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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고전> 표지
<세상의 모든 고전> 표지 ⓒ 가람기획
각 고전에 대한 역주서나 연구서가 아닌 이런 고전 안내서는 긍정적인 측면만큼이나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고전 안내서는 말 그대로 고전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해당 고전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과 핵심적인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면서, 고전의 숲에 들어선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고전을 완독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필요하다.

독자들이 고전 안내서만 읽고 원본을 읽지 않는 것은 아예 안내서조차 읽지 않는 것 보다는 낫지만 원본까지 충실히 읽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제 200권 가운데 대부분은 국내에 충실한 번역본이나 연구서가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런 안내서가 고전읽기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고전 자체가 쉬워지지는 않기 때문에 고전읽기에는 어느 정도 독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 <세상의 모든 고전> 11쪽 머리말 중-

도서출판 가람출판에서 출간한 <세상의 모든 고전>을 엮은 반덕진이 책의 첫머리에 넣은 '머리말' 중 일부의 글이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고전>을 엮어내면서 고전 안내서가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염려하고 있다. 저자가 염려하는 부정적인 측면은 우리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중학교를 갓 입학해 아직은 같은 반 애들과 친해질 시간도 별로 없었을 즈음 사회과목 시간이었다. 전후 사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같이 수업을 듣던 낯선 애 하나가 선생님의 지명을 받아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저렇게 말하고는 털썩 앉는다.

'저게 무슨 말?'

사회수업을 듣고 있던 같은 반 애들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수업이 끝나고 들으니 그 애가 구구단을 외듯 줄줄이 꿰어내던 게 조선시대 왕들을 차례대로 부른 거란다. 동네스피커에서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던 새마을노래에 맞춰 부르면 노래가 된다고도 했다. 그 시간 이후, 그 애는 반 친구들에게 역사박사쯤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그 애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역사박사로 부러움을 살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면서 그 애의 사회(국사)실력은 딱 거기,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을 새마을노래의 곡에 맞춰 부를 수 있을 뿐이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팝송제목과 가수이름은 줄줄 꿰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부르는 팝송은 한곡도 없었던 친구도 있고, 세계문학전집에 나오는 명작과 저자의 이름은 줄줄 외고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거의 모르던 친구도 있었다. 저자가 <세상의 모든 고전>을 엮어내면서 염려하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저자도 이야기하였듯이 안내서조차 읽지 않는 것보다는 안내서라도 읽는 게 낫다. 안내서라도 읽으면 고전에 대해 정의할 수 있다. 오래된 책이라고 해서 다 고전이 되는 건 아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정의하고 있듯이 "고전(古典, classic)이란 '특정 시대와 특정 공간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아 온 책'"이다.

<세상의 모든 고전>에 담긴 고전들은?

<세상의 모든 고전>에 담긴 고전들은 1994년 2월,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동서고전 200선'으로 선정된 고전들이다. <홍길동전> <춘향전> <무정> <임꺽정전> <상록수> <님의 침묵> <서유기>처럼 귀에 익숙한 고전부터, 동양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기탄잘리>와 이슬람 설화인 <천일야화>까지를 45편으로 소개하고 있다.

각 고전들마다 고전에 대한 개요가 관전 포인트처럼 들어가 있고 저자의 이력이나 약력, 성장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이 설명되고 있어 소개하는 고전을 이해하는 밑그림이 된다. 길지는 않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줄거리'가 잘 정리돼 있어 산 정상에 올라서서 산줄기가 구비치는 산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사방에서 상하로 기복하고, 좌우로 굴곡하고 있는 산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전망대라면, 여러 고전들을 한 권으로 아우르듯이 휘둘러 볼 수 있는 고전 전망대가 바로 <세상의 모든 고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지라도 산 정상에 올라서면 산하가 한눈에 보인다. 정상에서 산하를 내려다본 사람이라면 그 산을 직접 걷고 싶어지리라 생각된다. 비탈진 산길은 땀 뻘뻘 흘리며 오르고, 평탄한 능선은 타박타박 걷을 수 있는 산하, 솔바람에 땀 식히고, 물결소리에 갈증달래며 한번쯤은 걷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세상의 모든 고전>이 그렇다. <세상의 모든 고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전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 고전이 갖는 의미와 내용, 문학적 가치쯤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가지런히 정리된 줄거리와 소(앙꼬)처럼 들어가 있는 인용문들을 읽다보면 고전 원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 기대된다. 

<세상의 모든 고전>들 읽다 보면 고전 원본 읽고 싶어져

원본을 읽다보면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 듯한 지루함이 있을 수도 있고, 평탄한 능선을 걷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거다. 솔바람을 쐬던 시원함, 물결소리에 목을 축이던 평온한 행복감도 맛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된다.

<세상의 모든 고전>의 역할이자 가치가 바로 산 정상을 향하고 있는 케이블카이고 내려다본 산하를 직접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심시키는 동기부여가 아닐까 생각된다.

개요와 줄거리만을 통해서 만나보는 고전도 아예 만나지 않는 것 보다는 좋지만, 단 몇 사람이라도 <세상의 모든 고전>이 계기가 되어 고전 원본을 읽게 된다면 저자가 <세상의 모든 고전>을 엮은 목적은 이미 열매를 맺은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아래의 글은 신라시대를 산 최치원의 글을 저자가 <세상의 모든 고전>에 소처럼 넣은 원본 인용문이다. 1000년이 훨씬 넘은 고전 속의 글을 다시 한 번 읊조리노라니 1000년의 세월이 가슴에서 노를 젓는다.

강남 땅은 풍속이 음탕하여   江南蕩風俗
딸자식을 요염하게 키운다네   養女嬌遮憐
천성이 요염해 바느질을 싫어하고  冶性恥針線
단장하고 거문고 타는 일뿐  粧成調管絃
우아한 곡조는 배우지 못했으니  所學非雅音
춘정에 많이 이끌리네   多被春心牽
아름답고 꽃다운 그 맵시  自謂芳華色
언제나 청춘일 것으로 여기네  長占艶陽年
가난한 이웃집 여자들   却笑隣舍女
온종일 베틀 놀리는 걸 비웃네  終朝弄機杼
'아무리 땀흘려 비단을 짜도  機杼縱榮新
비단옷 너에게 돌아가지 않을 걸' 羅衣不到汝
- <세상의 모든 고전> 28쪽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모든 고전>┃엮은이 반덕진┃펴낸곳 도서출판 가람기획┃2013.1.15┃값 1만 8,000원



세상의 모든 고전 : 서양문학편 -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반덕진 엮음, 가람기획(2013)


#세상의 모든 고전#반덕진#가람기획#임꺽정전#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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