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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키우는 아이> 아빠 육아, 그 커다란 행운
<아빠를 키우는 아이>아빠 육아, 그 커다란 행운 ⓒ 소나무
나는 얼마 전, 묘하게도 사진 한 장을 보고 눈물을 머금은 적이 있다. 그 사진은 우연히 펼쳐든 앨범 속에 있던 딸의 사진인데, 6살쯤 되었을까, 창녕 우포늪에 놀러갔다가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온 얼굴을 다 찡그리고 울면서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왜 눈물이 났을까? 왜 뜬금없이 가슴을 찌르는 아픔과 함께 눈물이 나왔을까? 그때 눈물과 함께 내 마음 속으로 흘러간 생각이 '아, 나는 왜 저 시절, 딸의 눈물과 함께 하지 못했을까'였다. 나는 그때 무엇을 하느라,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느라, 내 딸의 희로애락을 만나지 못했을까? 돌아갈 수 없는데, 이미 지나가버려 이제 어쩌지 못하는 그때, 바로 그 순간, 딸의 삶 속에 아버지가 없었다는 뜻밖의 회한이었다.

나는 지금도 간혹 앨범을 보면, 어린 시절 내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전류처럼 가슴을 훑고 가는 슬픔을 느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텐데, 그것은 미안함과 아쉬움이 묘하게 뒤엉킨 부채 의식이 아닐까? 저자 박찬희가 2년간의 육아 체험을 기록한 책 <아빠를 키우는 아이>은 이런 나를 새로 부끄럽게 만들었던 책이다.

'아빠 육아'를 단행한 저자가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는 그의 아내를 대신하여, 11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육아 휴직이 아니고 퇴직), 딸 서령이를 키우겠다고 나선 날, 자신을 이렇게 규정지었다.

"2010년 8월 1일, 이날부터 나는 사회적으로는 실업자였고 집에서는 예비 살림꾼이자 서령이 주 양육자였다."(본문 21쪽)

아빠 육아라고 하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린 듯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이 퇴직하고 아이를 돌보려고 했을 때, 어떤 거창한 철학이나 특별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디선가 '아이는 적어도 만 세 살까지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육아를 선택한 아빠... 진솔한 기쁨과 어려움의 기록

그러나 '부모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말이 곧 아빠 육아를 뜻하는 말은 아닐 텐데, 아내를 직장으로 복직시키고, 그 시간 동안 아빠가 단독으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가진 특별한 의식의 작용인 듯 보였다. 그것은 기존의 통념을 깨고, 사회적으로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비집으며, 다르게 사는 삶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육아는 몸과 마음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아이를 위해 내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는 통념 속에 살아와 더욱 그랬다. 외출은커녕 마음대로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자 '우리 엄마는 어떻게 네 아이나 키웠을까'라는 놀라움이 들었고, 두 달이 지나자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본문 5~6쪽)

이렇게 저자는 처음 딸아이와 함께 지낸 두 달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 두 달은 '울고 웃고 놀라는 나날'이었고, '여유롭고 우아한 생활과 이별하는 과정'이었으며, '서령이라는 놀라운 우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일어난 날, '인간으로서 독립을 선언한 그 순간',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음에 감탄하며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두 달 간의 '놀라운 여정'을 지나는 동안, '그만큼의 즐거움과 그만큼의 어려움'도 지나갔다고 말한다. 세상 소식과도 멀어졌고, 사람들과 연락도 줄어들고,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하며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는데, 특히 외로움을 말하는 부분은 절실하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친정 엄마나 친구들, 동네 엄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를 풀고 정보를 얻고 격려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아빠들은 이런 통로가 없다. 이 길을 갔던 친구도 없고 어머니에게 격려와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다. (줄임) 아이 키우는 아빠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말은 "그래 힘들지, 네 마음 알아"라는 한 마디였다." (본문 33쪽)

그러므로 이 책은 육아의 기쁨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책은 솔직하다. 의미를 강조하거나 기쁨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육아를 통해 저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세밀히 만나는 과정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는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아내를 통해 깊어지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한 생명을 기르는 것은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 

더욱이 다른 사람의 시선 처리는 큰 문제이기도 하는데, 저자는 아파트 경비아저씨나 동네 엄마들의 시선들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빠 육아를 스스로 당당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그래도 아이는 여자가 봐야지, 이거 모양 빠지는 일인데' 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인정하자며, 그동안 우호적인 시선과 좋은 평판만 기다리다 보니 다른 말을 들으면 불편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작은 깨달음이야말로 육아를 통한 진정한 소득이랄 수 있겠다.

저자의 아내가 직장에서 퇴근해오면 저자는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는 모양이다.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는 때가 저자에겐 퇴근인 셈이다. 그러나 아내가 야근을 하면 저자도 야근을 하는 것이어서, 저자가 아내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요"가 아니라, "오늘 제때 퇴근해요"라는 말이라고 하니,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올 법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럴 때 저자의 아내가 들려준 말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나도 서령이를 낳고 2주 정도 산후 우울증이 왔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 하다못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이게 뭔가 싶었지.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이하고 있을 때는 아이만 생각하자. 아이하고 있는데 다른 것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갈등이 생기잖아.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그러면서 우울증이 사라졌어. 한 생명을 온전히 키우는 일은 이런 것 같아."(본문 70쪽)

그렇다. 한 생명을 기르는 것은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다. 내 관점, 내 욕구, 내 생활 등을 말이다. 저자도 '어떻게 하면 아이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내려놓기'를 통해 가능한 지점이 아닌가? '내려놓기'는 곧 '나 없음(무아無我)'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무아가 되어야 아이 마음속으로 슬며시 들어갈 수 있지만, '나'가 있다면, 그 '있음'으로 인해 부딪친다. 그러나 나 없으매, 더 큰 '나'가 드러나는 법이므로, 저자도 '아이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아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독특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육아는 곧 수행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아빠와 아이, 서로 키우면서 커나간 '육아(育我)' 이야기

그밖에도 음치와 몸치인 저자가 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추면서 춤과 노래를 새롭게 인식한 일이라든가, 딸이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놀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음을 느끼면서, 놀이가 아이의 본능이며 권리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본능이요 권리임도 깨달은 일,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딸의 발가락 수술에 마음 졸인 경험, 딸이 크면서 부쩍 자주 하는 "싫어"와 "내가"라는 말이 사실 어른인 자신에게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일, 더구나 아이의 똥오줌을 치우는 일이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아이가 하는 '중요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즐거움'마저 느낀 일 등, 육아는 늘 깨달음과 함께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또한 저자의 육아 일기는 단순히 육아만의 일기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린이집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 부족한 국공립 보육시설과 정부의 보육정책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으며,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담겨 있는 어린이책의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정녕 저자가 우리 모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 공동체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특이한 경험쯤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그 공동체적 질문은 4대강 사업으로 흐름이 끊긴 자연이며, 한미FTA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핵에너지 문제와 제주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의 아픔이 그것이다. 육아와 사회는 둘이 아니며, 육아를 통한 생명의식의 발현이 사회적 관심의 확대로 이어지는 저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절약을 대안이라고 말하면 사람들 낯빛이 흐려진다. 새로운 에너지원이나 획기적인 에너지 생산 방식을 기대했는데 절약하라니. 사람들이 말하는 대안에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이나 풍요로움은 조금도 줄이지 않고'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손에 든 것은 하나도 내려놓지 않은 채 또 하나를 움켜쥐려 한다.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현대문명의 신화와 궤를 같이 한다. 한 없이 쓰고 마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안전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을 덜어내고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본문 282-283쪽)

참으로 온전히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 자식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놀랍게도 육아의 최대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술회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자가 육아를 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곧 살림이 나랏일이고, 육아가 세상일임을 알리는 아빠 육아의 메시지이다. '원래 길이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길이 된다'는 루쉰의 말처럼.

이 책의 제목은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아니라, '아빠를 키우는 아이'이다. 이 역설적인 제목과 같이 이 책은 누가 누구를 한 방향으로 키우고 성장시킨 '육아(育兒)'라기보다는, 서로 키우면서 커나간 '육아(育我)가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아빠를 키우는 아이 : 아빠 육아, 이 커다란 행운>, 박찬희 씀, 소나무 펴냄, 2013년 2월, 1만3000원



아빠를 키우는 아이 - 아빠 육아, 이 커다란 행운

박찬희 지음, 소나무(2013)


#아빠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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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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