 걸 때가 임박해졌으며, 내년 총선 때까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깃발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대표는 민주-개혁당의 4·24 재보선 공조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허무는 단초로 작용해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한 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세력과 외부의 양심적인 개혁세력과의 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유 전 대표의 말대로 개혁당의 해산과 민주당의 분당으로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다. 몰론 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이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인생 통째로 걸어야" 유시민 조언에 안철수의 생각은?

귀국길 오른 안철수 4·24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서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10일(현지시각)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들어서고 있다.
▲ 귀국길 오른 안철수 4·24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서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10일(현지시각)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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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교수가 당선돼 원내에 입성할 경우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 등으로 흡수 편입될 수 있다."

최근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이 기자들과 만나서 한 말이다. 그는 2003년 4월 재보선 당시 유시민 전 대표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공교롭게도 10년이 지난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다시 무공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안 전 교수의 기여를 배려하기 위해 4·24 노원병 재보선에 민주당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문희상 비대위원장 등은 "공당이라면 후보를 내야 한다"며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노원병 공천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안 전 교수가 대선 때 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문재인 전 후보를 지원한 만큼 이번에는 민주당이 화답할 차례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환 의원은 "안 전 교수 지지 세력과 민주당은 연대하고 통합할 대상이기 때문에 대선 때 진 빚을 갚아야 된다는 논리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해구 정치혁신위원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안 전 교수가 대선 경쟁때 후보를 양보했다는 점에서 정서상으로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는 것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제1야당의 정당으로써 또 자기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는 물론 진보정의당·통합진보당 등 노원병에 후보를 낼 예정인 세력별 이해관계가 달라 야권 전체로도 노원병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안 전 교수 측이 야권 단일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무리 안 전 교수라 하더라도 노원병 승리를 장담하기는 이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정기남 전 비서실 부실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허니문 재보선인 상황에서 제1야당 정당후보도 아니고 조직도 세력도 없는 혈혈단신 무소속 후보가 당선을 장담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안 전 교수를 야권 연대의 틀 안에 묶어두려는 지난 대선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경계심이 강하다.

노원병 재보선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삼성 X파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실시되는 곳이다. 노회찬 공동대표로부터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 전 대표의 출마가 유력시됐지만, 그는 지난 2월 전격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라는 게 당내 분석이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와 야권의 대선 패배 이후 유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 진로와 관련해 심각한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원병 재보선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을 정계 은퇴의 배경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유 전 대표의 출마가 유력시 되던 지역에 안 전 교수가 그 바통을 이어받겠다며 출마를 선언한 셈이다.

유 전 대표는 지난 2월 발간한 저서를 통해 안 전 교수에게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그것도 대통령을 목표로 삼는다면 권력 투쟁을 놀이처럼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며 "한마디로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조언했다. "안 전 교수가 과연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며 한 말이다.

11일 오후 귀국하는 안철수 전 교수가 유시민 전 대표의 지난 정치적 행보를 복기해서 향후 자신의 정치 실험에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안철수 #유시민#노원병#정계개편#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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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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