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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도리포 주민들이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도리포 주민들이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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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마악 사랑을 놓아버린 사람은 가보라'했던 곳이다. 도리포구다.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에 있다. 일몰과 일출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도리포는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뽑혔다. 거친 해풍에 부서지는 파도와 빨갛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황홀하다. 하여, 해마다 연말연시면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려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

도리포구 전망대에 섰다. 바다 저편으로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와 함평항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드넓은 바다를 향해 정화수를 떠놓고 지아비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아낙네상이 애틋하다.

바닷바람이 차갑다. 하늘엔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발길을 돌려 반대편에 있는 물량장으로 향했다. 포구에 정박한 10여 척의 배에서 까만 물김을 퍼 올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말로만 듣던 돌김 '무안해제김'이다. 무안해제김은 예부터 맛과 향이 좋다고 소문이 나 있다.

 도리포항 표지석. 도리포는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포구다.
 도리포항 표지석. 도리포는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포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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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고 있는 아낙네상. 도리포구에 서 있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고 있는 아낙네상. 도리포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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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 맛을 어떻게 말로 설명한다요. 잡솨바야 알제. 우리 김을 한 번 먹으면 다른데 것은 심심해서 못 먹어. 말려서 먹으면 더 맛있어."

한 촌부가 퍼 올리던 물김을 집어 들더니 입안에 넣는다. 길손에게도 한 입 권한다. 향긋한 바다내음과 돌김 특유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그 맛의 비결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갯벌이 좋죠. 장마철이면 황토가 어마어마하게 바다로 흘러가거든요. 바닷물이 뻘걸 정도예요. 바다의 영양분이 되는 셈이죠. 또 있어요. 공장지대나 양돈장 하나 없는 청정지역가 여깁니다. 바다로 들어갈 폐수도 없고. 다른 데 가서 김 양식을 해봤지만, 여기만큼 좋은 김이 나오질 않습니다."

20년 넘게 김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정선호(48) 도리포어촌계 총무의 자랑이다. 그만큼 갯벌이 좋다는 얘기다. 무안 갯벌이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전국 최초로 갯벌 보호지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다. 해제김에 게르마늄 성분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것도 이런 연유다.

마을에선 25어가에서 김을 생산한다. 터전은 포구 오른편으로 펼쳐진 함해만과 왼편의 칠산바다다. 이곳에서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해 김 농사를 짓는다. 부업인 셈이다. 그렇다고 수입까지 부업은 아니다. 어가당 평균 500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다. 왠만한 농사보다 낫다.

 어촌계 주민들이 도리포구에서 수확한 물김을 뭍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어촌계 주민들이 도리포구에서 수확한 물김을 뭍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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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호 도리포어촌계 총무가 갓 수확한 물김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선호 도리포어촌계 총무가 갓 수확한 물김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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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해제김'은 지주식 김이다. 바다의 바닥에 기둥(지주)을 박고 김발을 동여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 김을 키운다. 지주에 매달린 김은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큰다. 썰물 때면 햇볕을 받아 마르고, 밀물이 들면 다시 바닷물 속으로 잠긴다. 밤이면 얼고 낮이면 다시 녹는다.

그렇게 하루 2번, 8시간씩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부실한 김과 잡태는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건강한 김만 살아남는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방식이다. 여기에는 선조의 오랜 경험과 전통, 무안의 청정바다와 맑은 햇살, 해풍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키우기도 힘이 든다. 수확량도 적다. 생육 기간도 길어 1년에 기껏해야 서너 번 채취하는 게 고작이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참김(김밥용김)에 비해 거칠고 볼품도 없다. 그러나 품질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다.

 도리포어촌계 주민들이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물김을 수확하고 있다.
 도리포어촌계 주민들이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물김을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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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가 높아 감칠맛과 깔끔한 맛을 낸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하고 달착지근하다. 바다 냄새도 솔솔 묻어난다. 게다가 산을 쓰지 않는 무산김이다. 밀식을 피하기 위해 시설량도 줄였다. 그만큼 튼실하다. 상인들은 이 김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렇게 좋은 김을 생산해놓고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값을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잘 되리라 믿습니다. 워낙 김이 좋으니까요."

박종철 어촌계장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어촌계를 중심으로 기업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다. '무안해제김'이 비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날이 빨리 오길 고대한다.

 도리포구에 설치돼 있는 지주식 김양식장. 도리포어촌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도리포구에 설치돼 있는 지주식 김양식장. 도리포어촌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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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선이 도리포구에서 말려지고 있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선이 도리포구에서 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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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리포#지주식김#도리포어촌계#정선호#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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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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