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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이 정책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수정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경제적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힘 (민주적인 혹은 비민주적인)에 부딪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공약이 의회의 반대에 부딪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외에 선거 이후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벌써 공약이 수정되는 경우는 아마도 연립정부가 구성되어, 여러 정당의 공약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위의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정치적 절차가 시작되거나 그 사이에 특별한 경제적 변화가 전혀 없었는데도, 선거 공약의 중요 부분들이 국정과제에서 사라지고, 약속한 공약의 핵심 쟁점들이 그게 바뀌었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대통령 후보가 TV에서 여러번 약속한 내용들이 깨끗이 증발해버렸다.

더군다나 이런 내용을 발표하면서도, 당선인도 여당도, 인수위원회도 국민에게 어떠한 사과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염치나 인사치레의 문제가 아니라 대의제의 기본원리라 할 수 있는 '대표-책임' 관계를 싹 무시하거나, 애초에 그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를 대의제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연립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니고, 48%를 득표한 야당을 존중해 51%의 여당이 국정과제 협의를 해서 나온 결과도 아니니, 이것은 순전히 관료들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거나, 애초에 스스로도 허황되다고 생각한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고도 당선인은 주요 각료에 관료출신들을 주루룩 임명했으니, 지금 수준의 공약도 지켜질 리 만무하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고 당선인 스스로도 자랑했고, 여당도 그것을 내세웠다. 그런데 그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에 그런 것쯤은 깡그리 무시했다. 그래서 실은 원칙과 소신이 아니라, 대표로서의 책임과 민주주의의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더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선인이 공약 내용이 달라진 부분에 대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TV 토론 때 그것을 주장하던 것처럼 만이라도 설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면 좋겠다. 그것이 이 정부가 대의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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