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시인회 여러분, 그리고 재일 동포 여러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고국 강원도에 사는 작가 박도입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면 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고모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1900년에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라는 곳에 태어나 양가집 종손으로 열한 살 때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시고 스무 살 때는 기미 만세운동도 보셨습니다.
청년 시절 망국민의 백성으로 마음 붙일 곳이 없어 그 시절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던 민속종교인 보천교에 몰입하여 전 재산을 헌납하셨답니다.
그러다가 집안어른과 가족들로부터 추궁을 당하자 어느 날 송아지를 파신다고 선산 장에 가서 송아지를 팔아 여비를 마련한 뒤 가족 몰래 혼자 일본으로 도망을 하셨답니다.
할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처음 한 일은 일본말을 몰라 도쿄 거리에서 100엔짜리 잡화를 파는 일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뒤는 고물장사를 하셨다는데, 리어카를 끌고 도쿄 골목마다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여 분리한 뒤 도매상에 파셨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고모들은 홀치기로 생계를 도왔고, 아버지는 나토 장사와 신문배달로 도쿄에 있는 주계상업학교를 다니셨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사시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들은 대동아전쟁 중 귀국하여 경북 구미에 터전을 잡으셨고, 아버지는 종전 직전 귀국하여 다행히 저희 집안은 전후 일본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만 둘째 고모만은 귀국 도중에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그 아들이 생사불명으로 찾지 못하고 94세가 되도록 아들을 잊지 못하여 눈을 감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들 이름이 이만희(李晩熙)랍니다. 누가 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고모님 평생소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만일 그때 우리 가족도 귀국치 못하였다면 지금 여러분과 같이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동포가 되었을 것입니다.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사는 사람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자랐는데, 할머니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은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보천교에 바친 원망 말씀으로 저도 덩달아 할아버지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습니다. 저는 최근에야 근현대사 역사공부를 하다가 할아버지가 보천교에 바친 재산이 독립군의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할아버지를 다시 우러러 보게 됐습니다.
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송아지를 팔아 당신 몰래 일본으로 간 얘기와 나중에 당신도 일본으로 가서 도쿄 시나가와(品川) 역전에 사셨다는 얘기, 그리고 신주쿠(新宿) 등 일본 지명과 할아버지는 정종을 좋아하셨는데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모으신다고 그 좋아하시는 정종도 한 컵 이상은 드시지 않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희 할아버지는 항일투사는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일본말을 하시는 것을 단 한 마디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바지저고리를 입으셨고, 나들이 때는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다니신 조선 선비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한자를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한자를 많이 배워두면 동양 3국에서는 필담으로 다 통한다고 제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시며 가르쳐 주신 덕분으로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자를 많이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평생 국어 선생이 되고, 작가가 되었나 봅니다.
저는 2007년 7월 21일 종소리회 대표 여러분을 평양 대동강 쑥섬에서 만났습니다. 그 뒤 오늘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오홍심 선생이 시지 <종소리>를 보내주셔서 잘 읽고 있으며, 때때로 제가 시민기자로 소속한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시를 조국의 독자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평생 청소년에게 우리말을 가르쳐온 국어 선생으로 정말 여러분은 장하시고 대단한 애국자들로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가령 어떤 국민이 노예의 신분이 되더라도 자기 나라의 국어를 건실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여러분이 종전 후 70년이 다되는 오늘까지 우리 얼을 지키고 모국어를 지키는 그 뜨거운 조국애에 정말 고개 숙여 경의를 드립니다. 솔직히 제가 일본에 남았다면 저는 여러분처럼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그 뜨거운 조국애에 감동하여 이따금 기사를 썼습니다.
이번 <종소리> 제52호에 실린 시들은 모두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가운데 연장순으로 두 편만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 해외에서 부디 건강하십시오. 언젠가 만날 그날을 기다리면서 고국에서 박도가 중천에 두둥실 떠오른 시월상달을 바라보며 달님에게 여러분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우리 겨레는 지구상에 무궁할 것입니다. 부디 부디 건강하십시오. 안녕!!!제 땅을 등지면 정화음
아무리 용을 써도
이 땅에서 떠날 순 없다그런데도 마음은자꾸 떠나자고 한다아무리 차별이 짓궂어도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그런데도 맘은하냥 멀리로 떠나자고 재촉을 한다이국살이 어데 간들 다르랴마는맘은 이미떠날 차비를 하고 있지 않나고향 잃은이 몸몸과 맘이 짝짝이 된이 삶먼 옛날 제 땅을 등지면갈 곳이 없어진다던종숙모님의 말씀이다시금 귀를 울린다인사도 없이 김윤호
며칠 전에
그 친구를 만나악수를 나누었다그 어떤 출판기념모임에서그로부터 사흘도 될까 말까하는 어제 아침그가 숨을 거두어절에 누워있다는 전화소식믿어지지 않는다놀라지 말라는전화속의 말이었지만어찌 놀라지 말라는 것인가?서른 해 남짓한 세월같은 시간에 얼굴을 맞대고같은 시간에 헤어지는 사이였다배울 것도 많았고도울 것도 많은 친구였다요즈음 헝클어진 실마리도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단 말인가사람들은 쇳덩어리 같은 몸이라 하여부러워하고, 탐내기도 했는데하룻밤 사이에 소문도 없이 가버렸는가나에게 인사도 없이 간 친구야내 가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다풀지 못했던 실 꾸러미를 풀고정답게 시를 논할 그날까지는편히 쉬고 기다려다오내 소주 한 병 들고좋은 소식 짊어지고 갈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