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 기사에는 연극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날이 그날 같고, 그러니 요일도 시간도 잘 모르겠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허구한 날 마주 대하는 사람은 남편과 아내 뿐이다.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침대에 누워서도 둘 뿐이다. 24시간 365일 집안에서 두 사람이 붙어 지내니 도대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며 무엇을 하며 놀겠는가.

연극 <남아있는 나날들>은 69세, 73세 노부부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르주'와 '마리'라는 이름과 그들이 오래도록 살다 떠나온 '아공당주(州)'라는 지명만 프랑스어일 뿐,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노부부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연극 <남아있는 나날들>  포스터
▲ 연극 <남아있는 나날들> 포스터
ⓒ 극단 종이로 만든 배

관련사진보기


두 사람이 결혼한 지는 46년, 남편 조르주는 아공당주에 있는 철강공장에서 55년 동안 일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 시골로 낙향을 한 것. 마리는 한적한 시골살이가 지루하고 지겹다. 가까이 사는 이웃도 없고, 너무 멀어 자식들도 찾아오기 쉽지 않다. 하루종일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고, 말을 섞을 사람도 동물도 없다.

거기다가 조르주는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라고는 작업실에서 망치로 쇠를 두들겨 뭔가 만드는 것뿐, 나머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에게 시킨다. 뻑하면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낸다. 나이 들어 다리도 시원찮은 마리는 그래도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린다.

꿈을 포기한 채 살아온 아내, 평생 열심히 일해온 직장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남편, 그런대로 잘 살아온 인생이었다는 정리와 자기 평가, 인정, 서로에 대한 격려와 칭찬 없이 맞닥뜨린 외진 시골에서의 생활이 편편할 리 없다.

짜증, 조급함, 불면, 성욕구에 대한 불일치, 외로움, 몸의 노화, 대화의 어긋남. 바로 옆에서 자주 보고 느끼는 노부부들의 모습이다. 반대로 추억에 대한 공유, 이해, 받아들임, 보살핌 역시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노부부들의 모습이다. 몇 십 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에게는 사실 이 모든 게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처녀시절에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꽃을 심던 아내가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늘 아내와 마주 앉았던 식탁에 홀로 앉아 자식한테 부고를 쓰는 조르주.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다섯 명의 여자 사회복지사가 연극을 함께 봤는데 노부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중평. 그 중 기혼인 세 명의 이구동성 소감이 더 생생하다.

"머지 않아 우리 부부도 저렇게 살까봐 걱정...나이 들어 지나치게 한적한 곳으로 옮기는 것은 문제야. 사람 벅적대는 곳에서 살아야 덜 외롭지...평생 목소리 컸던 아버지와 몸종처럼 수발 들며 살았던 어머니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했어...아, 우리 부부는 어떻게 긴긴 노후를 보낼지 걱정이다!"

내 개인의 평. 내 앞에 있는 노년의 삶이, 이 노부부의 삶처럼 이어진다면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사람 만나고 공부하고 아이들 기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노년준비, 즉 노년생활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어떻게 일상을 꾸려갈지 고민하는 일은 오십대 중반 부부의 시급한 당면 과제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연극 <남아있는 나날들> (원작 : 장 폴 벤젤 '머나먼 아공당주' / 윤색, 연출 : 하일호 / 출연 : 김연진, 홍성춘, 홍재옥, 임정선) ~ 2월 3일까지, 선돌극장



#남아있는 나날들#노인#노년#노부부#부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