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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의 치명적 농담> 표지
<붓다의 치명적 농담> 표지 ⓒ 문학동네
불가(佛家)의 글은 어렵다. 짧은 문장 하나에도 함축적인 의미가 중첩돼 있어 본래의 뜻을 온전하게 새기기 쉽지 않다. 불교경전 가운데서도 <금강경>은 난해하기로 이름난 저작이다. 허다한 고승대덕이 <금강경>을 주해하고 저작을 남긴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불교에 문외한인 나 같은 천학비재(淺學非才)가 <금강경>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할 터.

한형조 교수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을 집어 들었다. 서책과 대면하기 전에 이런저런 경로로 불교에 대한 알음알이를 구하기는 했으되, 그 짧고 얕음은 언설로 부족할 지경이다. 서책에서 얻게 된 크고 작은 깨달음은 적잖은 기쁨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모르던 것을 깨달은 기쁨과 거기서 연유하는 깨달음의 슬픔과 아픔도 작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이 서책은 <금강경>을 본격적으로 주석하는 '소(疏)'의 형식이 아니라, 지은이의 이해에 근거한 '별기(別記)' 형식을 취한다. 저자의 사유와 인식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서책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금강경>에 대한 주석을 읽고자 한다면 육조 혜능의 <금강경구결> 혹은 함허득통이나 무비스님의 <금강경오가해>를 읽으라고 지은이는 권면한다.

우루벨라의 '산상수훈'

고타마 싯다르타는 스물아홉 나이에 야쇼다라 공주와 아들 라훌라를 버리고 출가한다. 만 6년의 수행 끝에 해탈의 경지를 얻은 그였지만, 도저한 깨달음을 이내 설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불가의 본원적인 문제, 즉 난해함이 원인이었다. 인간이 품고 있는 대상에 대한 '상(相)'과 그것의 본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법(法)'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던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루벨라의 해질 무렵 붓다는 불을 숭배하던 가섭 형제들을 데리고 산에 오른다. 저녁노을로 불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붓다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사람도 저와 같이 불타고 있다. 사람의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본문 105~106쪽)

붓다는 인간의 눈과 귀, 코와 혀, 육신과 의식이 타고 있다고 설한다. 그리하여 눈이 보는 물질과 귀가 듣는 소리, 코가 맡는 냄새와 혀가 느끼는 맛, 몸이 접촉하는 감촉과 의식이 소비하는 생각이 탄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불타는 까닭을 붓다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서 보았다. 그 결과 생로병사와 '수비뇌고(愁悲惱苦)'가 불타고 있음을 설법한다.

이처럼 처절하게 불타는 참상에서 해방되려면 어찌 할 것인가. 붓다는 불타는 모든 것과 원인을 싫어하는 생각을 가지라고 말한다. 일체를 꺼리는 생각을 하게 되면 '탐진치'와 '수비뇌고'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될 것이라 확언한다. 이른바 '열반(니르바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루벨라의 '산상수훈'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여러 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참담한 심정으로!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결함과 자기한계, 인격적인 오류와 무지 그리고 깨달은 분들의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위축시킨 탓이다. 특히 <의상전>에 전해지는 원효의 깨달음이 나는 뼈에 사무치게 아팠다.

"마음이 생겨나므로 수많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수많은 세계가 사라진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의식일 뿐.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본문 117쪽)

원효가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 유학을 가던 길에 무덤 속에서 해골 물 먹고 득도했던 그 지점으로 사유를 몰고 가면 위의 문장이 나온다. 원효는 운명의 그날 밤 세계와 인간정신의 정수를 홀연히 깨달았던 것이다. '돈오'의 진면목을 후세에 길이 전달한 명장면!

이런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금강경> 구절이 새삼 피부를 에인다.

"세상 모든 것은 나름의 상을 가진다. 그 모든 것은 허망하다. 만약 모든 상이 진정한 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면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135쪽)

우리 모두가 가슴 깊숙한 곳에 은닉해두고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모습이 본래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그런 진실을 터득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순간 붓다의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 관계와 인연을 선연하게 통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통렬한 깨우침이자 진실이란 말인가.

모순과 대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서책에서 자주 지적하는 인간적인 결함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예컨대 지은이는 "인간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사태를 왜곡하고 사람을 의심하면서 그것을 객관이자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본문 161쪽)고 일갈한다. 그것을 '무시이래의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고 설파한다. 얼마나 가슴 시리도록 진리의 정수를 들이붓는 구절인가!

이런 생각 위에서 저자는 <금강경>의 모순되지만 뼈저린 가르침을 전파한다.

"유무와 시비, 거래(去來)와 증감, 호오(好惡)를 말할 때 어디든 아상(我相)이 개입한다. 아상이 침묵의 실제를 간섭하고 그것을 토막 내서 차이를 만들고, 그것은 늘 차별로 전락한다. 불교는 이런 분별이야말로 세상의 비참과 곤혹을 야기하는 주범이라 강조해왔다. 유와 무가 정반대의 극이지만, 그것은 아상의 결과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본문 255쪽)

<금강경>은 유와 무, 법과 상, 빛과 그림자가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설파한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자로부터 동시에 벗어나야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의 세계에 함몰된 범부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자유자재한 세계를 출입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그 유명한 사구백비(四句百非)가 등장한다.

지은이는 우리가 날마다 혹은 매시간 맞닥뜨리는 시시콜콜한 시비와 유무의 허접한 경계를 벗어나라고 주문한다. <금강경>에서 설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허다한 인총의 차고 넘치는 상에서 야기되는 시비분별과 유무의 부질없는 어린애 장난으로부터 벗어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누가 부처인가

마조화상의 범상함을 간파한 남악회양이 일갈했던 가르침을 생각해보자.

"부처와 중생 사이, 깨달음과 미혹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깝다. 현실이 곧 궁극이고, 네가 곧 부처다(즉심즉불·卽心卽佛). 너의 가리고 따지는 마음과 취하고 버리는 태도로 인해, 그 분별로 인한 장애로 인해 부처의 걸음이 뒤뚱거리고 있다."(본문 356쪽)

크고 작은 것, 올바른 것과 그른 것, 있음과 없음, 밝음과 어둠 같은 것을 기어이 분별하려는 인간의 누추한 분별심이 법계의 진실을 흐리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발원하는 유명한 어구가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다.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으나, 고르고 분별하는 것만은 꺼리고 피하도록 하라!

이런 식으로 지은이는 우리를 일상의 범용함으로 인도하면서 부처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오늘 지은 업이 마음의 창고에 아무런 찌꺼기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일 다가올 일을 걱정하지도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부처다."(본문 357쪽)

<붓다의 치명적 농담>은 다소 난해하다. 하지만 적잖게 친절하고 흥미롭다. 지은이가 소유한 동서양과 고금의 깨우침이 소략하되 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불가의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는 독자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깊이 있는 한문이나 어려운 한자도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친절한 미덕인가!

한국인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나이 들면서 영혼과 정신의 본향(本鄕)을 그리워하기 마련. '양키문화'와 '제국 아메리카'를 떠받든다 해도 본래적인 것은 늘 그리운 것일 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점검하는 전환점에 자리한 이 땅의 허다한 '백성'들에게 이 서책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 (한형조 | 문학동네 | 2011.03. | 1만9800원)



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문학동네(2011)


#붓다#금강경#시비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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