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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수 씨가 농사 지은 배. 달고 맛이 있어 사람들이 먹을 때마다 놀란다고 한다.
한경수 씨가 농사 지은 배. 달고 맛이 있어 사람들이 먹을 때마다 놀란다고 한다. ⓒ 박병춘

"아침이 되면 새가 모이는 시간이 있어요. 그리곤 수많은 새들이 동시에! 한꺼번에!(강조) 지저귑니다. 그 순간을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고 즐겨요. 새소리와 함께 마음의 번뇌를 다 녹여내고요."

대전 영동 간 국도로 가다가 큰길에서 10킬로미터 정도 깊숙한 산길로 들어가면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하늘농원'이라는 삶의 터전이 있다. 바로 한경수(48. 충북 영동군 용산면 시궁길 139번지)씨가 일궈 놓은 소중한 영농 공간이다.

가끔은 멧돼지랑 대화도 한다는 농부 한경수씨는 자연의 품에 안겨 사는 게 은총이라고 말한다. 한씨가 직접 지은 흙집에 들어가 차를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한씨는 귀농 전에 명상 호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에 소속돼 지도 사범 원장으로 일했다. 경기도 안양, 평택, 영통, 부산 장림에서 일하다가 IMF를 지나며 인원을 재배치할 때 단체가 운영하는 천모산 영농조합법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원했다. 2000년 2월 경에 부산에 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

귀농을 하면 더 행복하겠다는 판단에 결단을 내리고 과수원을 일궜다. 마음 수행도 하면서 농사도 지으니 일석이조라며 활짝 웃는다. 2000년에 영동군 심천면 마곡리 천하원이라는 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2002년도에 결혼해서 살고 있다.

 농부 한경수 씨가 직접 운영하는 하늘농원
농부 한경수 씨가 직접 운영하는 하늘농원 ⓒ 박병춘

농부로서 지난 십 년을 회상하기로 했다. 한씨는 농부로서 주민들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지역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농사를 지어서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행복의 가치를 두기도 하지만, 지역에 참여해서 봉사를 하는 것도 행복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한씨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에 참여했을까? 영동군 용산면 새마을 협의회장만 6년을 했다. 자원봉사 센터인 국학 평화봉사단을 창립하여 마을 사람들(어르신)에게 스포츠마사지로 스킨십을 하고 마음 치료도 해준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지역 주민들을 기쁘게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자원 봉사 센터에서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하고, 면 내 주민 자치 위원이면서 대외적으로는 대청호 보전운동본부 영동네트워크 사무국장이기도 하다.

한씨에게 농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물었다. 답변은 단호하다.

"모든 게 양심으로부터 비롯해요. 먹는 사람들에게 내 양심을 판다고 믿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것을 내가 먹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먹는데 화학 비료 뿌리고 농약을 칠 수 있겠어요?"

 당도와 향이 좋아 명품 배로 인기가 좋다.
당도와 향이 좋아 명품 배로 인기가 좋다. ⓒ 박병춘

하늘농원 대표 한경수 씨 "천혜의 땅에서 나온 배입니다. 저의 자존심이고요."
하늘농원 대표 한경수 씨"천혜의 땅에서 나온 배입니다. 저의 자존심이고요." ⓒ 박병춘

한씨가 농사짓는 땅은 하늘의 특혜를 받았다고 여긴다. 일교차라든가 토질이 좋아서 배의 당도가 좋고 향이 뛰어나 명품으로 통한다. 본인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올해보다 훨씬 좋은 명품 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올해는 지인 중 한 박사가 배 농사 컨설팅을 해주기로 한 상태라서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한씨의 친환경 농법 중 대표적인 것은 배나무에 거름을 많이 준다는 점이다. 거름은 축사와 양목장에서 구입해 숙성시켜서 준다. 비료는 안 준다. 한씨는 농사 교육을 많이 다녔다. 자연 농업 교육은 물론 태평 농법 등 교육 연수가 있을 때마다 많이 찾아다니며 연수를 받는다.

"내가 얼마나 신념을 가지고 배나무에게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집니다."

지극정성으로 배운 대로 실천한다는 게 한씨의 농사 철학이기도 하다. 초기에 칼슘 성분을 주어 과가 커지는데 도움을 주고, 수확철이 되었을 때도 칼슘제를 더 넣어 주어 육질을 좋게 한다. 이 칼슘제는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하고 기성 제품을 쓰기도 한다.

한씨의 배 농사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 한씨 스스로 정말 좋은 정보라며 약간 흥분을 한다. 그것은 바로 주변의 감나무에서 나오는 감을 활용하여 감식초를 만들어 뿌린다는 것이다. 배나무 해충을 없앨 때 물과 감식초를 섞어서 주면 해충을 없애는 데 탁월한 효과를 준다. 이는 한씨가 자랑하고픈 친환경 농법의 백미이기도 하다.

연간 배 생산량은 3500평에서 20톤 정도다. 이 중에 일부는 배즙을 내는데 출하하고, 중상품 이상은 인터넷 판매나 기존 단골들에게 판매하여 판로는 걱정이 없다. 또한 '신선고을'이라는 영농 조합 판매팀이 고가로 매입해 가기도 한다.

배 농사를 지으면서 올해가 특히 힘들었다고 한다. 올해는 배 봉지도 제대로 못 쌌다.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사면이 있는 곳에는 엄두를 못냈다. 할머니들이 봉지를 싸야 하는데, 연로하셔서 사다리를 못 타시니 배 봉지를 싸다싸다 포기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오는 바람에 과실이 많이 떨어졌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다 보니 땅이 질어서 작업을 못해 심신나방이 해를 끼쳐 배가 많이 떨어졌다. 내년에도 인력 부분이 점점 어려워서 힘들까봐 경사면 땅을 평지로 만들어서 기계화를 하여 일이 수월하게 되도록 계획 중이다.

농부로서 가장 즐거울 때가 언제인가 물었다.

"가끔 멧돼지랑 대화를 합니다. 소리도 크게 질러 보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참 좋아요. 내가 농부로서 자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제가 농사지은 이 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배라고 찬사를 받는 것 아닐까요? 가끔 사람들 중에 제가 농사 지은 배를 먹고 나서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을 표시할 때가 있어요. 맛있다고요. 내년에는 사람들의 눈을 좀 더 크게 만들고 싶어요."

한씨에게 자녀는 현재 없다. 아내가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 포기해야만 했다. 여러 가지로 여건이 안 되는 게 안타깝다. 본인 닮은 애를 보면 깜짝 놀랄 거 같단다. 그게 두렵다며 활짝 웃는다.

산간 오지에 있다 보니 멧돼지를 자주 본다. 그때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멧돼지를 쫓아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소리를 크게 질렀는데도 멧돼지가 도망을 가지 않고 오히려 그렁그렁 콧소리를 내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너무 무서워서 후닥닥 집으로 도망쳐 오기도 한다.

멧돼지가 많아 고구마를 심는 건 생각도 못한다. 한씨는 그래도 소리를 지른다. 아무도 들을 수 없지만 내 맘대로 소리치며 기쁜 마음을 발산한다. 웃으면서 소리를 지를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 아니고 무엇이냐며 전원 생활을 예찬한다.

영동 곶감 한경수 씨가 직접 만들고 있는 곶감
영동 곶감한경수 씨가 직접 만들고 있는 곶감 ⓒ 박병춘

영동 곶감 한경수 씨가 직접 생산 중인 영동 곶감.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영동 곶감한경수 씨가 직접 생산 중인 영동 곶감.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 박병춘

1만 1천 평 한씨의 농장에는 한씨의 아내와 아내의 지인 한 분을 합쳐 모두 세 명이 산다. 한씨는 배 농사 이외에도 곶감도 생산 판매한다. 여기에 친환경 된장과 복숭아, 자두를 상품화하여 농장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인터뷰 후반,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물었다.

"세상이 너무 초스피드입니다. 느린 시대에는 마을 단위로 일도 하고 서로 협력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모두 각자 개인 속으로 들어가 있어요.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하고 시골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런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신을 잃고, 양심을 다 잃고, 나밖에 모르며 살아갈 수는 없어요. 저는 우리 지역이 정이 넘치는 마을 공동체가 되도록 더 노력할 것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도 있잖아요. 대통령을 잘 뽑았으면 좋겠어요. 양심과 정신을 잊어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갑갑해요. 누구나 자본주의화 되어서 너무 돈에 맞춰 사는 거 아닌가요?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고 하는데, 놓아버릴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돈과 계산 따위를 던졌을 때 진정한 행복이 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너무 많은 이득을 보는 게 싫습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문제 거리를 보며 세상을 바뀌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그런 차원에서 농부로서 양심이 살아나서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렵니다. 옷을 번지르르 입고 화려한 차를 타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너무 내 것만 따지고 내 것을 내줄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 사고를 바꾸는 데 일조하는 농부가 되고 싶어요."


#한경수#하늘농원#배#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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