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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 명함을 만든다〉
책겉그림〈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 명함을 만든다〉 ⓒ 라이스메이커
얼마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전성은 선생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도하는 '인재양성교육'을 반대했다. 그 일은 '직업기능인'을 뽑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이른바 사법 고시를 통해 매년 1000명의 법조인을 뽑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1000명의 인재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직업인을 선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었다.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위는 그분이 내 놓은 직업 선택의 10계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앞으로 직업을 선택할 때 취해야 할 자세기도 하다. 그분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돈과 명예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택하도록 종용한다.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직업일지라도 자신에게 보람된 일을 찾으라는 뜻이다.

왜 그 분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거리는 걸까. 그분이 강조하는 직업 10계명이 왜 그리 큰 울림을 선사하는 걸까.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중고생들이 그리는 꿈과 현실의 벽이 너무나 큰 괴리감을 주는 까닭이다. 고등학생들은 자기 개성이나 적성보다는 부모의 권유나 대학입학 자체만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경향이 짙다. 그 때문에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는 일도 많고, 대학을 나오고서도 또 다른 고민거리에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

"부모는 멀리 보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앞서 가라고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 명함을 만든다> 93쪽)

정영미 외 3인이 쓴<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 명함을 만든다>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모를 적극 활용한 진로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는 금명중학교의 교육철학 명언이라고 한다. 그 학교는 '석세스드림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 교육프로그램과는 달리 부모가 직접 진로코치 자격을 갖추게 한다고 한다. 학부모를 교육해 학생들의 진로지도에 적극 참여시킨다는 뜻이다.

그것은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우리의 중고생들을 꿈꾸는 미래로 전환시키는 진로혁명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게 왜 참신한 발상일까. 이 책에 나온 바에 따르면 무작정 학생들의 성적과 부모의 바람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는데, 성취감도 떨어지고 학업에 회의감도 떨어져 제2의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대학생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실제로 2005년 채용포털 '커리어'가 주요기업 23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신입사원 만족도 및 이탈율 조사에서 66.8%가 입사 1년 안에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더욱이 1년 안에 회사를 그만 둔 신입사원 중 무려 79.3%가 3개월도 채 근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 사유 중 42.7%는 '직무적응 실패'를 원인으로 꼽았다고 한다.

과연 그게 누구 탓일까? 대부분 그와 같은 문제를 모두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고 한다. 진로 문제로 인한 방황을 개인의 불행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로 인한 시간과 비용의 손실도 모두 개인의 부족함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개인의 실수요, 개인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일로 단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손실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보다 근본적인 처방전을 내 놓지 않는다면, 그런 비극적인 일들은 해마다 되풀이 될 게 뻔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대통령이 새롭게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하우스 푸어'에 이어 '에듀 퓨어'(Edu poor·교육빈곤층)라는 말이 여기저기 들리는 것도 더 고통스런 현상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교육선진국 뉴질랜드의 '열린교장실정책'(Open Door Policy)이나 '페런츠 이브닝'(Parents Evening) 제도, 그리고 초등학교의 성적표 대신 아이의 관찰 기록부를 상세하게 적고 있는 덴마크의 교육제도,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를 도입하고 있는 아일랜드 교육제도, 미국에서 95%의 졸업률을 보여주는 멧이스트 고등학교의 '빅픽처'(Big Picture) 교육제도를 눈여겨봐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이 진정 필요한 때다.

"덴마크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성적이 나와 있지 않다. 성적은 아이에 대해 극히 일부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대신 선생님의 관심이 담긴 관찰 기록이 성적표에 담겨 있다. 일일이 손으로 쓴 평가서에는 점수화된 성적 대신 학생의 재능에 대한 상세한 코멘트가 적혀 있다."(본문 135쪽)

현재 우리나라에는 1만5000여 종의 직업이 있다고 한다. 여전히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변호사나 의사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고 있고, 학생들은 뮤지컬 배우나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연예인 등 새로운 직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대 차이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모들만 문제일까. 아니다. 정부와 교육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직의 중고 선생님들도 장벽에 부딪혀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장래보다도 당장의 대학입시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게 그 때문이다.

설령 학교에서 진로상담교사를 많이 두고 있다지만 그게 온전한 치유책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임시 땜질식 처방전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과 치유책은 하루빨리 다양한 학교와 학제와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의 저자들은 현재의 범위 내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을 알려준다. 초등학교 때에는 새로운 경험을 즐기도록 하고, 중학교 때엔 아이의 계열을 정해주고, 고등학교 때엔 진학 말고 진로를 고민토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아이의 진로는 부모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의 정책 개선에 지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임을 상세하게 밝혀놓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부디 이 책 속에 담긴 교육정책을 소중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의 명함을 만든다 - 행복한 진로 혁명 프로젝트

정영미 외 지음, 라이스메이커(2013)


#정영미#〈진로력, 10년 후 내 아이 명함을 만든#‘에듀 퓨어’(EDU POOR·교육빈곤층)# ‘열린교장실정책’(OPEN DOOR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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