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라고 하믄 찐득거려. 날 좋을 땐 꼬실꼬실 허고. 습기에 어찌나 민감한지. 여시가 따로 없어. 그래서 엿이여. 엿."옥산댁 기복덕(78) 할머니의 말이다.
엿 만들기가 한창이다. 설날을 앞두고 대목을 맞았다. 엿은 아무 때나 만들지 않는다. 겨울 한 철에만 만든다. 오래 된 겨울철 주전부리다. 농가엔 농한기 소득을 가져다준다. 쏠쏠하다.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는 전남 담양 창평. 오강리 양산마을 조진순(58) 씨의 한옥에서 엿을 만들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 하는 엿 만들기는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옥산댁 기씨 할머니와 무월댁 송정순(78) 할머니가 엿을 시기고 있다. 한 덩어리의 갱엿을 둘이서 잡고 밀고 당겨 늘이는 일을 '시긴다'고 한다. 엿 만들기가 절정을 이루는 단계다. 엿 속의 구멍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엿을 시기는 솜씨가 '달인'급이다. 두 할머니는 10대 후반부터 엿 만들기를 해왔다고 했다. 경력이 60여 년 된다. 옥산댁은 손이 큰 편이다. 갱엿 큰 뭉텅이도 거뜬히 시긴다. 반면 무월댁은 적당한 뭉텅이를 반긴다.
끈적끈적한 갱엿 한 뭉텅이를 시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 할머니는 가볍게 밀고 당긴다.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표정의 변화도 없다.
"힘들지 않으신지" 물었다.
"두 시간 정도는 갠찮아. 쉬지 않고 해도. 운동이지. 근디 두 시간을 넘기믄 힘들어. 그때부터는 일(노동)이여. 힘들어. 그렁께 오랫동안 못혀. 하루 죙일 할 수 없는 일이 이거여."옥산댁의 말이다. 무월댁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던 할머니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비친다.
이렇게 시긴 것을 가락으로 만드는 건은 제월댁 이정순(67) 할머니가 맡는다. 두툼하게 시긴 엿을 보기 좋게 늘이고 가늘게 다듬는 것이다.
가락을 치는 건 사동댁 박남순(78) 할머니의 몫이다. 엿가락을 적당한 크기로 끊는 일이다. 대충대충 치는 것 같은데도 크기가 일정하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전 준비는 주인 조진순씨가 해놓는다. 밤새 가마솥에서 식혜를 고아 갱엿으로 만든다. 이 갱엿을 적당한 뭉치로 덜어 비닐에 감싸서 아랫목 이불에 넣어두는 것도 주인장의 일이다.
엿을 만드는 날엔 갱엿 뭉텅이를 아랫목에서 꺼내 엿을 시기는 두 할머니한테 내준다. 시긴 엿을 가락으로 만드는 제월댁한테 옮겨주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다. 끊은 엿을 이리저리 널어 말리는 것도 해야 한다. 온갖 일을 다 한다.
"난 보조여."조씨의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보조에 머물지 않는다. 엿 만드는 일을 총괄한다. 보조 겸 총감독인 셈이다.
이렇게 만든 쌀엿은 ㎏당 1만5000원에 팔린다. 판매처는 따로 없다.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로 다 나간다. 조씨 집에서는 하루 80근의 엿을 만든다. 1근이 600g인 점을 감안하면 48㎏을 만드는 것이다. 쌀은 80㎏이 들어간다.
작년 겨울엔 이 집에서 쌀과 조청을 만드는데 쌀 40㎏들이 200포대를 썼다. 이번 겨울에도 그 정도를 쓸 것으로 보고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배왔어라. 엿을 맹글고 된장 담그는 것을 맞아 감서 배웠는디. 그때는 원망을 많이 했지라. 근디 지금까지 이렇게 써먹을 줄 누가 알았겄소. 이럴 줄 알았으믄 그때 불평 않고 잘 배워둘 것인디."쑥스럽게 웃는 조씨에게서 농촌 아낙네의 순박함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