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이슬이 많은 계절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제가 찾는 그곳은 아침 햇살이 제법 늦게 들어오는 곳이라 점심때까지도 이슬이 풀잎에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안이 오면서 이슬사진을 담는 것이 많이 불편해 졌습니다.
소재를 찾을 때에는 안경을 벗어야 하고, 뷰파인더를 바라볼 때에는 안경을 써야 합니다. 다시, 사진이 제대로 담겼는지 확인하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내 안경이 지저분해집니다.
그래서 이슬이 내린 뒤에도 한동안 마음으로만 새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그냥 마음으로만 담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이슬방울들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맑은 이슬방울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도 그렇게 맑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 마음 맑지 못해도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맑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맑아야 제 몸에 꽃도 담고, 나무도 담고, 하늘도 담습니다.
그것처럼 맑은 사람이라야 세상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분들의 행보가 바쁩니다.
감상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 다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생각으로 뒤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마음도 새기고, 지혜로운 참모들의 말도 경청하고, 때론 자신의 허물있음도 인정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경청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미줄만큼 이슬방울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거미줄의 목적은 먹이를 잡는 것이지만, 아침 나절만큼은 이슬방울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부지런한 거미들은 이슬방울을 털어내려고 거미줄을 흔들어댑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연이 이슬방울을 말려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기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살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이 세상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것을 조금 양보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얼핏 보면 스쳐지나가는 것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투성이인 것이 자연이요, 꽃입니다.
사람들도 그렇지요.
겉으로만 보면 그저 그렇지만, 그 속내까지 깊이 알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깊게 사귀어야 합니다. 깊게 속내까지 알지 못하면서 사랑한다 어쩐다 하다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요.
오랜만에 이슬사진을 담으면서 드는 생각, 맑은 이슬이 꽃 담듯이 맑은 사람이 세상을 담을 수 있고,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