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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개원 때가 생각난다. 당시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들이 들어왔다. 시설에서 들어오는 환자들이라 보호자가 없어 개인 물병이나 수건, 기저귀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물품을 빨리 사주지도 않았고, 간병사들은 각자 시장에서 물병을 사고 집에서 수건을 가져왔다.

그러는 와중에 병원은 점차 안정되어 갔고, 인근 환자들도 서비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간병사들은 우리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병원의 한 식구라는 마음으로 일해 왔다."

2006년 진해 동의요양병원 개원 당시부터 간병사로 일했다고 한 간병사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그런데 이 추운 날 병원에서 나가라니?"라며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말했다. 다른 간병사가 마이크를 받아 이어 나갔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지역본부 창원시지부 소속 동의요양병원 간병사들은 지난 2일부터 매일 병원 앞에서 '전원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지역본부 창원시지부 소속 동의요양병원 간병사들은 지난 2일부터 매일 병원 앞에서 '전원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 윤성효

"모든 환자들은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시설에서 보살핌을 잘 받지 못했는지, '옴'에 걸린 환자가 많았다. 저는 '옴'이 심각한 전염병인지 몰랐다. 간호사들은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간병사한테 미루기도 했다. 어르신들에게 '옴'약을 발라주고 나면 우리도 온몸에 '옴'이 퍼졌다. 병원에 가렵다고 하소연해 그 독한 주사를 3대나 맞아야 가려움이 진정되었다. 이 병원에 근무한 간병사 중에 '옴'에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다. 1년 열두 달 '옴'을 달고 살아왔다.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돌아가신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고, 얼굴을 닦아 드리고, 구급차에 태워 배웅하는 일도 우리 몫이었다. 병원에서 가장 힘들고 꺼려 하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에 우리 간병사들이 해 온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인데 어떻게 이런 취급을 한단 말이냐."

4일 오후 진해 동의요양병원 앞 집회 때 간병사들이 억울한 처지를 늘어놓았다. 발언하며 흐느끼기도 하고, 듣고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며 훌쩍거리기도 했다. 이들은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지역본부 창원시지부 소속이다. 동의요양병원 간병사 33명 중 31명이 가입해 있다.

간병사들은 개원 뒤부터 6년째 근무하거나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2년 이상 일해 왔다. 간병사들은 지금까지 파견업체(엘소) 소속인데, 그동안 업체 변경을 해도 전원 고용 승계해 왔다. '엘소'는 지난 11월 30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병원 측은 계약만료 2주를 앞두고 노조와 면담을 통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것. 병원 측은 간병사 가운데 20명을 3교대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나머지 13명은 '협회'(소개소) 소속으로 하겠다고 한 것이다. 노조는 "전원 고용승계가 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

노조는 지난 2일부터 병원 앞에서 집회를 열어오고 있다. 노조는 "6년 동안 일해 왔고 업체만 바뀌었을 뿐 같은 병원에서 일해왔기에 무기계약직이라 봐도 무리가 없는데, 갑자기 계약을 마무리해 길거리로 나앉은 상태"라며 "간병사 전원을 정규직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4일 "6년 근무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본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년을 일하면서 해마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재계약을 통하여 간병과 요양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아름다운 노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 본부는 "병원이 경영 상태가 좋을 때에도 간병노동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이었고, 지금도 최저임금이다"며 "이제 와서 병원이 어렵기에 병원의 부실경영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병원 측은 "세금 체납액 납부와 과징금을 내야 하기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산업노조#간병사#여성노동자#위탁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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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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