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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간사, 오른쪽은 윤창중 대변인.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간사, 오른쪽은 윤창중 대변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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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청문회. 'IMF 외환위기'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이날 청문회에서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은 "외환위기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재정경제원이 1997년 10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했고, 한국은행의 경고도 묵살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원은 1994년 경제정책의 효율성 강화를 위해 설립됐다. 재정경제원은 경제정책 수립, 예산편성, 금융·세제 업무 등 경제 정책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경제부총리를 겸임하는 재정경제원 장관은 견제받지 않았다. 그 대가는 컸다. '외환위기'였다. 이후 정부조직개편 때마다 견제와 균형이 가장 중요한 원리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견제와 균형 대신 효율성을 택했다. 지난 15일 인수위원회는 창조경제를 위해 '공룡부처'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경제 부흥을 위해 경제부총리제를 5년만에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두 부처에 막강한 힘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원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정부 때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은 "정부조직에서는 견제와 균형 유지가 중요하다"며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서는 그러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쪽으로 힘 모아주면, 관료 이익부터 먼저 챙길 위험"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재정경제원은 결국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재정경제부, 예산청, 기획예산위원회로 쪼개졌다. 대부처주의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로 다시 합쳐졌지만 민생 악화와 양극화 심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3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현 정부에서 서민 체감 경기 악화, 고용의 질 개선 지연, 재정의 경기 대응 여력 약화, 성장 능력 저하 등이 일어났다"고 인정했다. 이명박 정부 때 공룡부처로 재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정보통신부+방송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교육인적자원부+과학기술부), 국토해양부(건설교통부+해양수산부) 등도 성과보다 실패가 더 컸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미래창조과학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는 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과학기술 부문과 방통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ICT) 부문, 지식경제부의 우정사업본부, 문화체육관광부의 디지털콘텐츠 부문 등이 합쳐진다. '슈퍼 공룡부처'의 탄생이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대부처의 경우, 장관 한 사람이 다루기에는 범위가 넓어서 소외를 받는 업무가 나타난다, 중요한 업무임에도 제대로 된 정책 대응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이명박 정부 때 합쳐진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부문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 부문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긴다, 하지만 다시 정보통신, 과학기술, 우정사업본부 등이 합쳐진 공룡부처가 탄생하는 것"이라며 "자칫 교육과학기술부의 문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쪽으로 힘을 모아주면 거대부처가 돼 일을 잘할 것 같지만 자기 멋대로 간다, 국민의 이익보다는 관료 이익부터 먼저 챙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부처끼리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 정말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경제부총리 신설' 박근혜 정부 조직은 '박정희 스타일'?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진 지난달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지지자가 박 후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나와 감격해 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진 지난달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지지자가 박 후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나와 감격해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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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 조직 개편안의 주요한 특징인 경제부총리제 부활을 두고,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주도형 성장주의 경제 정책을 좇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부총리 제도는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월 18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부흥부를 건설부로 확대 개편했다. 이후 7월 다시 재무부의 예산기능과 내무부의 통계기능 등을 더해 경제기획원을 만들었다. 경제기획원에 국민경제의 부흥개발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과 실시라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경제 부흥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은 경제기획원장은 부총리 급 대우를 받았다. 당시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내각수반(국무총리)이 사고로 직무를 행할 수 없을 때에는 경제기획원장이 그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경제기획원장(장관)이 공식적으로 부총리가 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후, 같은 해 12월 취임하면서 부총리제를 신설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이를 겸임하도록 했다. 경제기획원에는 국민경제의 종합적 개발계획 수립·발전, 예산 편성·집행, 국내외 가용자원 동원, 투자·기술 발전을 위한 계획의 종합적 조정 등 경제 정책 전반을 총망라한 권한이 부여됐다. 경제기획원은 개발독재시대를 이끌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경제부총리제 부활을 두고 "경제부흥이라는 당선인의 국정철학과 실천의지가 담겼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사라졌던 '부흥'이라는 단어가 경제부총리제와 함께 다시 등장한 것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조직개편안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드러나지 않아 실망과 의구심이 있다"며 "경제정책이 박정희 시대의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로 회귀하면, 박근혜 정부는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조직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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