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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1994. 범우사)에서 장정일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두고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악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문'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는 지적이었다. 공지영이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김애란은 한예종 극작과 출신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2002년 등단한 소설가이다. 등단 이후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한꺼번에 받으며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 6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최근작인 소설집 '비행운'은 2012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작으로 올라 있다고 한다(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은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이름과 행적이 올라 있는 소설가 김동인의 이름을 따고 그를 기리는 것이다).

김애란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현역 젊은 작가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애비'부터 최근작 '비행운'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꼼꼼히 읽은 작품도 있고 대충 넘겨 읽은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에서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하다고 장정일이 비판했던 공지영의 흔적이 보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66돌 한글날을 맞아 그의 최근작 '비행운'에서 짚이는 대로 뽑은 몇 군데를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이는 김애란이 작가로서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통해 더욱 훌륭한 작가가 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인용한 개별 작품명과 해당 쪽은 생략함).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 관계가 얇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졌다."

관계가 얇다? 예전에 어느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덩치는 크지만 목소리가 여성스러운 남자 가수의 목소리를 두고 '목소리가 얇다'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목소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얇다니! 이제는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무리한 살빼기로 얇아지고 만 것인가. "'얇다'의 의미상 '관계'와 어울려 쓰이기 어렵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설명이다.

"천장 위에 달린 수백 개의 조명~~", "천장 위 환풍기가~~", "천장 위 형광등이~~", "천장 위 형광등은~~"

문제는 천장이다(아직도 '천정'으로 잘 못 쓰는 이들도 있다). 김애란은 "천장 위"에 수백 개의 조명과 환풍기와 형광등을 매달 줄 아는 재주를 가진 것 같다. '천장에' 혹은 '천장 아래'에 그것들을 매다는 건 나도 할 줄 안다. 하지만 천장 '위'에? 지붕 뚫고 아니 천장 뚫고 하이킥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그는 미납금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미안했는지 조그맣게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한번 읽어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이라도 가만히 한번만 더 읽어보면 웃음이 저절로 터지고 마는 문장이다. 이미 전화를 끊었는데 사랑한다고 덧붙였다니. 그것도 조그맣게! '빠름~빠름~'을 부르짖는 LTE폰을 한 방에 꺾을 미래형 텔레파시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김애란에게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상대방이 조그맣게 말한 사랑한다는 소리까지도 듣는 능력이 있는 걸 보니 사랑의 힘은 역시나 위대하다.

"세상의 적어도 한두 명만은 이곳 철거 아파트에 사람이 산다는 걸 기억하리라 믿었다."

이 문장(?)은 참 힘들다. "세상의 적어도 한두 명~"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직 문장을 다듬어 쓸 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글을 보는 것 같고 우리말이 서투른 외국인들의 말을 옮겨 놓은 것도 같다. 문장을 다시 고쳐 써야 한다.

"물이 담긴 봉투는 둥글게 밀봉돼 아버지의 방에 저장됐다.", "주위를 둘러봐도 구조대를 태운 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문장이나 두 번째 문장이나 모두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 보자. 우선 첫 문장은 "물을 담은 봉투는 둥글게 밀봉해 아버지의 방에 저장했다."라고 써야 하고 두 번 째 문장은 "주위를 둘러봐도 구조대가 탄(타고 있는) 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로 써야 한다. '보장한다'라고 하면 될 것을 '보장된다'라고 잘못 쓰는 우리나라 법률 조항의 문장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들이다.

"인간은 자연을 이겨본 적도 없지만 동시에 굴한 적도 없다고 ~~."

이 문장은 '인간은 자연을 이겨본 적이 없다'와 '인간은 자연에 굴복한 적이(적도) 없다'라는 두 개의 문장을 합친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자연'인데. 이 두 문장을 하나로 합치려면  "인간은 자연을 이겨본 적도 없지만 동시에 자연에 굴한 적도 없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김애란은 뒷부분의 '자연에'를 쓰지 않았다. 주어인 '인간'은 두 개의 문장에서 겹치므로 하나로 줄일 수 있지만 '자연을'과 '자연에'는 그 기능이 다르므로 각각 적어야 한다. 김애란처럼 쓰려면 '인간은 자연을 굴한 적이 없다'라는 문장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는 비문이다.

"작열하는 가을 볕 아래, 자신을 일제히 내려다보던~~."

국어사전에서는 '작열(灼熱)'을 "몹시 뜨겁게 타오르다. 태양이나 불 따위가 몹시 뜨겁게 타오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체로 '태양이 작열하던 그해 여름',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폭염이 작열하고~' 등과 같은 표현에 쓴다. '작열하는 태양' 같은 표현은 사실상 관용표현으로 굳어져 일반적으로 뜨거운 여름 태양의 기운을 말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작열하는 가을 볕"이라니. 이상 기온으로 온 지구가 난리와 고통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을 볕을 두고 작열한다고 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어 보인다. 더욱이 우리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사상 최대 전력 사용'이라거나 '(에어콘 사용으로) 전기요금 폭탄'같은 뉴스를 보고 듣지 않았던가. 거기에 비한다면 이 가을 볕은 따스하기만 할 뿐 '작열'과는 거리가 멀다. 김애란의 과장과 엄살이 작품의 사실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용대는 아가씨가 토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흘 전에도 시트에 밴 토 냄새가 안 빠져 일을 못 했다."
"누군가는 골목에서 토를 하고~~."
"~세면대 근처에서 한 아이가 토를 하고 있었다"

'토를 하다'라는 말은 요즘 10~20대들이 잘 쓰는 입말이다. 물론 틀린 말이다. '토하다'가 바른 표현이고 표기이다. '토하다'에서 '토'는 어근이므로 '토가 나오다' '토를 하다'처럼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게 국립국어원의 설명이다. 굳이 이런 어려운(?) 설명이 아니더라도 10~2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잘못 쓰고 있는 표현을 작가가 이처럼 남발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새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작가의 몫이지만 원래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는 것도 작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편지나 서류 따위를 넣는, 종이로 만든 주머니"를 뜻하는 '봉투'와 "종이나 비닐로 물건을 담을 수 있게 만든 주머니"를 말하는 '봉지'를 마구 섞어서 같은 뜻으로 쓴다거나 ▲부정어와 연결 지어 써야 하는 '너무'를 "또 너무 좋은데~"처럼 잘못 연결한다거나 ▲'한국의 달인이오' 혹은 '한국의 달인요'라고 써야 하는데 "한국의 달인이요"라고 종결어미를 틀리게 쓰거나 하는 등의 크고 작은 잘못들이 너무 많다.

일부에서는 김애란의 글을 베껴 쓰며 소설쓰기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김애란의 글은 훌륭한 약이 아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김애란이 좀더 제대로 갈고 다듬어 말과 문장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한국문학의 훌륭한 대표작가가 될 것이기에 더더욱 말과 글을 짓고 쓰는데 신중해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만드신 것은 모든 백성이 두루두루 편하고 쉽게 배워 쓰라는 뜻이었으니 말과 글을 부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들의 몫이 새삼 크게 두려워지는 한글날이다.


#김애란#비행운#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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